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스티커 때문에 먹지도 않는 빵을 사던 아이들이 어느덧 어른이 됐다. 책받침 가득 스티커를 모아 붙였던 이들이 최근 다시 포켓몬에 끌리고 있다. ‘포켓몬 GO’ 탓이다. 나이앤틱·포켓몬컴퍼니·닌텐도 합작으로 탄생한 위치기반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이다.

포켓몬 GO 광풍이 일었다. 아직 극히 일부 나라에만 정식 출시했지만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출시 2주 만에 3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는가 하면, 기력이 쇠했던 닌텐도는 주가가 폭등하며 시가총액이 곱절로 뛰었다. 포켓몬 GO 플레이에 열중하느라 지뢰밭 같은 접근 제한구역에 들어가거나 도랑에 빠지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포켓몬 GO 대소동이라 부를 만하다.

한국도 광풍에 흔들거렸다. 해외 출시 버전으로도 플레이 가능한 속초 지역에 유저가 몰리는가 하면 ‘왜 우린 포켓몬 GO를 만들지 못했는가’ 식의 곡소리도 들려왔다. 한국형 포켓몬 GO를 만들자는 얘기도 나왔다. AR 기술 기반 게임을 개발하자는 소리다. 한편에서는 포켓몬 GO 조상이 수 년 전 이미 우리 손에서 태어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몬스터 수집 AR 게임 ‘올레 캐치캐치’가 그것이다.

포켓몬 GO 조상은 한국에 있었다?

올레 캐치캐치는 2011년에 등장했다. 포켓몬 GO보다 5년은 앞선 셈이다. AR 게임 족보에서 한참을 앞서 있으니 조상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이 게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KT가 선보였다. KT는 이를 게임으로 단정짓기보단 AR 마케팅 플랫폼 역할까지 부여했다.

단순히 AR 게임이라고 해서 포켓몬 GO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두 게임은 진행 방식이 정말 비슷하다. 올레 캐치캐치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면 카메라 촬영 화면으로 사용자의 주변 환경을 둘러볼 수 있는데, 그러다 보면 몬스터 캐릭터가 불쑥 나타난다. 이를 잡으면 된다. 포켓몬 GO랑 다를 게 없다.

다른 점도 분명 있다. 포켓몬 GO 유저들은 희귀하고 더 강력한 포켓몬을 잡아서 키우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반면 올레 캐치캐치는 몬스터를 잡으면 실질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각종 쿠폰과 올레클럽 포인트를 준다. 현실세계에서 이득은 포켓몬 GO보다 올레 캐치캐치 쪽이 큰 셈이다.

올레 캐치캐치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그때그때 달랐다. KT는 수시로 이벤트 몬스터를 추가했다. ‘황금몬스터를 잡아라’라는 이벤트를 진행해 해당 몬스터를 잡으면 진짜 황금을 주는 식이었다.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AR 개념에도 부합하는 영리한 기술 응용이었다.

마케팅 플랫폼으로도 주목받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롯데리아몬’을 잡으면 롯데리아 쿠폰을 줬다. 30개 넘는 업체가 올레 캐치캐치를 통해 이색 마케팅을 벌였다. 올레 캐치캐치는 업체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마케팅 수단이었고, 유저에겐 게임을 즐기며 혜택도 얻을 수 있는 유용하고 신기한 앱인 셈이었다.

KT도 올레 캐치캐치가 지닌 잠재력에 큰 기대를 거는 것처럼 보였다. 2012년엔 글로벌 모바일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당당히 출품했다. 그 당시 MWC에서 AR 게임은 올레 캐치캐치가 유일했다. 이 신개념 게임은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여지가 다분했다. 그런데.

20년 숙성 IP 파워, 운명 갈랐다

생명력은 1년뿐이었다. KT는 조용히 올레 캐치캐치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용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을 접었다.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 어딘가에 묻히는 듯했다. 그런데 포켓몬 GO 광풍이 불면서 갑작스럽게 불려 나왔다. 포켓몬 GO 조상쯤 되는 게임 자격으로.

그러면서 왜 올레 캐치캐치는 포켓몬 GO가 될 수 없었는가에 대한 이 말 저 말이 오갔다. 핵심 키워드는 IP(지적재산권)였다. 포켓몬 GO는 20년 숙성된 포켓몬 IP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반면 올레 캐치캐치는 슈퍼 IP의 지원사격을 받지 못했다. ‘올레몬’이나 ‘머거몬’ 같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몬스터는 피카츄와 수백 친구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닌텐도는 IP 홀더로서의 저력을 보여줬다. 플랫폼 격변기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IP 파워로 씻어낸 셈이다.

우리 게임업계가 IP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유행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업계 관계자들은 IP 타령을 했다. 그들은 IP가 콘텐츠 사업의 핵심이며 잘만 활용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머리로는 말이다. 포켓몬 GO는 머릿속 이론을 확인시켜준 사례인 셈이다.

다만 슈퍼 IP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 포켓몬처럼 긴 시간 숙성돼야 빛을 발한다. 적어도 10년 후를 내다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당장에 눈앞 현실이 녹록치 않은 상황해서 장기적 관점은 사치이기도 하다. 많은 회사가 IP 창안보다는 활용에 관심을 보이는 데 머무는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토종 IP를 활용해 AR 게임을 만들겠다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뽀로로 IP를 보유한 아이코닉스는 AR 서비스 업체 소셜네트워크와 ‘뽀로로 GO’ 개발에 착수했다고 알려왔다. 포켓몬 GO 광풍에 올라타 파생효과를 선점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국형 포켓몬 GO 탄생 조짐이다.

그런데 ‘제2의 포켓몬 GO’나 ‘한국형 포켓몬 GO’가 아닌 우리만의 오리지널리티도 요구된다. 콘텐츠 산업의 장기 생존 체계를 이루기 위해서다. 기존 IP의 영리한 활용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본 IP 창안과 숙성 작업에 투자해야 하는 이중 과제가 눈앞에 있다. 후자는 마치 원천기술을 연구개발할 때와 같은 뚝심, 그리고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