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국내경기지표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가 보다. 글로벌 금융 불안의 터널의 끝이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예적금, 주식, 펀드 투자보다는 로또나 연금복권이야말로 유일하게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동앗줄로 여겨지고 있다.

경제 공황이다. 최근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딱 이렇다. 유럽발 금융 위기에 국내 증시는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땅한 대책도 없다. 그저 유럽 경제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은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가장 빨리 회복한 나라 중 하나다. 대기업들의 지난해 매출은 대부분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기까지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경제 성장세도 높게 평가됐다. 최근 유럽발 금융 위기에 국내 증시는 폭락했다. 이주일 만에 300포인트가 넘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국 경제는 꿋꿋하게 잘 버텨낼 것이란 게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다. 200년 미국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달리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유럽 지역의 투자금이 적은 만큼 피해가 적을 것이란 게 이유다. 또 지난 4월부터 유럽발 금융 위기의 움직임을 포착, 주시하고 있었던 점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의 샤론 램 아시아지역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 회복세가 불확실해지고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위험을 잘 방어해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견조한 수출, 외환보유액 안정성, 재정정책 가능성 등을 고려했다. 국가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며 외부 불안 요소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연금복권이 동앗줄?… 없어서 못 판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국내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민경제는 아직 불안한 상황이다. 높게 치솟은 물가는 가계사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예적금, 주식, 펀드에 투자하기보단 운에 베팅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로또, 연금복권이야말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는 유일한 동앗줄로 여겨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2007년부터 복권판매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7년 판매액은 2조3810억원에서 2008년 2조3836억원, 2009년 2조4636억원으로 증가했다. 꾸준히 매출세를 보인다. 2010년, 2011년 상반기 복권판매액도 증가했다.

사행성 산업의 쏠림현상. 서글픈 호황이다. 일각에선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불안한 경제 요소가 많고 힘든 시기가 계속됨에 따라 운에 맡기는 한탕주의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복권의 형태에 따라 찾는 이들도 제각각이다.

최근 가장 인기가 좋은 복권은 연금복권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연금복권 구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1일 판매를 시작한 이후 지난 3일 5회차 까지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6회차도 비슷한 상황. 매진 시간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복권 발행량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쇄도한다. 한국연합복권 측은 당초 연금복권 판매를 앞두고 실적이 부진할 것을 우려, 내부적으로 고민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출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500만원씩 매달 20년간 연금 형태로 지급되는 당첨금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당첨자가 사망하면 가족에게 상속이 되는 점도 매력 중 하나. 운에 제대로 베팅만 한다면 노후 대비와 재산상속 등을 모두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연금복권의 5회차까지 총판매 금액은 300억원가량. 한 장당 1000원의 연금복권이 1회 370만장 발행 이후 2회부터 630만장씩 발행, 모두 팔렸다. 기타 노후 보장을 위한 투자보다 접근이 쉽고 구매(투자)비용이 적어 판매량 증가를 한몫 거들고 있다.

지난 10일 여의도의 한 복권집에서 만난 이현국(36·회사원)씨는 “연금복권을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연속 번호로 1, 2등이 한번에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며 한번 샀다 하면 서너장씩 사가는 사람이 많아 판매점 여러곳을 둘러봐야 한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박현철(42·회사원)씨가 거들었다.

“연금복권 당첨만 되면 노후 걱정이 끝인데 그정도 발품은 팔아야지, 공짜로 받을 수 있나. 20년간 500만원씩 준다는 데 이만한 상품이 어디 있나. ‘아수라 발발타(영화 타짜에서 대박을 기원할때 사용되던 주문)’. ”


최근 증시 폭락에 로또복권 판매 급증

연금복권의 당첨은 운이다. 하지만 많이 구입하면 당첨될 확률이 높다는 인식이 강하다. 로또보다 당첨확률이 높다는 기대감에서다. 연금복권 당첨 확률은 대략 315만분의 1이다.

700만 분의 1인 로또보다 절반가량 당첨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복권은 복권이다. 아무리 당첨 확률이 높다고 해도 315만명 중에 한명으로 선택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사재기로 인한 구매도 쉽지 않다.

로또는 이런 점에서 가장 판매가 많이 되는 복권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 당첨 확률은 낮지만 얼마든 구매가 쉽고 구매량에 따른 제한이 없다. 덕분에 연간 2조5000억원가량씩 팔려나간다. 매주마다 판매량은 제각각이지만 평균적으론 비슷하다. 다만 최근 증시 폭락과 맞물려 로또 판매량은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로또 정보 사이트 로또리치(lottorich.co.kr)는 “경제적 불황이 닥칠 때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서민들이 로또에 희망을 갖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로또리치에 따르면 경제 상황의 악화가 복권 판매액의 증가세를 보였다.

2003년 이후 매년 10%씩 감소하던 로또 판매액은 2010년 말 미국발 악재로 인해 경제 불황을 맞은 뒤 대폭 증가한 바 있다. 또 최근 석달 로또 판매액은 각각 약 506억원, 502억원, 499억원으로 전년 동월의 448억원, 457억원, 455억원보다 많았다.
나눔로또 관계자는 “매주 판매량은 차이가 있으며 최근 조금 줄었지만 그동안 상승세를 보였다”고 했다.

로또는 출범 첫해인 2002년 1500억원 판매 이후 매출액이 급증, 2003년 4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지난해 매출 규모는 2조4000억원 대로 금액만 놓고 봤을 때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로또가 88회차(2004년 8월 7일)부터 2000원이던 판매금액을 1000원으로 낮춰 판매했던 점을 감안하면 판매량은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강원랜드 카지노 객장 모습.


스포츠토토는 마니아층까지 형성

노량진의 로또 판매점에서 만난 유한일(32·고시생)씨는 “2004년 이후 매주 5장(5000원)을 구입했고, 2008년 이후 10장씩 구입하고 있다”며 “5등 이외에 당첨되어 본 적은 없지만 가장 확실한 미래 대비 수단으로 로또 구입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복권도 좋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것 보다 한번에 많은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점에서 로또를 한다고 했다. ‘인생역전’을 위한 일종의 투자라는 게 그의 말이다.

송희태(31·고시생)씨는 “대학시절만 해도 로또를 처다보지 않았지만 3년 전 부터 매주 5장씩 구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은 줄어들었지만 식비를 아껴서라도 로또를 사 지갑에 넣어두면 든든한 마음이 드는 게 좋아 구입한다”고 강조했다. 당첨만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지갑을 여는 것이다.

스포츠토토는 젊은층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최근엔 여성의 참여도 늘었다. 배구, 야구 등이 인기를 모으며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베팅을 통해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각 구단의 전력을 비교해 결과를 맞추면 보상이 따른 다는 점에서 마니아층이 생겨났다. 스포츠토토마니아인 윤주영(23·학생)씨는 “로또나 일반 복권과 달리 (스포츠토토는) 내가 원하는 금액을 걸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100원에서 부터 몇만원까지 베팅을 통해 적게는 수십배, 많게는 수만배가 넘는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겼을때 받으니 기쁨은 두배가 된다. 만약 팀이 져 휴지조각이 된다고 해도 상실감은 적다.

윤주영씨는 “어릴 적 한일전 축구를 보며 주변 친구들과 승패를 맞추는 간단한 내기를 했던 것처럼 일종의 응원문화로 맞추지 못했다고 해도 아쉬운 게 없다”고 말했다.
국민체육진흥법상 스포츠 베팅이 합법적으로 허용된 곳은 스포츠토토뿐이다.

업계에 따르면 스포츠토토의 매출액은 도입 첫해인 2001년 28억원을 기록한 뒤 매년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 3분기에만 1조36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예상 매출액은 2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복권 판매점 관계자는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아 관심이 높아져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동시에 적은 금액으로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스포츠토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용객 수가 지난해보다 더 늘었다”고 말했다.

경마장, 카지노 입장객도 꺾이지 않는 증가세

마사회와 강원랜드도 최근 경기 침체와 달리 호황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찾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복권이나 로또, 스포츠토토처럼 큰 폭의 상승세는 아니지만 전년 대비 각각 매출액이 4∼5%가량 증가했다.

마사회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약 4%가량의 매출이 증가했다. 과천 경마공원의 경우 개장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과천경마장의 경우 마권 매출액은 지난해 7조5765억원에 달했다.

강원랜드 카지노 입장객 수는 4월 22만 2000명에서 5월 23만 3000명으로 늘었다. 6월과 7월엔 각각 22만 8000명, 26만 6000명이 찾았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카지노를 찾는 고객이 급증한 것.

경마장과 카지노를 찾는 사람이 모두 사행성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 최근 강원랜드와 마사회는 카지노와 경마장 주변에 공원과 레저시설을 조성, 가족단위 관광객이 늘었다.

과천 경마공원은 입구에서부터 작은 말을 사육하는 곳과 마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주변엔 걷기 편한 도로와 축구장 등을 마련해 체육 활동을 하기에 제격이다.

강원랜드는 음악분수를 만들고 주변 경관을 이용한 레저시설을 운영,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증가했다. 4월 판매 객실 수는 1만2515실에서 5월 1만8807실, 7월 2만5929실로 늘었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7월 휴가기간을 맞아 방문객이 증가해 객실 판매 수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로또는 고대로마 때부터 있었다

로또가 언제 등장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원전 로마시대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과 1530년 이탈리아 피렌체 지방에서 공공사업을 위해 최초로 시작됐다는 얘기가 있다. 로마시대의 복권 당첨금은 노예와 토지가 주를 이뤘고, 이탈리아의 복권은 현금이 지급됐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복권이 추첨을 통해 현금을 지급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던 만큼 현재 로또는 당첨금액의 제한이 없는 복권으로 당회 회차 판매량에 따라 당첨금액이 정해진다. 국내 로또는 2002년 12월에 첫 시작, 1에서 45의 숫자 중 자신이 원하는 6개의 숫자를 임의로 골라 추첨 번호와 동일하면 1등에 당첨된다. 당첨자가 없으면 이월되는 점에서 출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