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다. 20년간의 변화를 막연하게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간과했다. 하지만 아니다. 확연히 달라졌다. 90년대의 경제가 청년이라면 지금의 경제는 노년의 시작인 듯한 느낌이다. 너무도 상황이 다르다. 97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었다.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변되는 탈위기에 대한 욕구는 민관이 모두 뜨거웠다. 그래서 가능했다. 위기라는 실패를 맛봤지만 젊은 경제에 젊은 열정으로 단기간에 위기를 벗어났다. 그때의 위기는 성장통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빨리 달려오느라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고 가라는 시대적 소명으로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조로화 현상의 경제를 목도하는 듯하다. 덩치는 산만큼 커졌지만 불행히도 20년 사이에 역동성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미래의 희망을 스타트업에 매진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고령화 저출산 저인구라는 난제 중의 난제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오면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을까.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에 일순간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다. 오지도 않을 위기를 미리 걱정하는 것이 어리석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하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대비가 아니라 방지라고 해야 할까. 97년, 그리고 1년을 앞둔 2017년이 너무도 공교롭게 다르다는 것에 꽂혔다. 한국 경제는 현재 결코 순탄하지 않다.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 동력은 만약의 위기가 벌어졌을 때 얼마나 빨리 극복해 갈 수 있느냐에 대한 복원력이다.

#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전, 96년까지는 9%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론 위기 이후 마이너스 6%대로 곤두박질쳤지만 단숨에 다시 9%대의 성장률을 회복했다. 회복력과 복원력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이 큰 몫을 했다. 2016년 경제성장률은 지난 2분기 동안 0%대로 올해 2% 중반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5년간 2%대의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하향 기울기가 멈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2%대 잔류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복력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97년 외환위기 이전 우리 경제에서 고령화 저출산 저소비라는 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고령인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5% 미만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준 13.1%로 고령화사회를 지나 고령사회(유엔 기준 14%)가 코앞이다. 향후에는 더 비관적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제일이다. 소비시장도 97년 이전에는 과소비를 걱정할 정도로 왕성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99년 코스닥 열풍 때 반짝했을 뿐 소비심리는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시대인 저금리 시대다. 고령층의 은퇴 이후의 걱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재테크 공황시대라 일컬어질 정도로 투자방황은 지속되고 있다.

# 고령화는 물론 저금리도 되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처럼 저금리에 익숙하지 못한 한국 경제는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태풍을 맞은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가를 감안한 금리는 사실상 제로시대다. 97년의 금리 수준은 두 자리 수였다. 단기보다는 장기를, 주식과 부동산투자를 자제하라고 재테크 전문가들이 충고를 할 정도로 안정적인 예금 상품만으로 즐거운 수확을 거뒀던 시대였다. 열심히 벌어서 저축을 하면 5년 후에 목돈을 쥘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당연히 저축하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은행권에 돈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모인 자금들이 결국 위기를 벗어나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해야 그나마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갈 곳 모르는 돈이 방황을 하고 있다.

# 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원달러환율은 달러당 800~900원대였다. 외환위기 이후 원화 환율은 2000원대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에 안정을 찾았지만 지금까지 원화환율은 1000원을 밑돈 적이 없었다. 외환위기 탈출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몇 년간도 여전히 1100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전의 원달러환율 효과와 지금의 효과는 달라졌다. 약발이 약화됐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약세에 익숙해진 산업체질 덕분에 환율이 더 치솟는다고 해도 효과는 절대적이지 않다. 수출과 수입구조가 판이하게 달라진 점과 한국 기업의 해외현지 진출이 그만큼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 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부채의 주연은 기업들이었다. 개발연대의 후유증이었다. 빚 내서 개발을 이끌어 온 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위기는 시작됐다. 하지만 저축에 푹 빠진 가계와 재정 부채는 양호했다. 하지만 2016년의 한국은 1300조가 넘는 가계와 재정부채,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글로벌 경제 불황으로 기업들의 부채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기업부채를 가계와 재정지원으로 충분히 커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많은 기업들을 내다 팔아서 그나마 숨통을 살려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기업들이 사라져 갔다. 조선업종과 해운업종 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를 대표해서 끌고 갈 주자가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마켓에서 1등을 꼽으라면 한국 기업들의 숫자는 어느덧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 97년 글로벌 경제는 패스트 팔로워에게 많은 기획과 수확을 안겨줬다. 하지만 2016년의 글로벌 경제는 창의력이 바탕이 된 패스트 무버에게만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업종 간의 영역은 이미 파괴된 지 오래다. 무엇이든 다 한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출현하면서 기존 업종을 고수했던 기업들은 당황할 시간조차 없이 허겁지겁 차원이 다른 영역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차원이 다른 영역 파괴를 내세워 차원이 다른 전방위적 위협을 펼쳐나가고 있다.

달라졌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간과한 차이점 앞에서 그 때의 위기 탈출 경험이 지금도 통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바뀌지 않은 곳도 있다. 정치권이다. 이권다툼이나 당권경쟁, 그리고 경제보다는 당권이 앞서는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 20대 국회가 출범했지만 민생을 위해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위기를 앞두고 있는 경제를 목도하는 정치권은 왜 늘 무기력한 걸까.

회복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97년 경제위기가 또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더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다. 기업을 뛰게 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경제대책을 원점에서 내놓아야 한다. 아베 일본 총리의 경기부양책이 왜 천문학적인지를 되새겨봐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그런 기회는 앞으로 없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