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은 많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기본 앱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어준다. 카메라 앱이라고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다. “장인이 만든 칼과 일반 공장에서 나온 칼은 분명 다르잖아요.” ‘나인캠(9cam)’을 개발한 박남규 팬타그램 대표의 말이다. 혼자서 이미 51개 카메라 앱을 만들어낸 ‘장인’이다.

“하루에만 수많은 음악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중 명곡은 거의 없죠. 음악은 많이 찍어내는 것보다 명곡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곡처럼 항상 사랑받는 필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7월 12일 출시한 나인캠은 3일 만에 애플 앱스토어 인기 앱 순위 1위에 올랐다. “전혀 예상 못했죠.” 출시 이후 첫 인터뷰에 임한 박 대표는 내내 들뜬 표정을 지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카메라 앱 본질은 막 찍어도 예쁘게 나오는 것”

박 대표는 토목 엔지니어 출신이다. 첫 사업 역시 토목설계 쪽이었다. 부동산 사업 관련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는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2007년이 터닝포인트였다. 싱가포르 국제 업무단지에 반 년 넘게 체류하면서 아이폰이나 블랙베리가 사용되는 걸 보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직감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UI·UX 회사를 열었다. 결국은 폐업했다.

2009년부터는 컬러의 세계에 빠졌다. 디자인과 사진도 배우면서 홀로 사진 관련 앱을 꾸준히 개발했다.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수십 개가 됐다. 누적 다운로드는 500만건을 넘어섰으며 20만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개인이 하기엔 한계치가 분명하더라고요. 더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큰 비전을 꿈꾸게 됐습니다.” 이렇게 문을 연 회사가 팬타그램이다. 창업 후 첫 작품이 나인캠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나인캠은 ‘카메라 앱’ 본질에 충실하다. 앱을 실행하면 심플한 인터페이스를 만나게 된다. 카메라 촬영 라이브 화면을 좌우로 밀면 필터가 바뀐다. 마음에 드는 필터를 골라 하단 둥근 버튼을 터치하면 촬영된다. 셀프 카메라에 동물 가면을 씌운다거나 턱선을 깎아주는 기능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의 명암·채도·노출 등을 보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본질에 집중한 결과다. “사진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을 잘하는 회사는 굉장히 많잖아요? 우린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본질에 충실하고, 그런 본질을 성장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코어(Core)를 단단하게 다지면서 회사를 키워내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카메라 앱의 본질은 “그냥 찍어도 예쁘게 나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설명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려워합니다. 사용자들이 찍으면 우리가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앱이 나인캠입니다. 사용자들은 셔터만 누르면 되고, 나머지는 우리 기술을 녹여낸 앱이 알아서 예쁜 사진을 만들어줍니다.”

▲ 출처=팬타그램

하나의 필터를 얻기 위한 수천 번의 반복

나인캠의 핵심은 9가지 필터다. 각각 다른 느낌의 사진을 만들어준다. 수만 개의 후보 중에 최종 9가지 필터만을 선별해 나인캠에 담았다. 팬타그램이 필터를 만드는 과정은 다른 회사와 사뭇 다르다. 기존 필터 대부분은 포토샵이나 라이트룸 같은 사진 편집용 소프트웨어로 만들어낸다. 개발 과정이 특정 SW에 종속되는 만큼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반면 팬타그램은 3차원 방향에서 세밀하게 설정 값을 조정할 수 있는 고유 기술을 활용한다.

필터 개발 과정엔 땀이 묻어 있다. 스튜디오에서 설정한 값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 테스트하고, 잘못된 부분은 다시 돌아와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필터당 적게는 수백 번, 많게는 수천 번까지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런 작업을 단기간에 하기엔 힘들죠.” 9가지 필터에는 장인 정신이 담겨있다. 한 베타테스터가 이런 평을 내린 건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나인캠을 써보니 지금까지의 카메라 앱들은 마치 아이팟이 나오기 전 MP3 플레이어들 같습니다.”

▲ 나인캠으로 찍은 사진. 출처=팬타그램

박 대표는 나인캠 필터가 마치 유기체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카메라 앱 필터는 한번 만들어 놓으면 거기서 끝이다. 반면 나인캠 필터는 진화를 거듭한다. 사용 데이터가 쌓일 때마다 세밀한 부분까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까닭이다. 팬타그램은 나인캠 출시 이후 업데이트를 한 차례 진행했다. 업데이트 정보를 보면 팬타그램이 어떤 필터의 어떤 컬러를 어떤 방향으로 수정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수치화해서 제공하고 있다.

‘카메라 앱+SNS’ 팬타그램의 미래는

무료 카메라 앱의 수익 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사용자가 몰리면 트래픽을 바탕으로 광고를 받는 것이 주요 수익모델이다. 나인캠 역시도 마찬가지다. 일단 올해 연말까지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 이후 박 대표는 유저를 최대한 끌어모은 뒤 다양한 수익모델을 하나하나 시험해보면서 앱에 적용해볼 생각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글로벌 시장도 공략할 예정이다. 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 진출도 타진할 계획이다. “진출이 유력한 시장은 베트남과 태국입니다. 베트남의 경우 우리 회사 투자사인 더벤처스 지사가 있는데, 그쪽을 통해 조금 더 시너지를 낼 예정입니다. 태국은 사진 시장 규모가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에 유망하다고 봅니다.”

해외 진출을 타진하면서도 나인캠 자체는 계속 발전시켜나갈 방침이다. “사용자들이 찍은 사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화해나갈 겁니다. 예를 들어 다른 카메라 앱의 벚꽃에 특화된 필터를 보면 벚꽃은 물론 사람 얼굴까지도 분홍색으로 바꿔줍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얼굴은 빼고 주변만 분홍빛으로 바꿔주도록 하는 거죠.”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박 대표는 팬타그램을 사진 전문 서비스 기업이라고 규정한다. 나인캠은 어쩌면 그 시작일 뿐이다. 카메라 앱으로 시작해 소셜 기능까지 아우르는 사진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로 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스티브 잡스가 인류학자들을 모아놓고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들’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음악이라서 아이팟을 출시했던 겁니다. 토론 결과 ‘사진’ 역시도 우선순위에 올랐습니다. 사진 관련 시장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 대표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