블룸버그는 4일(현지시각) 삼성이 피아트 크라이슬러 자회사인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합병을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그네티 마렐리는 유럽을 배경으로 차량용 계기판 및 다양한 부품을 공급하는 곳이며 최근 경영난을 겪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모회사인 피아트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이 라이벌에 비해 다소 뒤쳐졌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최근 알파벳과 협력해 자율주행차 비전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등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상황이다. 참고로 이재용 부회장은 피아트의 지주회사인 엑소르(Exor)사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삼성의 방식...쓰라린 기억 딛고 '인수합병'으로
삼성은 1994년 삼성중공업을 통해 상용차를 출시하며 완성차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어 1995년 자본금 1000억 원으로 삼성자동차가 공식 출범했으며 1998년 3월 첫 모델인 중형 세단 SM5가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5대 그룹 계열사 빅딜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몇차례의 변곡점을 거치며 프랑스의 국영자동차 업체 르노가 닛산자동차의 지분 36%를 인수해 탄생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Renault-Nissan Alliance)가 2000년 4월 6200억 원에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완성차 업계에 도전한 삼성의 쓰라린 기억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들어서며 삼성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 번 높아지고 있다. 비록 이재용 부회장은 완성차 업계 진출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정적인 스탠스를 보여왔지만, 미국의 댄 애커슨 GM 회장과 일본의 도오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 등과 만나 관련 산업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정도로 열의는 있었다는 후문이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 출범도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DS부문장을 맡는 권오현 부회장 직속으로 꾸려 무게감을 실었다. 신설된 전장사업팀장에는 생활가전 C&M사업팀장을 맡고 있던 박종환 부사장이 선임됐으며 박 부사장은 컴프레서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다. 생활가전에서 핵심적인 기계 매커니즘을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 부품솔루션(DS) 부문에 차량용 반도체 개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지난 4월에는 삼성전자의 미래동력을 중장기적으로 가다듬는 종합기술원에서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연구직 경력사원을 채용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연구개발(Device&System) 직무에 Autonomous Driving, Computer Vision, Neuromorphic/Mobile Processor, Optics/Bio-Signal Analysis 수행업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자율주행차와 딥러닝 및 데이터,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1월과 5월에는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무인차 개발 스타트업 누토노미(nuTonomy)에 투자하기도 했다.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합병 논의가 불거지기 한 달 전 삼성전자가 중국 전기차 1위 기업인 비야디(BYD)에 500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BYD는 충전용 배터리 업체로 시작해 전기차 분야에서 글로벌 1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기업이다. 2008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자회사인 미드아메리칸 에너지 홀딩스를 통해 2억 3000만 달러를 투자, 9.89%의 지분을 확보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삼성은 완성차 시장 진출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전장사업 중심으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위성은 충분하다. 자동차는 미래 소통의 플랫폼이자 추후 사물인터넷 시대의 초연결, 사용자 경험의 비약적 확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먹거리도 풍부하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1조6000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구글과 애플과 같은 ICT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배경으로 여겨진다.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 입장에서 차량용 전장사업에 자신감을 보이는 대목도 중요하다. 나아가 삼성은 다양한 전자계열사를 중심으로 총체적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텔레매틱스 및 무선통신 장치, 차량용 모터와 냉매 압출 장치, 변압기 등은 삼성전자가 책임지고 내비게이션 및 기본적인 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까지 아우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제공할 수 있다. 급속충전 및 통신장치와 다양한 센서는 삼성전기가, 차량용 배터리는 삼성SDI가 있다.

결론적으로 삼성은 강력한 전자 및 ICT 경쟁력을 총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장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다. 다만 완성차 시장으로의 진출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이러한 방법론의 중요한 핵심은 마그네티 마렐리와의 논의에서 확인된 '인수합병'일 가능성이 높다.

인프라 다지기 LG...승부 피하지 않는다
LG는 오래전부터 전장사업에 관심을 보여왔다. 먼저 LG전자의 경우 스마트폰의 MC사업본부가 주춤거리는 상황에서 자동차 및 부품, 에너지 사업으로의 전격전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자동차로의 변화를 이끄는 VC사업본부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2013년 신설된 VC사업본부는 흑자와 적자를 오가고 있지만 미래성장동력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LG전자는 VC사업본부가 중심이 되어 도요타의 차량용 텔레매틱스 부품 납품 계약을 맺기도 했다. 자동차와 무선통신기술을 더한 텔레매틱스 기술은 VC사업본부가 꾸준히 그 경쟁력을 제고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GM의 차세대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에 핵심부품 11종을 제공한 상태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더불어 LG전자가 전기차 무선충전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재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LG전자는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의 전기차 무선충전 규제기준 논의(SAE J2954 WPT)에 참여하고 있다. 나아가 LG전자는 최근 유럽 거점을 독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유럽지역대표본부를 오는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따른 결정이라는 설도 있지만 현 상황에서 유럽 가전 경쟁력의 중심인 독일을 적극적으로 공략함과 동시에 자동차의 메카를 극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에는 2011년부터 활동해오던 ‘제니비 연합(GENIVI Alliance)’에서 최근 이사회(Board) 회원사에 선출되기도 했다. 제니비 연합의 제니비는 세계 평화의 도시 ‘Geneva’의 ‘GEN’과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부품을 뜻하는 ‘IVI’의 합성어며 본 연합은 2009년 출범해 완성차 및 자동차부품 업체 150여 개가 활동 중인 비영리 단체다. 오픈소스인 리눅스를 기반으로 IVI 용 SW플랫폼인 제니비 플랫폼의 개발과 확장을 추구한다.

재규어랜드로버, BMW, 르노-닛산, 볼보 등 여러 자동차업체의 IVI 제품에 적용되며 강력한 외형적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재규어랜드로버, BMW, 인텔 등 12개사와 함께 이사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LG전자 VC사업본부 IVI(In Vehicle Infotainment)사업부장 김진용 부사장은 “이사회에 선출된 것은 LG전자가 자동차부품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음을 공인받은 것” 이라며 “IVI 분야의 SW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리기도 했다.

여기에 다양한 전자 계열사의 시너지가 더해진다. LG화학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미국과 중국에 납품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도 LCD를 넘어 OLED 디스플레이를 유럽 차량 제조사에 제공할 계획이다. 결론적으로 LG는 차근차근 다져온 인프라를 바탕으로 부품 사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그 이상의 비전을 꿈꾼다는 계획이다.

쌍두마차의 미래
자동차, 특히 전장사업에 있어 삼성과 LG는 엄밀히 말해 도전자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과 LG는 다양한 부품 사업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완성차 시장에 진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름의 힘 겨루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기술상향표준화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반도체 전반의 지속가능한 성장 가능성, 소프트웨어 파괴력과 더불어 삼성과 LG가 '왜 모두 자동차 업계에 집중하는가?'를 잊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들은 자동차를 플랫폼으로 삼아 사용자 경험의 확장판으로 구축할 꿈을 가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연장을 찾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꿈을 시켜줄 연장에만 힘을 더하고 총체적 대단위 플랫폼 장악력을 무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욱 적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