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전문 문성병원 김종철 과장

진료 중 환자들에게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선생님, 이 검사 꼭 해야 하나요?”입니다. 특히 뇌검사(CT나 MRI처럼 비교적 비싼 검사)를 해야 할 경우, 또는 환자가 느끼는 증상이 경미한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심할 경우에만 검사에서 이상이 나타나고, 증상이 가벼울 때는 이상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다들 예상하듯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검사 결과 이상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상이 나올 가능성은 낮지만 그렇다고 검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기가 애매모호할 때도 있습니다. 의사의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얼마 전 80세의 어르신이 경미한 어지럼증으로 내원했습니다. 증상이 경미하고 신경학적 진찰에서 특별한 이상소견이 없어 고가의 검사는 일단 보류하고, 우선 어지럼증을 호전시키는 약물치료를 3일 시행한 후 다시 내원하도록 했습니다. 3일 후 어지러운 증상은 호전도 악화도 되지 않았습니다. 뇌 사진에서 이상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만의 하나의 경우를 생각하여 MRI 촬영을 결정했고 그 결과 급성 뇌경색 소견이 관찰되어 즉시 입원치료를 했습니다. 환자의 증상이 경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의의 판단을 신뢰하여 검사를 시행했기 때문에 장차 발생할 수 있을 더 큰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증상이 매우 심한 어지럼증의 경우 뇌의 병변이 아닌 귓속 전정기관 이상(우리가 흔히 달팽이관의 이상이라고 부르는 질환)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듯 증상의 심한 정도가 중증질환 구분의 척도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77세의 어르신이 이틀 전 어지럽고 말이 어둔하며 보행이 힘든 증상이 발생하여 내원했습니다. 증상이 생긴 날 다른 병원에서 MRI를 촬영하고 결과를 가지고 왔는데, 그 사진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내원 당시 진찰에서도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 있었고, 이런 경우 분명 MRI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야 하는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고민이 되었습니다. ‘MRI 소견이 정상이니 큰 이상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다른 병원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더라도 재검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으니 다시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MRI 검사 비용이 적지 않은 금액이기에, 검사 결과 다시 이상이 없을 경우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상 소견이 종종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환자와 보호자에게 재검을 권유했고, 환자와 보호자는 비슷한 고민을 한 후 MRI를 다시 찍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는 이전 사진에서 보이지 않던 급성뇌경색 소견이 발견되어 입원치료를 했고, 이후 큰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퇴원하여 현재는 외래에서 정기적으로 추적관찰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이 원하는 병원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옮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시행한 후, 그 결과를 가지고 내원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과에서 분명한 이상이 있는 경우, 그것이 환자의 증상과 일치한다면 고민하지 않고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지만, 검사결과와 추정진단과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 의사와 환자 모두 고민을 하게 됩니다.

19년 전 신경과 수련을 시작할 무렵에는 지금처럼 뇌를 정밀하게 볼 수 있는 MRI 검사를 바로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환자가 오면 자세한 병력을 청취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학적 진찰을 시행하여 신경계의 어느 부위에 병변이 있을 것인지, 어떤 병변이 있을 것인지, 또 그 병명은 무엇일지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 정밀검사(MRI를 포함)를 시행했고, 그 검사 결과와 이전에 내린 추정진단을 비교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정밀검사가 널리 보급되어 병을 진단하기가 편리해졌고,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이상소견들까지 더 많이 더 빨리 발견하고 치료하고 있습니다. 기본이 되는 병력청취와 신경학적 진찰 소견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정밀검사를 하지 않고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환자의 경제적 사정과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여 필요한 검사들을 주저하며 망설일 때도 있지만, 의사 또한 실수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원칙과 소신을 지켜 환자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오늘도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