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목화아파트. 출처=구글맵 캡처

“온 나라를 콘크리트 천지로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수직증축이 불안하다고요? 재건축만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이 건물 구조적으로 더 불안합니다!”

건설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모인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방만하게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다. 이들은 공동주택 리모델링 수직증축 시 내력벽을 철거하면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우려에도 보강공사 등이 뒤따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답했다.

지금도 많은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구옥들을 밀어 낼 재건축 사업의 허가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재건축을 하면 새 집을 얻고 덤으로 집값까지 뛰어 주니 이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콘크리트 수명은 100년이 넘는데 한국 집의 평균 수명이 27년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나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 노후 아파트들에겐 재건축 말고도 또 하나의 옵션이 있다. 재건축과는 달리 준공 30년이 되지 않아도 15년 이상만 되면 사업의 요건을 갖출 수 있는 리모델링 사업이 다른 선택지다.

아파트 리모델링, 재건축과 견줘도 장점 많아

무분별한 재건축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인 리모델링 사업은 재건축보다 쉽고 장점이 많다. 기간도 2~3년이면 충분하고 공사비용은 15~20% 줄어들지만 집값 상승 등의 사업성은 재건축 못지않다. 때문에 현재 서울만 여의도 목화아파트, 강남 개포동 대청아파트와 대치2단지, 용산 이촌동 현대아파트 등 24곳이 리모델링으로 단지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 사업비를 따져보면 재건축이 비싸지만 리모델링은 기부채납 등의 부담이 없다. 최근 리모델링 관련 규제들이 대폭 완화되면서 관심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고 자원을 절약하는 리모델링 사업에 긍정적이다. 지난 2003년 주택법에 리모델링 제도는 처음 도입됐다. 2013년 ‘4.1 부동산 대책’을 통해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용 방침을 밝힌 이후, 2014년 4월에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전면 허용됐다.

이인영 한국리모델링협회 기술위원장은 “국토교통부는 수직증축 허용이후 건축전문가들과 함께 총 6단계에 걸쳐 건물의 안전성을 확인, 검증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도록 안전을 최우선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지은 지 15년 이상 된 공동주택은 신축 당시 구조도가 있는 경우 15층 이상은 최대 3개 층(14층 이하는 최대 2개 층)까지 증축이 가능해 졌고 가구수를 최대 15%까지 늘릴 수 있게 됐다. 예컨대 1000가구 규모의 단지는 리모델링으로 최대 150가구까지 더 지을 수 있었고 증축하는 만큼 일반분양이 가능해 사업성이 높아졌다.

내력벽 일부 철거 허용 법개정 추진중

또 올 초에는 세대간 내력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기로 하고 현재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 리모델링 추진단지 중 대부분이 세대 간 내력벽 철거 문제를 두고 사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내력벽 철거 기준이 완화되면 내부 2베이 설계를 3, 4베이 구조로 바꾸는 등 수요자의 생활편의를 더할 수 있게 된다.

임철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구조산업위원장은 “기본적으로 B등급 이상의 건물을 수직증축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내력벽 철거 여부가 리모델링 안전성을 평가하는 잣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리모델링 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보수보강 작업들이 건물을 한층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고도 말해 국민적 불안을 불식시켰다.

오는 8월부터는 아파트 전체를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주민 동의 요건도 현행 동별 구분소유자의 의결권 ‘3분의 2 이상’에서 ‘2분의 1 이상’으로 완화했다. 정부는 리모델링 단지 조합원에게 늘어나는 면적에만 취득세 부과할 방침이라고 세제혜택까지 주기로 했다.

리모델링 주민동의 요건 8월부터 대폭 완화

그런데도 여전히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을 선호하는 주민들이 많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준공 15년 이상의 리모델링이 가능한 아파트가 200만 가구를 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서울과 경기도에서 34개 단지(약 1만7000여 가구)만이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가 아파트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내의 리모델링 사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강남 재건축 단지의 고분양가 행진에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으로 돌아서는 단지들이 늘고 있는 것.

한국 최초의 대형 고급 아파트 단지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다 재건축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14개동 576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워커힐아파트의 재건축준비위원회는 지난 2014년에 “워커힐아파트의 용적률은 103%이지만 건축법상 190%까지 건축이 가능하다” 며 “세대수를 늘려 평당 2500만원에 일반분양을 하게 될 경우 가구당 평균 2억3천만원의 사업수익이 생기게 된다"고 추산했다.

반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재건축 의지를 보였던 여의도 목화아파트의 경우 결국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목화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설립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사업성을 따져봤을 때 재건축보다 리모델링 사업이 유리해 결정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1977년 입주한 목화아파트의 경우 리모델링 사업시 현재 총 312가구에서 일반분양분이 46가구가 늘어난  358가구로 증축가능하다.

리모델링과 재건축 중 어느 것이 유리한 지를 따져 볼 때 먼저 생각할 것은 단지의 용적률이다.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낮은 용적률을 가진 단지가 가능한 한 최대의 용적률을 최대로 끌어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과거에 지어진 도심의 저층 아파트 단지들이 유리했다. 그러나 300% 용적률에 육박한 1990년대 이후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은 전과 같은 가구 수 증가를 통한 이익을 누릴 수 없게 됐다.

90년대 이후 고층 아파트 단지 재건축 득실 따져봐야

또 재건축의 경우 법적 상한용적률 300%에서 임대주택 25%를 공제한 용적률 275%×91%가 실질적으로 조합원에게 이익으로 반영되는 용적률이다. 반면 리모델링(전용면적 85㎡ 이하 기준)은 수평ㆍ수직 증축 시 전용면적의 최대 40%, 가구수는 15% 늘릴 수 있어 재건축보다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을 수도 있다.

1987년에 지어진 반포 미도아파트와 같은 대표적인 리모델링 추진 단지도 재건축연한이 준공 후 30년으로 줄어들면서 재건축으로 환승해 이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반포 미도 조합은 재건축 연한을 채우고도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15층의 고층으로 용적률 면에서도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공사기간이 긴 재건축의 특성을 고려한 장기적 서울시 부동산 전망을 다소 회의적으로 보는 주민들도 있지만 지하철 3ㆍ7ㆍ9호선 3개 노선 환승역인 고속터미널역 근방으로 최근의 강남 재건축 열풍을 이어갈 것이라는 주민들도 있다. 이미 이처럼  주거환경 개선과 사업성 등은 각각의 단지 특성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돼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정광량 회장은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1988년 이전에 준공된 노후 아파트 단지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조만간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