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시작됐다. 아니 이미 만연했던 의심은 표면 위로 떠올랐다. <한겨레 21>은 지난달 31일 ‘1년 3개월, 나는 ‘가짜 약사였다’’라는 기사를 통해 이른바 ‘카운터’로 불리는 조제보조원들이 약사 업무인 의약품 제조를 대리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들은 약사처럼 약을 짓거나 판매했다. 현행 약사법 제23조에 따르면 의약품 조제는 약사 및 한약사만 할 수 있으니 불법이다. 커다랗게 적힌 ‘약’이라는 붉은 글자만으로, 면허증 한 장과 하얀 가운만 보고 믿었던 복약 지시가 괜스레 불안해졌다.

해당 매체 기자들은 서울 지역 약국 4곳에서 직접 가짜 약사를 체험했다. 그들은 고용 약사에 의해 처방전이 없는 환자에게 약을 주는 장면을, 닦지 않는 가루약 분쇄기를 목격했다. 그리고 가려진 조제실 뒤에서 약을 조제했다. 기사에 의하면 전국에 있는 약사만 7만명, 약국은 2만1375개에 달한다. 경쟁에 압박을 느낀 몇몇 약국은 관리 약사에게 주는 300만~400만원의 월급 대신 일반인 카운터에게 주는 110만~130만원의 월급으로 인건비를 줄였다. 해당 기자는 약사를 ‘얼굴마담’이라고 표현했다.

몇몇 약국의 잘못으로 인한 과잉된 일반화이길 바랬다. 하지만 지난 4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의하면 의약품 관련 공익신고 전체 2607건 중 1610건(61.7%)이 ‘약국 내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로 전체 신고 건수 중 가장 높다.

사실 약국의 조제실 벽 뒤에 대한 의심은 꾸준했다. 몇 년 전 약사들의 맨손 조제로 인한 위생문제가 대두되자 지역 약사회 몇 곳은 수술용 코팅장갑을 사용하며 위생적 환경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국 내 조제실 개방, 통유리 조제실 전면화 등에 대한 민원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가려진 조제실 벽 뒤의 장갑은 보이지 않았다.

복지부는 조제실 개방이 약국 입장에선 권리 침해라는 입장이다. 조제실이 감춰져야 약사가 조제 업무에만 집중해 조제 오류나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한국의 약사법에는 조제 보조에 대해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고 업무 범위도 애매하다 보니 단속 또한 쉽지 않다. 소비자도 약사가, 아니 약사만 조제 업무에만 집중하길 원한다. 레스토랑들은 오픈 주방을 택하며 위생과 신뢰를 얻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식품의 이야기다. 식품보다 더 까다롭고 원칙이 중요한 의약품의 조제실은 닫혀야 할까, 열려야 할까.

불량한 소수는 선량한 다수를 해친다. 약사 가운에 대한 의심은 장사꾼에 대한 불신을 부른다. 기자수첩을 쓰다 보니 강남역 오피스 빌딩 사이에 있는 한 약국이 떠올랐다. 머리를 질끈 묶고 립스틱을 선명하게 발랐던 그녀는 처방전을 가져온 손님마다 비타민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비타민 B군처럼 활력 있게 상품을 팔았다. 나는 어린 시절 딸기맛 비타민을 손에 꼭 쥐어주던 동네 터줏대감 약사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그러나 아직 모든 약사를 의심하기에는 이르다.

의심은 언제나 피로하다. 대다수의 소비자는 약사들의 직업정신과 양심을 믿는다. 가짜 약사에 대한 이슈가 동네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따뜻한 그를, 정확한 의약정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현명한 그녀를 해치지 않길 바란다. 올바른 약사의 신념은 가운의 후광효과보다 강하다. 의약품 자동판매기를 원치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에겐 아직 진짜 약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