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펄 GTL 가스발전플랜트.


기업의 목표는 단 하나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내야만 한다. 그만큼 CEO는 저마다 특유의 장사꾼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 기업 모두 똑같다. 성공한 글로벌 기업, CEO의 공통점으로는 자국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였다. 글로벌 기업의 증가는 국력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최고 기업인 동시에 글로벌 기업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공업 분야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사업 역량 강화와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최대 시장인 중동을 비롯한 나이지리아, 미얀마, 태국 등 전 세계 18개 현장에서 총 170억달러 규모(한화 18조3000억원)의 육, 해상 플랜트 공사를 진행 중이다. 공사 현장에는 현지 직원을 포함해 1만8000명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동플랜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우디 리야드 가스복합화력발전소, 바레인 알두르 발전담수플랜트, 카타르 펄 GTL(Gas to Liquids) 공사 등 중동 5개국 10개 현장에서 약 100억달러 규모(한화 10조원)의 공사에 참여했다.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꾸준히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동에서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중동 지역 가운데서도 특히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들로 구성된 GCC(걸프협력회의) 소속 국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중동 경제 전문지인 ‘MEED’에 따르면 GCC(걸프협력회의) 회원국들은 오는 2019년까지 연평균 8%의 전력수요 증가율이 예상된다. 전력설비 용량이 2009년 88GW에서 2019년 185GW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1170억달러(한화 126조원)를 훌쩍 넘는다. 꾸준한 산업화를 추진, 각종 공사가 왕성하게 이뤄지는 중동은 기업 입장에선 기회의 땅인 셈이다.

현대중공업은 이점에 주목했다. 해당 국가들이 전력 수요 등으로 인해 플랜트 설비에 나설 것을 염두에 두고 경영전략을 펼쳤다. 결과는 성공적. 2011년 첫 플랜트 수주를 중동에서 따냈다. 지난 1월 11일 카타르로부터 총 공사금액이 1조원에 달하는 대형 해양플랜트 공사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4월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단일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사우디 마라파크 발전담수플랜트를 준공했다. 사우디 동부 주베일(Jubail) 지역에 설치된 발전소는 총 발전용량 2750MW, 일일 담수량 80만t으로 세계 최대 산업단지인 주베일 산업단지를 비롯해 수도 리야드 등 사우디 주요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게 된다. 사우디 전체 전력의 약 10%에 해당되며, 20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7년 미국 GE 및 프랑스 시뎀사와 컨소시엄을 구성, 사우디 국영기업인 마라피크사로부터 총 27억달러(한화 3조원)에 마라피크 발전담수플랜트 공사를 수주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 중 11억달러 규모(1조 1000억원)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맡아 수행했다. 지난 2009년 10월부터 단계별로 완공하며 상업운전을 시작으로 3년 9개월 만에 모든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 플랜트 부문에서 수주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육, 해상 플랜트 부문 수주 목표는 총 86억달러(한화 9조2000억원). 전년 대비 약 70% 증가한 것이고, 5년 전인 2006년의 28억달러(한화 3조원)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1년 관련 부문 매출 계획은 6조9200억원으로 2010년보다 14% 증가했다. 현대중공업의 2011년 예상 매출인 26조9450억원 중 약 26%를 차지한다.

현대중공업은 국내를 대표하는 조선사란 이미지가 크다. 매출도 대부분 조선분야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다르다. 조선분야보다 비조선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2010년 매출과 영업이익 22조 4000억원, 3조 7000억원. 사상 최대치다. 이중 조선분야의 매출액은 7조 8490억원이 전부다. 나머지 14조 5560억원은 비조선분야에서 발생했다. 조선이 아닌 비조선,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매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의 이 같은 사업구조 개편은 2006년 이후부터 본격화 됐다. 2002년부터 시작된 조선업의 호황기를 맞아 미래를 대비해 신규사업 투자에 나선 결과다. 미래를 대비한 철저한 준비는 2008∼2009년 닥쳤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뎌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현대중공업은 조선회사인 동시에 엔진, 해양, 플랜트,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등 7개의 다양한 사업부문을 영위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사를 넘어 세계 1등 종합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은 마련됐다.

바레인 알두르 발전담수플랜트.


높은 인지도 중동지역서 굳건한 위상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중공업의 장점은 인지도다. 세계 1위 조선사, 기술력 있는 기업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특히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의 격전지가 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실제 중동시장에서 현대중공업에 대한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다. 현장에 나간 직원들은 고급인력으로 분류, 현지인들로부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 무엇보다 탁월한 일처리 솜씨는 일품이란 평가다. 어떤 상황에도 공사기간을 준수하고 품질 향상을 이뤄낸다. 인력관리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가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현장을 직접 누비는 직원이야 말로 해외시장 최일선에서 기업을 대표한다. 현장 직원의 모습은 곧 기업의 현주소다.

직원들이 현지에서 조금의 불편함도 느낄 수 없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인재관리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해외 현지 공사에 파견되는 인력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기술 경쟁력이다.

70∼80년대만 해도 중동에서 한국 기업, 한국인 근로자의 생활은 불편함이 컸다. 이국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입에 맞지 않은 음식, 향수병으로 직원 사기가 떨어지기 일쑤. 제대로 된 대우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인력은 해외로 유출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딴판이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카타르 펄 GTL(Gas to Liquids) 플랜트 현장. 이곳에선 한국 주방장이 직접 조리한 음식이 매일 제공된다. 회사는 매달 직원들을 위해 컨테이너선으로 엄선된 식재료를 보낸다. 숙소 주변엔 각종 부대시설도 마련했다. 야외 수영장, 노래방, 게임기 등이 설치돼 있다. 인재 관리를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것은 고 정주영 창업주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2년 울산 미포만 모래사장에서 조선 사업으로 첫 발을 뗀 이후 과감한 도전이 있어 가능했다.

‘하면 된다’는 창업주의 도전정신은 엔진기계, 육해상 플랜트,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등 7개 사업 부문과 선박해양연구소, 산업기술연구소, 기계전기연구소, 테크노디자인연구소 등 4개 연구소를 갖춘 명실상부한 종합 중공업회사를 만들어 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선박 수주물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발 빠르게 사업구조를 개편한 것이 적중했다.

본격화된 그린에너지사업도 자신만만
현대중공업은 중동 지역 외에 세계 각국에 공장을 건설, 신성장동력 차원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초고압 송전시스템의 핵심 장치인 고압차단기 공장 건설에 들어간 것은 대표적 사례다. 총 4만㎡(1만2000평) 규모로 2012년 8월 완공을 목표로 러시아 시장 진출에 나섰다.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연간 250여대의 110~500kV급 고압차단기 생산이 가능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러시아 고압차단기 시장 진출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러시아 정부의 전력시스템 현대화 정책으로 러시아 내 전력 수요 증가를 겨냥해 추진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뿐 아니라 미국 앨라배마 주에 건설 중인 1만4000MVA의 중대형 변압기 공장을 건설하고 있어 변압기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단일 세계 최대인 울산 변압기 공장과 유럽의 불가리아 공장, 북미 앨라배마 공장 등 글로벌 변압기 생산 체제가 구축될 경우 글로벌 톱3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뿐만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그린 태양광사업과 풍력사업을 전담하는 그린에너지사업본부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 접수에 나섰다. 태양광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높다. 1997년부터 사업성 연구를 시작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

2005년 사업 이후 1년 만에 국내 최초로 스페인 태양광 발전단지에 6000만달러 규모의 자체 브랜드 태양광 발전설비를 수출했고, 지난해 6월부터 KCC와 공동 설립한 KAM에서 연간 3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 제품을 생산, 폴리실리콘부터 태양전지·모듈·발전시스템까지 국내 유일하게 태양광 일관생산체제 완성에 성공했다.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 산둥성에 연간 8000대 생산 규모의 휠 로더 공장을 건설, 향후 5년 내 연간 1만대 이상 생산에 나설 예정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상하이에 ‘현대중공업 글로벌 기술연구(R&D)센터’를 설립하는 등 모든 준비를 끝냈다.

풍력발전도 비슷한 수준. 풍력 사업은 1998년부터 이뤄졌다. 풍력 발전용 발전기와 변압기, 전력변환장치의 자체 상품을 개발해 해외 업체에 납품했다. 2009년 9월에는 미국 웨이브 윈드(WAVE WIND)사와 1.65MW 풍력발전기 6기 수출 계약을 체결,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을 시작으로 사업 영역을 점차 확대 하는 중이다.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최대 풍력전시회(CWEE 2011)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 업계 최대 규모로 부스를 설치하고 육해상 풍력발전기 신제품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났다. 지난 5월엔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윈드파워 2011’에 참여했고, 6월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인터솔라 2011’에 참가해 태양전지 및 발전단지 대형화에 맞춰 개발한 500kW급 대형 인버터를 최초 공개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전시회 참여는 단기간 많은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며 현대중공업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알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만큼 다양한 국제 전시회에 참여해 수주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했다. 현대중공업 변화의 중심엔 기술 개발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1983년 산업기술연구소를 시작으로 선박해양, 기계전기, 테크노디자인연구소 등 4개의 국내 연구소와 헝가리에 기술센터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글로벌 기술연구센터는 글로벌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투자다. 건설장비, 중전기기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형 혁신기술 개발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스마트그리드, 해상풍력, 로봇 등 미래 글로벌 전략상품 개발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게 된다. 2012년까지 120명으로 연구인력을 늘리고, 2013년까지 5개 연구실에 연구인력을 7배 가까이 늘린 200여 명으로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현대중공업의 연구 전문인력은 1000여 명을 넘어서게 된다.

애널리스트들, 비조선분야 약진에 긍정적
국내보다 해외에서 왕성한 활약을 벌이고 있는 현대중공업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2분기 매출액 6조 553억원, 영업이익 6770억원으로 연초 예상됐던 매출 6조 4670억원, 영업이익 9060억원에 못 미쳤지만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2분기 실적에 플랜트 부분, 그린에너지부분, 전기전자 부분 등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업 분야의 실적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보고서를 통해 “상반기 수주가 급증한 것을 볼 때 올 하반기 실적에 주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하이투자증권도 “플랜트 사업부의 대규모 수주 및 비조선사업부의 차별화로 올 하반기에도 두각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반기보다 하반기, 현재보다 내일의 성장성과 실적개선이 뚜렷할 것이란 얘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자는 “조선, 플랜트, 엔진기계, 건설장비 부문의 매출이 증가한 반면 후판가 상승으로 조선 부문 수익성이 하락했지만 해외사업 약진과 올해부터 도입된 연결실적(IFRS)을 기대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IT기술 장착한 조선업도 순항 중

현대중공업의 인공위성을 통한 선박 명명식이 화제다. 세계 최초로 시도된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선박 기술 경쟁력,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을 동시에 선보였다는 평가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1일 삼호중공업과 동시에 각각 위성 생중계를 통해 최근 울산 공장의 선박 한척과 영암 공장의 선박 한척에 대한 명명식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발사된 KT의 최신 통신 위성인 ‘올레1호’가 행사 장면을 전송했다.

인공위성을 통한 명명식은 그동안 1700여 차례가 넘는 명명식을 치른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캐나다의 시스판사가 각각 공장에 발주한 선박 2척을 주문, 동시에 건조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