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가상현실(VR)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VR 헤드셋 기대작이 여럿 출시되면서 올해 VR 시대가 열릴 것 같았다. 올 초만 하더라도 이런 문장이 유행했다. “2016년은 VR 원년이 될 것이다.”

벌써 8월이 다가오지만 VR 대중화는 더디기만 하다. 대신 증강현실(AR) 기술에 때 아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실세계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은 AR 헤드셋을 개발 중이다.

▲ 출처=포켓몬컴퍼니

‘포켓몬GO’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이앤틱·닌텐도·포켓몬컴퍼니가 손잡고 만든 위치기반 AR 모바일게임이다. AR 접목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포켓몬GO가 인기를 끌자 AR 기술에 관심이 쏠렸다.

한 쪽에선 우리에게도 훌륭한 AR 기술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SK텔레콤은 일찍이 AR 플랫폼을 구축했다. 정부 주도로 AR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도 있다. 또 KT는 포켓몬GO와 정말 유사한 몬스터 수집 AR 게임 ‘올레 캐치캐치’를 서비스하기도 했다.

이런 의문도 나왔다. “왜 포켓몬GO는 우리 손에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포켓몬GO에 적용된 AR 기술쯤은 우리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때 나온 키워드가 IP(지적재산권)이다. 우리에겐 포켓몬 같은 슈퍼 IP가 없었다.

IP 콤플렉스 자극, 왠지 모를 억울함

포켓몬GO가 AR 게임이라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포켓몬 IP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광풍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으론 둘리GO나 뽀로로GO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콧방귀를 뀌며 많은 이들이 말했다. 제대로 된 IP 하나 없는 우린 제2의 포켓몬GO를 절대 만들 수 없다고.

우리 안의 IP 콤플렉스를 자극했다.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지난해부터 IP는 업계 최대 화두였다. IP 활용으로 득을 본 회사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다. IP는 지금까지도 유행어로 통한다.

▲ 출처=NHN엔터테인먼트

‘프렌즈팝’과 ‘프렌즈런’의 공통점은 카카오프렌즈 IP 기반 모바일게임이라는 거다. 웹툰 ‘갓오브하이스쿨’은 모바일게임 2종으로 제작됐다. 선데이토즈는 애니팡 IP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넷마블게임즈는 PC온라인게임 ‘스톤에이지’를 모바일게임으로 개발했다. 사례는 이외에도 얼마든 존재한다.

IP에 대한 인식 역시 무르익고 있다. 늦었다고 하더라도 IP 창안과 활용의 중요성 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IP를 홀대하는 우리 콘텐츠 업계에선 포켓몬GO가 탄생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이제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넌 공부를 안 하니 절대 성적이 좋을 리 없어”라고 잔소리하는 모양새니까.

IP 활용 순환고리 만들어야

포켓몬·스타워즈·미키마우스 같은 슈퍼 IP가 아직 우리에게 없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슈퍼 IP를 급조할 수도 없다. IP는 오랜 기간 숙성을 통해 빛을 발하는 까닭이다. 슈퍼 IP를 당장 만들자는 말만큼이나 “우린 어차피 안 돼” 식의 자학도 생산성 없긴 마찬가지다.

슈퍼 IP를 얻기 위해선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전 개념인 원소스멀티유즈(OSMU)와 콜라보레이션은 여전히 유효하다. 있는 IP를 활용하는 각양각색 시도와 함께 새로운 IP 창안을 동반해 선순환 구조를 짜는 작업이 요구된다.

IP 활용 순환고리를 만들어 꾸준히 가동하면 IP들은 숙성된다. 그중에선 슈퍼 IP로 진화하는 것들도 탄생할 것이다. 국내에도 슈퍼 IP 홀더가 생겨날 수 있다. 포켓몬GO를 우리 손으로 당장 만들 순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P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미 가능성은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