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식재산센터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한국에서 유아용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는 A 사의 대표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이메일 내용을 살펴보니, A 사가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상표를 중국에서 사용하려면 중국 상표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협상을 통해 중국 상표권을 양수해준다는 내용이다.

 

A 사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한국에서 상표등록을 받았고, 2년 이상 사업을 잘 운영하여 아시아권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에 이와 같은 이메일을 받은 것이다. A 사 대표는 중국 상표권자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지, 중국 진출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졌다.

상표는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는 표장을 의미한다. 소비자는 상품의 품질을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 상표를 보고 상품을 구매한다. 상표는 품질보증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품이라도 소비자의 고객흡인력이 높은 상표를 부착하여 판매하면, 매출액이 훨씬 증가한다. 또한, 하나의 상품에 대해 높은 고객흡인력을 가진 상표를 전혀 다른 상품에 사용하면, 별도의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평균 이상의 매출액을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품질관리뿐만 아니라 상표관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A 사 대표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A 사가 한국에서 소유한 상표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투입한 마케팅 비용, 유아용품 이외의 상품에 사용 여부, 상품 출시 계획, 중국에서 한국 상표의 주지 저명성 여부를 검토한 후에 새로운 상표로 대체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새로운 상표를 사용해도 사업을 운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한국과 중국에 동일한 상표를 동일자에 출원하거나 우선권 제도를 활용하여 새로운 상표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중국 상표권자 또는 상표 브로커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분쟁은 서로 간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 발생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협상조차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A 사는 새로운 상표를 통해 중국 진출을 모색하고, 별도의 비용이나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협상의 대상이 되는 상표를 저렴한 가격에 양수할 수 있다.

문제는 A 사가 사용하는 상표를 중국에서 꼭 사용해야 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복수의 상품 또는 서비스에 사용했거나, 어느 정도의 주지성을 획득하여 새로운 상표로 중국을 진출하기에는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 부담이 있는 경우이다.

최근 개정된 중국 상표법을 살펴보자. 중국 상표법에 따르면, 출원한 상표가 타인이 중국에서 등록하지 아니한 유명상표를 복제‧위조하거나 유명상품을 번역하여 혼동을 초래하기 쉬운 경우 등록을 허가하지 아니하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A 사가 사용하는 상표가 중국에서 주지성을 획득한 경우라면 이 규정을 통해 상표 브로커가 출원한 상표의 등록과 사용을 저지할 수 있다(중국 상표법 13조).

또한, 출원한 상표가 이미 사용되고 있는 미등록상표와 유사하고, 출원인과 타인이 계약‧업무거래 관계 또는 기타의 관계로 상표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 등록을 저지할 수 있다. 즉, 상표 브로커가 A 사와 일정한 계약관계에 있었고, 이를 기화로 상표 사용을 금지하려는 목적이라면 A 사는 이의신청을 통해 상표출원의 거절을 유도하고 별도의 출원으로 상표를 획득할 수 있다(중국 상표법 15조).

더 나아가, 중국에서의 상표출원은 타인이 소유한 선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며, 타인이 이미 사용하고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상표를 부정한 수단으로 갈취하여 등록해서는 안 된다. 즉, A 사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유아용품을 판매함에 따라 A 사의 상표가 중국의 소비자들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의신청을 통해 상표의 거절을 유도할 수 있다(중국 상표법 32조).

A 사는 상표가 출원된 후 출원공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와 같은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여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다(중국 상표법 33조). 추가적으로, 상표권자보다 먼저 일정한 영향을 가진 상표를 사용하는 경우, 사용자는 본래 사용 범위 이내에서 계속 상표를 사용할 수 있다(중국 상표법 59조).

이러한 대응방안은 최근에 개정된 중국 상표법을 근거로 한 것이다. 중국 정부도 상표 브로커로 인해 발생되는 통상마찰과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개정 상표법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련된 것이다. 다만, 중국 상표법의 적용과 해석은 중국 정부와 중국 사법부가 판단하게 된다.

즉, 한국 정부 또는 사법부가 해당 상표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중국 정부 또는 사법부가 이를 부정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10여년을 끌어온 중국 상표법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된 것에 큰 의미가 있으며, 판례가 축적됨에 따라 개정 상표법의 적용 범위가 명확해질 것이다. 이 규정들이 정의와 공평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용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