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콘텐츠 마케팅업체를 운영하는 이은지 씨는 인터넷선과 노트북 컴퓨터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 일명 ‘디지털 노마드’다. 이 씨는 20대에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후 서울시 창업지원센터와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개인 사무실, 심지어는 일정 기간 해외에서 머물면서 일을 해왔다. 홍대 앞 게스트 하우스의 장기계약자인 폴(가명) 씨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IT 기업의 개발자다. 그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지에 머물면서 메신저와 회사의 원격근무 시스템을 통해 별 어려움 없이 일과 여행을 함께 즐기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rmad)'는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의 발달, 1인 기업의 증가, 출퇴근이 강요되지 않는 신생 스타트업 특유의 문화 등을 배경으로 생겨난 ‘신인류’다. 이들의 등장은 뜻밖에도 전통적으로 잘 변하지 않는 업계로 알려진 부동산 시장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이들은 장기로 사무실을 임대하지 않고 재택 근무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활용하는 '코피스(Coffee+Office)' 문화를 만들어냈고, 단기간 사무공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해 일했다. 그렇게 탄생한 공유 오피스 공간은 2015년 기준 전 세계 7800여개에 달한다. 전 세계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숫자는 2018년까지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공간도 나누고 아이디어·인력도 나누자

단순히 공간을 나눠 쓰는 ‘셰어링 오피스(공유 사무공간)’를 다음 단계의 ‘코워킹 스페이스(협업 공간)’로 발전시킨 업체가 바로 미국의 ‘위워크(WeWork)’다. 위워크는 전 세계 6만4000여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협업 공간이다. 

유태인 사업가 아담 노이만이 2008년 동업자와 함께 브룩클린의 사무실을 임차하고 남는 공간을 나눠 임대한 것이 세계 최대 스타트업 중 하나인 위워크의 전신 ‘그린데스크’라고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기준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160억달러(약 18조2400억원)로 노이만은 최근 행사에서 내년 1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고 장담하며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단행할 의지도 내비쳤다.

 

위워크의 괄목할 만한 성장 이후 부동산 업계는 코워킹 트렌드가 오피스 임대 시장을 바꿔놓고 있다고 평가한다. 위워크의 대표 전략은 입주사 간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집단노동 공동체 '키부츠(kibbutz)' 출신인 노이만 대표는 사무실 내 벽을 허물고 입주한 업체들이 책상을 같이 쓰게 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서로를 동료이자 파트너로 받아들이기에 이르렀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다. 위워크 커뮤니티의 멤버가 되면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전 세계 위워크 멤버인 전문가들의 답변을 받아볼 수도 있고 필요한 인력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위워크'

위워크의 한국 진출이 오는 8월로 다가왔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위워크 한국 1호점은 공사 마무리 단계로 임차인 모집에 한창이다. 위워크의 진출에 앞서 이미 이를 벤치마킹한 한국의 ‘패스트파이브’나 ‘스페이스332’ 등 사무공간 임대업체와 유사한 성격의 공간을 제공하는 ‘르호봇’, ‘디캠프’, ‘구글 캠퍼스’ 등의 창업 인큐베이팅 업체, 공유 공간을 따로 마련한 전통 서비스드 오피스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들은 성격이 조금씩 달랐는데 현재로서 위워크와 가장 닮은 패스트 파이브는 현재 서울에 4개 지점 400여 업체가 입주해 있다. 전아림 패스트파이브 매니저는 “입주사들을 대상으로 ‘월컴 인터뷰’를 진행해 얻어진 정보를 저장하고, 지점별로 커뮤니티 매니저를 둬 실제 입주사들의 협업을 돕기 위한 다양한 네크워크 이벤트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IT 기업이 활동하는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스페이스 332는 100여명을 수용하는 250평 규모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 용어로는 '서브리스(Sub-Lease)'라고 하는 재임대 방식으로 공간을 빌려주고 다른 업무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사업 모델은 한국 오피스시장에서도 꽤 오래 전에 자리 잡았다. 르호봇과 같은 비즈니스센터나 리저스, CEO스위트 등의 서비스드 오피스(Serviced Ofiice)가 그 것들이다. 이들의 성격은 사실 최근 등장한 코워킹 스페이스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코워킹 스페이스는 전통적인 오피스 재임대 모델에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한 다른 비지니스 모델이 더해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올해로 18년을 맞은 ‘르호봇’은 전국 38개 센터를 보유한 비즈니스 센터 운영업체다. 르호봇은 지난 5월 신촌 센터를 개장하면서 1개 층을 통째로 코워킹 스페이스로 꾸몄다. 김영재 커뮤니티 매니저는 1층의 경우 차 한 잔만 시키면 인터넷과 충전 콘센트 등이 완비된 공간을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로 ‘코워킹’이 되나요?”

한미나 씨는 전에 쓰던 사무실 계약이 만료돼 다른 사무실로 옮기기 전 2달여 동안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르호봇 신촌센터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선택했다. 그는 “이곳은 ‘어디가 상석이니’ 하는 전통적인 사무공간과는 달리, 젊은 창업자들과 어울리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라면서 “개인 사무실로 입주한 후에도 코워킹 스페이스나 세미나실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개방적이고 소통이 가능한 공유 공간의 매력은 인지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코워킹’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를 운영했던 A 씨는 “수년 전부터 코워킹 스페이스를 꽤 많이 다녀봤지만 실제 협업이라고 할 만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서비스드 오피스업계의 한 관계자도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한 수요가 많아 공간을 마련해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예 비어 있을 때가 더 많다”고 귀띔한다. 서비스드 오피스 내의 코워킹 공간은 협업을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영세업체의 사업자등록을 위한 주소지 설정이나 가상 오피스 등으로 쓰인다는 지적이다.

다른 문제도 눈의 띄기 시작했다.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만난 한 IT 업체 대표는 “미국과 일본에서 미리 코워킹 스페이스를 경험해서 거부감 없이 잘 이용하고 있지만 개방된 장소라는 특성상 회계자료나 회사의 기밀 자료의 보안에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놨다.

 

‘소유’에서 ‘공유’로 “스타트업의 전유물 아냐”

코워킹 공간이 불황기 지갑이 얇은 창업자들의 임시 사무실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라는 해석도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박사는 회사나 팀이 사무실을 같이 쓰던 문화나 한 자리씩 사무공간을 팔던 문화에서 특화된 공동 전용 사무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한다. 김 박사는 “무엇보다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업체의 ‘매니징(관리)’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한국 문화의 특성상 코워킹보다는 개별적인 공간 사용 측면이 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코워킹 스페이스를 사용하는 직군이 작가, 디자이너, IT 개발자 등 일부 직종에 한정돼 시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업계의 예상은 꽤 낙관적이다. 글로벌 종합부동산회사 JLL의 오은정 스마트오피스 디자인팀장은 “기존의 국내 코워킹 스페이스는 소규모 회사나 신생 기업 위주로 이용돼 왔지만 최근 글로벌 코워킹 스페이스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이미 다른 나라에서 맺어진 글로벌 계약이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산업분야에 상관없이 다양한 기업들이 입주를 원한다”고 한다. 특히 제약업체, 보험사 등 영업사원 수가 많은 회사도 직원들에 코워킹 스페이스 회원권을 부여해 서울뿐 아니라 지방 지점들을 고객 미팅이나 근무 공간으로 이용하도록 하려는 시도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코워킹 스페이스들이 다양한 형태로 국내 실정에 맞게 발전될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수직적 조직문화 개선, 유연한 고용형태, 서울 높은 인구 밀도 해결, 네트워크 강화 등 한국 업무 환경에 있어서의 변화도 예상했다. 그는 국내 조직 문화에서 개인 사무공간은 소유의 의미가 크지만 소유(Ownership)에서 공유(Membership)의 새로운 사무공간 개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