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신한은행 한 지점을 찾았다. 휴면계좌를 인터넷뱅킹에 연동시키기 위해서였다. 평일 점심시간, 고객은 2~3명에 불과했다. 번호표를 뽑자 마자 번호표에 적힌 숫자가 상담 창구 전광판에 표기됐다. 그때 까지만 해도 곧 업무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상담직원과 마주 앉았다.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기존 계좌를 인터넷뱅킹에 연동시키는 절차가 빠른 지, 인터넷뱅킹이 가능한 신규계좌를 개설하는 절차가 빠른 지 물어봤다. 상담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창구 책상에 부착된 공고문을 안내해줬다. 통장개설에 필요한 증빙서류 목록이었다.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아요”

금융당국은 작년 11월부터 대포통장 피해예방을 위해 입출금 통장 발급절차를 강화했다. 개설 목적에 따라 납세증명원, 재직증명서, 물품공급계약서 등 10여개 서류 중 1개를 제출해야 된다. 당시 빈손으로 방문한 까닭에 휴면 계좌를 활용하기로 했다. 겸사겸사 체크카드도 발급받기로 했다.

상담직원은 서랍에서 여러 장의 서류를 꺼냈다. 형광펜으로 서명란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직원의 손놀림은 짧지 않은 시간동안 빠르게 움직였다.  

상담직원이 서류를 건네며 “작성해야 할 서류와 서명란이 좀 많죠? 근래 들어 부쩍 늘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대포통장 예방 정책이 강해졌고, 고객님께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도 동의가 필요해졌어요”라고 덧붙였다. 체크카드 신규 발급에 30분정도 소요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둘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대신 주변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옆 창구에서는 ‘죄송하다’라는 말과 함께 통장개설 시 필요한 서류를 설명하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고객에게 최근 출시된 모바일 플랫폼 신한 판(FAN)을 영업하고 있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체크카드 발급과 등록이 이뤄졌다. 담당 상담직원은 “혹시 신한 판 사용하세요? 이게 카드 포인트도 관리해주고 좋은데...”라거나 “안드로이드 사용자면 구글 스토어에서 다운로드 가능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체크카드를 발급받은 김에 신한 판도 다운로드 받아 달라는 의미었다.

결국 상담직원 앞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카드를 등록했다. 그는 “거기 추천인 입력란이 있어요”라며 손을 내밀었다. 본인을 추천해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스마트폰을 건네자 상담직원은 추천인 표기란에 무언가를 등록하고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자신의 사원 정보였지 싶다.

▲ 지난 21일 신한은행 한 지점에서 40여분만에 발급받은 체크카드.

마지막까지 그는 “은행 나오셨을 때 신용카드도 하나 만드시는 게 어떠세요. 자주 나오시기 어렵잖아요”라며 영업력을 발휘했다. 사용하는 카드가 있다는 거절에도 “다들 쓰시는 신용카드가 있으셔서 요즘은 발급하시는 분이 적거든요”라며 호소에 가까운 권유를 이어갔다. ‘다음 기회에 만들겠다’ 둘러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넷뱅킹 신청과 체크카드 발급에 40여분이 소요됐다.

금융업계, 모바일 플랫폼 영업전 치열

은행, 카드사 등 금융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보안 절차를 강화하거나 고객 편의를 증진하겠다는 명목아래 다양한 서비스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우선 모바일 멤버십 경쟁이 심상치 않다. 신한금융 판 클럽, 하나금융 하나멤버스, 우리은행 위비멤버스 등이 대표적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9월경 멤버십 시장에 뛰어들 전망이다.

모바일 플랫폼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우리은행의 위비뱅크를 시작으로 불과 1년 동안 IBK기업은행(i-ONE뱅크), 신한은행(써니뱅크), KEB하나은행(1Q뱅크), KB국민은행(Liiv) 등이 론칭됐다. NH농협은행도 다음달 ‘올원뱅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각 사들의 신규상품 출시·홍보전이 치열해질수록 고객유치, 상품설명 등 일선의 업무강도는 강해질 개연성이 크다. 최근 타 은행들의 일상도 신한은행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 금융사들이 신제품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업전이 치열하다”며 “실적 압박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객과 상담할 때 동의를 받거나 공지해야 될 내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일부 고객들은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눈치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