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임금은 선조의 서자로 태어나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선조도 즉위 초기에는 총명한 왕이었지만, 광해임금 역시 총명한 왕이었다. 단지 적자가 아니라 서자로써 적자인 영창대군이 있음에도 왕위에 올랐다는 약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서자라는 약점이 자신을 왕위에 오르기까지 너무나도 힘든 과정을 겪게 했다.
임진왜란 중에 이미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그 후에 적손인 영창대군이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을 폐위하고 세자를 다시 책봉해야 한다고 조정을 들끓었다.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시련 중에 왕과 대신들은 몽진이라는 핑계 하에 의주로 도망치고 자신은 분조를 이끌고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구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서손이라는 이유 하나로 폐위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나마 선조가 급서하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지 그렇지 않았다면 세자자리에서 쫓겨나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은 눈에 보듯이 빤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중에 선조가 무과를 실시하여 천인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 정작 목숨을 걸고 전란에 참여하는 이들은 바로 그들과, 아무런 대가 없이 의병에 참여한 순진 무고한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광해임금은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분의 틀에 가려져서 보지 못하던 그들의 무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목숨을 던지며 나선 이들은 소위 양반사대부라는 자들 보다는 오히려 천대받던 천인과 상민과 평민을 비롯하여 양반사대부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던 스님들로 구성된 승병들이라는 것이, 피란을 하지 않고 조정의 분조를 이끌고 나라를 지키고 있던 광해 눈에 생생하게 보였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체험하여 체득한 광해임금이 신분을 타파해야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왕이 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자신이 즉위하자, 양반사대부라는 높은 벽에 직면해서 그 꿈을 실현시키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어떻게 하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허균의 사상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홍길동전>이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유배지에서 집필한다. 
허균은 1610년 과거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자신의 조카와 조카사위를 합격시켰다는 혐의로 탄핵 당해서 전라북도 함열로 유배된다. 그러나 허균에게 유배라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원래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에는 그저 자유를 누리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유배지에서 유배가 풀릴 날을 학수고대하는 소인배들과는 달리, 오히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나가기 위해서 공부해야할 학동들을 데려다 가르치는 한편, 문집 <성소부부고>를 엮으면서 1612년(광해 4년)에는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저술한다.
유배지에서 쓴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은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부와 권력을 남용하는 탐관오리들을 벌할 뿐만 아니라 부패한 사찰의 중들도 징벌하여 그들에게 약탈한 것을 가지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 엄연히 국법으로 도적의 무리들을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활빈당’이라는 도둑떼가 마치 의인들인 양 표현되고 있다. 거기다가 신분을 타파하고 백성이라면 누구라도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율도국>이라는 나라까지 세운다.
허균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들에게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도 남을 작품이다. 비록 작품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묘사된 모든 것들이 나라에서 금하는 것들을 추켜세워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게다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분명히 반역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다. 그것도 상하 신분이 타파된 나라이니 엄연히 반상을 구분하고 있는 현재의 조선에 대한 확실한 반역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허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이 허균을 모함하기 위해서 왕에게 고변한 <홍길동전>으로 인해서 허균과 광해임금이 모든 마음의 벽을 허물고 스스럼없이 소통하게 만들어 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