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공정거래위원회는 ‘퀄컴세(稅)’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퀄컴에 심사 보고서를 송부한 뒤 약 8개월 만인 지난 20일 이뤄진 심의는 확실한 결론 없이 끝났다. 공정위는 심의를 추후 전원회의에서 속개한다는 방침이다. 사안이 복잡한 만큼 전원회의를 몇 차례 더 진행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퀄컴은 크게 3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먼저 퀄컴이 특허 로열티를 부과하는 방식을 문제삼았다. 스마트폰 제조에 꼭 필요한 통신기술(CDMA) 특허 수수료를 통신칩 가격이 아니라 스마트폰 단말기 가격을 기준으로 받아 국내에서만 매년 1조 원 넘는 특허 수수료를 부당하게 챙겼다는 설명이다.
칩셋 관련 기술을 표준필수특허로 등록하고서도 이를 인텔 등 칩셋 제조사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또 표준특허에 다른 특허를 끼워 팔아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도 존재한다.
심사보고서를 건네받은 퀄컴은 즉각 반발했다. “사실이 아니고 법적으로도 오류가 있다”며 “20년간 유지해온 우리의 특허는 합법적이며 경쟁에 위반되는 사항도 아니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이어 “특허 라이선싱 관행은 국내외 이동통신업계의 성장을 촉진한 합법적이고 경쟁친화적 활동”이라고 덧붙였다. 혐의를 부인한 셈이다.
입장이 첨예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전원회의를 진행하기도 전에 공정위가 퀄컴에 1조 원 규모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지난해 발송한 심사보고서에 과징금 규모를 적어 발송했다는 설명이다.
루머의 내용만큼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공정위는 이에 즉각 해명했다. “공정위 사무처는 퀄컴 사건 심사보고서에서 과징금 액수를 적시한 바 없으며, 과징금 부과 여부‧액수 등은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루머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두고 일부에선 퀄컴이 부당하게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퀄컴은 통신 칩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모바일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다. 그런 만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반독점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지난해 퀄컴에 특허권 남용으로 60억8800만 위안(약 1조36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퀄컴에 강력한 잣대를 들이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공정위가 국내 업체에만 강하고 해외 업체 앞에선 작아졌다며 이 같이 주장한다. 감정에 입각한 기울어진 논리다.
한편으론 이중 잣대 논란도 있다. 지난 2014년 삼성전자와 애플이 특허 소송에 휘말렸을 때 공정위는 칩셋이 아닌 단말기 기준으로 로열티를 계산해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준 전례가 있다. 이번 퀄컴 심사보고서에서는 판단을 뒤집힌 셈인데, 공정위가 끝까지 이런 판단을 고수한다면 논란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정위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시도에 최종 불허 판단을 내렸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공정위는 퀄컴 심의를 위해 앞선 사안보다 더 오랜 숙고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판단이 늦어지는 만큼 다른 나라 규제당국에게도 지침이 될만한 일관되고 지혜로운 판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