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 침해에 관한 A to Z’라는 주제의 지난 3개 칼럼에서는 침해 상표가 등록 상표를 침해하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상표 침해자를 상대로 상표침해금지 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차례이다. 그런데 상표 침해자는 누구일까? 상표권자의 허락 없이 등록상표를 사용한 자일 것이다. 그러나 거래 실상에서는 상표를 실질적으로 침해한 자가 누구인지 모호한 경우가 간혹 있다. 오늘 설명할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이 그중 하나이다.

A 사는 국내에 위치한 의류 제조 업체로서, ‘Santa Barbara Polo & Racquet Club’의 상표권자인 일본의 B 사로부터 주문자 상표부착방법에 의한 셔츠 수출을 의뢰받은 국내의 C 사로부터 다시 가공을 의뢰받았다. 이에 A 사는 C 사가 제공하는 원단을 사용해 셔츠를 제작한 후 C 사로부터 제공받은 이 문자 상표와 말을 타고 폴로경기를 하는 도형으로 이루어진 상표를 셔츠에 부착했다. 그런데 국내에 ‘폴로’, ‘Polo by Ralph Lauren’, 말을 타고 폴로경기를 하는 도형만으로 된 것, 도형과 Polo 또는 도형과 Ralph Lauren의 문자가 결합된 것 등 50여개 상표를 등록한 X 사는 A 사가 이 상표를 사용한 제품을 제조해 수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A 사를 상표 침해로 형사 고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A 사는 자신이 B 사 및 C 사로부터 OEM 의뢰를 받아 C 사로부터 제공받은 상표를 단순히 부착했을 뿐이므로 상표 침해의 주체라고 볼 수 없고, 위 상표를 부착한 셔츠들은 전량 일본에 수출할 목적으로 제조된 것이므로 국내 상표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상표법상 상표 침해 행위에는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행위’가 포함되고(상표법 제66조 제1항 1호), 상표 ‘사용’ 행위에는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가 포함된다(상표법 제2조 제1항 제7호 가목).

이처럼 상표법상 상표 침해의 개념을 살펴보면, 비록 A 사가 타사의 OEM 의뢰를 받아 상표를 부착했다고 하더라도 A 사의 상표 ‘부착’ 행위가 형식적인 면에서 상표법상 상표 ‘사용’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우리나라에서 타인의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상품과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에 표시해 사용했다면, 설사 그 상표가 표시된 상품이 우리 상표권의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는 일본으로 수출할 목적으로만 제조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등록상표의 상표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되는 것으로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에 의해 수출을 한다고 해서 이와 같은 결론이 달라질 것도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필자는 OEM에서 수탁자의 상표 부착 행위를 보아야 할 것인지 다소 의문이다. 이 사건은 일본의 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동일한 사안이므로, 비록 제품 전량이 일본에 수출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내 상표 침해가 성립한다는 대법원의 태도가 심정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상표권자와 국내 상표권자가 다를 경우에는 어떨까? 일본의 상표권자는 단순히 국내에 제조위탁을 의뢰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 내에서 적법한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제작할 수 없게 된다. 반면, 국내 상표권자는 국내에만 상표 등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유통될 여지가 없는 제품에 대해서도 상표권을 주장함으로써 부당하게 상표권의 효력을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아직 국내에서는 OEM이 상표 침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이른바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에서는 OEM 업체에 대한 상표 침해 여부가 여전히 치열하게 다투어지고 있다. 자국의 OEM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중국의 사례와 논의 역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에 ‘Jolida’라는 상표를 등록한 JOLIDA INC는 자회사 SHANGHAI SHENDA SOUND ELECTRONIC CO., LTD를 설립했고, 1997년 이 회사를 매각하면서 동시에 자회사 지우리더전자회사를 설립했다. 그 후 JOLIDA INC는 중국 내 자회사인 지우리더전자회사를 통해 ‘Jolida’ 상표가 부착된 전자제품을 제조 위탁했는데, 중국에 ‘Jolida’ 상표를 등록한 SHANGHAI SHENDA SOUND ELECTRONIC CO., LTD는 지우리더전자회사가 자사의 상표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상표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피고인 지우리더전자회사는 원고와 피고 모두 미국의 JOLIDA INC.에서 투자설립한 회사이고, ‘Jolida’ 상표는 1995년 미국 본사에서 이미 미국에 등록한 상표인데, 원고가 악의적으로 ‘Jolida’ 상표를 중국에 등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피고가 생산한 관련 제품은 중국 국내에서는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고 전량 미국 본사로 수출되기 때문에 상표권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및 2심 법원은 피고가 제품의 포장에 표기한 상표와 회사 이름이 모두 JOLIDA INC.이므로 소비자들은 이 상품의 출처가 미국의 JOLIDA INC.라는 점을 알 수 있고, 위 제품은 전량 미국으로 수출되고 중국 시장에서는 판매되지 않으므로 중국 소비자들이 이 제품의 출처에 대해 혼동하고 오인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상표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또한 피고의 상표 표시 행위는 형식으로는 피고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인 상표의 사용자는 미국의 JOLIDA INC.라고 판단했다.

반면, 이 사안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상표에 관한 중국과 국외 상표권자가 상이해, 국외의 상표권자가 중국의 업체에 제조위탁을 의뢰하자 중국 내 상표권자가 상표 침해를 주장한 사안에서, 중국 법원은 중국 내 수탁자가 제품에 상표를 표시한 행위는 상표법상 ‘사용’ 행위에 속한다는 이유로 상표 침해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중국 법원은 동일한 ‘섭외 OEM’ 사안에서 상표 침해 여부에 대해 다르게 판단했고,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섭외 OEM의 실질을 보아 상표 부착 행위의 실질적인 주체가 누구인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없을지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