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픽사베이/반다이

# 직장인 남창현 씨(가명, 29세)는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그간 아껴뒀던 연차휴가 중 이틀을 사용했다. 다름 아닌 이유인 즉, 속초로 가서 ‘포켓몬’을 잡기 위함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게임 덕후(매니아)’로 불렸던 남 씨는 게임 타이틀로 출시되는 포켓몬스터 게임의 모든 버전을 전부 구매해서 즐길 만큼 매니아였다. 그런 그에게 지난 6일 출시된 포켓몬 GO는 그야말로 ‘전율’을 일으키게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포켓몬 GO 게임이 가능한 지역이 속초라는 말을 전해들은 창현 씨가 휴가를 사용하는 데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 경제주간지 기자 박정민 씨(가명, 28세)는 주말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미뤘다. 이유인 즉,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키덜트 박람회에서 한정 판매되는 ‘건담’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박 씨가 활동하는 프라모델 커뮤니티에는 박람회 개최일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 한정판 건담을 사겠다는 이들도 있다. 이 일로 여자 친구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박 씨는 일단 건담을 손에 넣고 생각하기로 한다.

한 영화의 유행어 말대로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위 상황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그러나, 두 상황 모두 실제 일어난 일이다). 아껴둔 휴가를 쓰고, 여자 친구와의 위태위태한 관계를 만들면서까지 몰두하는 ‘포켓몬’과 ‘건담’은 무엇이며,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 포켓몬스터 레드 버젼. 출처= 게임 캡쳐

포켓몬스터는 1995년 일본의 소규모 게임 제작사 GAME FREAK의 디자이너 타지리 사토시(田尻智)가 개발한 게임이다. ‘포켓몬’이라는 생물들과 인간이 공존하는 가상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여기서 인간들은 포켓몬을 육성하며 성장시키는 존재로 ‘트레이너’라고 불리우며, 포켓몬들은 트레이너의 육성 결과로 더욱 ‘강해지는’ 진화를 한다. 게임으로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게임의 초기 버전(적/녹)은 일본에서만 각각 400만장을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포켓몬스터의 인기는 절정에 달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만화/게임 캐릭터가 됐다. 급기야 미국 경제주간지 <타임>지는 1999년 5월 10일(Pokemon: The Cute Critters Have Become an Obsession)과 11월 22일(Invasion of the Pocket Monster) 잡지를 통해 포켓몬스터를 커버스토리로 집중 조명 했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후반, 미니 게임기와 컴퓨터 게임, 그리고 TV 애니메이션으로 포켓몬스터가 소개되면서 당시의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매료시켰다. 나만의 포켓몬을 육성한다는 개념은 사람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시켰다. 국내 한 제과업체에서 판매한 포켓몬 스티커가 동봉된 빵은 하루 평균 100만 개라는 어마어마한 수량이 팔려나가며, ‘대박’을 쳤다. 90년대 후반을 초등학생 혹은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포켓몬은 그토록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돼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20대 30대가 돼 어른이 됐고, 포켓몬 GO는 당시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되살려 줬다.  

 

▲ 1979년작 만화 <기동전사 건담>의 한 장면. 출처= 장면 캡쳐

1979년 일본에서 방영된 만화 <기동전사 건담>은 선-악이 분명치 않은 주인공들의 관계와 복잡한 설정으로 당시의 주 시청연령인 어린이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이후, 1981년 3편으로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성인 관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성공을 거둔 이후에야 다시 조명받기 시작하면서 건담은 일본을 상징하는 메가 콘텐츠로 성장했다. 허핑턴포스트 일본의 2015년 6월 5일 보도에 따르면 콘텐츠 업체 반다이남코 홀딩스의 총 매출은 역대 최고인 5654억 엔(약 6조4000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 중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준 콘텐츠는 767억 엔(약 8190억 원)의 수익을 기록한 ‘기동전사 건담’이었다. 이 인기를 증폭시킨 것이 바로 건프라(건담 플라스틱 모델의 일본식 발음)다. 작품 속에서 ‘모빌 슈트’라고 불리는 로봇들을 조립해 완성시키는 모형인 건프라는 사람들의 수집욕구를 자극했다.

우리나라에 건담이 전해진 것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쯤인데, 대개는 공식 유통경로를 통한 것이 아닌, 해적판(무단 복제) 만화책이나 일본판 만화 잡지 등을 통해 유입됐다. 당시 애니메이션으로 정식 수입되지 못한 것은, 어린이 애니메이션 치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그리고 짙은 ‘일본풍(왜색 이라고도 불리는)’, 폭력성 등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특징은 우리나라에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시켰고, 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그들이 어른이 되면서 경제력이 생길 즈음 건담은 다양한 경로로 우리나라에 정식 수입됐다.

▲ 1:1 사이즈 건담이 있어 건담 매니아들에게 '성지 처럼 여겨지는 일본 오다이바. 출처=픽사베이

건담 프라모델 전문매장들이 전국에 들어섰고, 정식 업체들을 통한 건담 애니메이션 수입도 이뤄졌다. 이를 통해 건담은 최근 유통업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키덜트 열풍’을 주도하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오픈마켓 옥션의 키덜트 카테고리에서 ‘건담’의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33%, ‘프라모델’은 420% 증가했다.

이처럼 ‘포켓몬’과 ‘건담’은 20대 후반~30대 초반 세대들에게 지난날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그들의 지갑을 열었다. 또한, 개인의 다양한 관심사와 취미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과거보다 ‘관대해진’ 것도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와 같은 메가 콘텐츠는 세대를 넘어서는 영향력으로 작용하며, 그 경제적 가치를 재평가 받는다.

덧붙여서,

포켓몬 GO가 인기를 끌자, 나름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왜 이러한 콘텐츠들을 먼저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은 안타깝지만 비단 포켓몬스터 뿐이었을까. 우리나라가 한 발 뒤쳐졌던 콘텐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