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 감수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기자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새로운 주제를 다뤄 흥미롭기도 했지만 저자가 일본인, 또 채권 애널리스트라는 점에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책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막연하게 저자를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꿈은 이뤄진다고 했던가. 기자는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의 저자 도쿠가츠 레이코와 실제로 대면하게 됐다. 그렇게 저자와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는 한국에서 지난 6월에 번역돼 출간됐다. 일본에서는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 전인 2015년에 출판됐으니 이 책은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암시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예측’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상태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서 현실화 되지 않기를 바란 것일 뿐, 이를 예측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만큼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시장의 두려움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저성장은 거스를 수 없어요. 과거 고성장은 인구증가, 경제적 성숙 미흡 등과 결합됐지만 현 시대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들의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왜 경제는 성장하지 못하는가’의 의문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이었다. 이어 저자는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과 시장에 대한 의견도 내놨다.

“과거에는 중앙은행의 정책이 시장을 움직이는 역할을 했지만 이 또한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향후에도 단기적으로 중앙은행이 시장을 리드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오히려 정책이 반영하는 격이죠. 만약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여러 자산이 폭락하는 등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에요”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같다. 중앙은행이 정책을 통해 시장을 움직이는지 혹은 반대로 시장이 움직이고 이를 정책이 반영하는지 여부는 선명해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가 부진한 이유’에 대한 대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저자가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를 처음 집필하던 시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당시 일본은 이미 마이너스 금리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말 그대로 시장이 마이너스 금리를 요구하고 있었다는 측면으로 해석하면 실제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즉, 경제성장은 차치하더라도 위기를 선제적으로 차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저자가 말한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그만큼 시대가 변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쉽게 말해, 과거와 같이 중앙은행이 시장을 움직이는 원리는 더 이상 작용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세계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금리수준을 ‘테크니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저성장을 인정하라...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라

“과거에도 저성장과 고성장은 반복됐지만 중요한 것은 그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앞서 언급했던 인구증가율 둔화 등과 맞물리게 된 결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하이퍼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낮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율도 낮아진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국가부채를 증가시키는 격이죠”

여기서 저자는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지 않기 바랐던 이유를 조심스레 언급했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마이너스 금리 자체가 화폐가치를 낮춘다는 점에서 이는 인플레이션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명목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국가 부채를 증가시킵니다. 이 모든 부담을 누가 지게 될까요? 우리 후손들이죠”

저자와의 대화 중 가장 전율이 일었던 부분이다. 그는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함은 물론 더 나아가 실제 마이너스 금리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까지 그리며 다음 세대들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의 연륜만큼이나 생각이 깊었던 것일까. 아니면 기자가 아직도 어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종종 어르신들이나 선배들이 ‘후손’을 걱정하는 얘기를 듣곤 했지만 체감할 수는 없었다. 또 저자와의 대화에서도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책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욱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추다보면 경제가 오히려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 저성장을 인정하면 달라질 수 있어요. 저성장을 하거나 혹은 성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속에서 흥하는 산업이 있고 망하는 산업이 있을 수 있죠. 물론 버블도 발생할 수 있고요. 그것은 전체 경제의 일부일 뿐입니다”

다시 생각해보자.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는 과거 고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성장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산업별로 흥망성쇠를 거치다 보면 또 다시 고성장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고성장의 향수에 젖은 맹목적인 경기 부양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저금리 혹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저성장을 인정하라’는 것이 저자의 주된 메시지다. 저성장을 인정하게 되면 생각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로 세계 경제성장률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또한 위기론으로 몰고 가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영국이 브렉시트 결정 이후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는 금리가 낮아질수록 정책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잘한 일입니다.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발생하지도 않은 일이 두려워서 지레 겁을 먹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 저성장을 인정하지 않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통해 고성장을 달성하려는 정책에 대해 경고한 셈이다. 저자는 한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보다 멀리, 또 넓은 관점에서 시장을 볼 것을 제안했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경제적 논리는 오히려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판단하고 대응하는 것은 물론 정책이 예상과는 다르게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른 방책을 강구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의미심장한 조언을 했다.

“책을 보는 일반 독자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냈음 합니다”

이는 저자가 인터뷰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역으로 정책이 반영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를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강조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눈을 번뜩이게 했다.

기자는 저자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만남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결국 세상은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만들어 간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마이너스 금리의 경고>의 저자 도쿠가츠 레이코가 그 ‘한 사람’들을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책을 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