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모비스 미시간 공장 전경 / 출처 = 현대모비스

“말 그대로 ‘심장부’였죠. 자동차 산업을 화려하게 꽃피운 GM-포드-크라이슬러가 함께 모인 곳이니까요. 콧대 높은 미국 자동차 회사에 모듈을 공급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시작부터 ‘난제’였어요.”

현대모비스의 북미법인(MNA)이 양산 10주년을 맞이했다. 크라이슬러에 모듈을 꾸준히 공급해온 것. 업적은 화려했다. 올해 말까지 누적 공급량이 400만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연간 모듈 생산량은 10년 사이 14배 이상 늘었다. 비결이 있었다.

“현대모비스? 당신들 어떻게 믿나”

미국 동북부에 있는 현대모비스 북미법인(MNA)은 오하이오·미시간 공장에서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오하이오 공장은 연산 24만6000대, 미시간 공장은 36만대 규모의 크기를 자랑한다. 지프 랭글러·그랜드체로키와 닷지 듀랑고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든다.

북미시장에 첫발을 내딛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미국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시장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소비가 급감했다. 1위 기업인 GM은 경영 위기에 내몰렸다. 대부분 회사들이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했다. 미국에 첫 발을 내딛는 현대모비스 입장에서는 악재였다.

▲ 현대모비스 오하이오 공장 전경 / 출처 = 현대모비스

어려운 환경에서 현대모비스가 꺼낸 카드는 ‘정면 돌파’.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경쟁 입찰에 뛰어들어 글로벌 업체들과 대결을 펼쳤다. 어렵사리 크라이슬러와 가까워졌다.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크라이슬러 입장에서도 컴플리트 샤시 모듈 도입은 최초 시도였습니다. 모든 것은 깐깐하게 볼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이 모듈은 샤시 프레임에 엔진·변속기·조향장치 등을 일체화해 만드는 부품입니다. 완성차 전체 부품의 50%를 차지하는 핵심 모듈이죠. 당연히 우리의 모듈 생산 능력을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크라이슬러와의 수주를 이끌었던 한 임원의 회상이다.

“2004년 3월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한국에 옵니다. 이화모듈공장 라인을 직접 둘러보고 기아차 화성공장까지 꼼꼼히 살피더군요.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이후 곳곳에서 현대모비스의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말이 흘러나왔죠.” 품질을 바탕으로 신뢰를 이끌어낸 셈이다.

2005년 5월에는 승전보가 울렸다. 현대모비스가 최초로 해외 완성차 업체에 모듈을 납품하게 된 것. 크라이슬러는 주력 차종인 지프 랭글러에 이를 장착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오프로드 감성을 지닌 마니아 층에서 인기가 높은 차다.

▲ 출처 = 현대모비스

“질주는 계속된다”

어렵게 따낸 기회인만큼 현대모비스는 품질 만족도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북미법인 한 관계자는 “당장 깃발을 꽂고 보니 앞으로가 걱정이었다”며 “본격 양산에 앞서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수차례 시험 생산을 거치며 품질 테스트를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필드 클레임 제로(0)’의 신화를 써냈다. 품질 문제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협력업체 사람들을 모아 컨퍼런스콜을 진행했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문제점을 찾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도 많았다. 신뢰를 위한 노력이었다.

“현지 근로자들과의 관계도 중요했습니다. 품질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였죠. 제안왕, 퀄리티왕 등을 만들어 매달 상을 줬습니다. 기간별로 목표를 달성하면 피자 파티도 열었고요. 점심시간에 뷔페도 마련해줬습니다. 결국에는 믿음이 쌓이더군요.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 근로자들이 먼저 나서더군요. 덕분에 현장의 어려움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북미법인에서 일한 한 직원의 기억이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았다. 추가 수주가 이어졌다. 지난 2010년 전략적 파트너로서 경쟁 입찰 없이 단독 참여 방식으로 지프 그랜드 체로키와 닷지 듀랑고에 장착되는 샤시 모듈을 추가 수주했다.

오하이오공장의 모듈 공급량은 2006년 첫 해 4만대였지만 2015년 24만5000대까지 늘었다. 2010년 10만5000대에 불과했던 미시간 공장의 모듈 생산량 2015년 36만5000대로 뛰었다. 두 공장의 2016년 예상 생산량은 58만4000대 수준. 10년 전과 비교하면 14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 현대모비스 오하이오 공장 전경 / 출처 = 현대모비스

공장 설립 초기 근로자 1인당 주 40시간(월~금, 8시간씩)이었던 근무 시간은 주 60시간(월~토, 10시간씩)으로 늘었다. 일요일도 격주로 공장을 돌릴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부품 회사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에서 400만대에 가까운 모듈을 공급한 것은 분명 큰 성과”라며 “현대모비스의 미국 진출이 단순히 현대·기아차에 의존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진우 현대모비스 북미법인장은 “크라이슬러에 10년간 꾸준히 모듈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과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그동안의 성공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북미 시장에서 수주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가겠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