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관열전(朝鮮譯官列傳)>
-이상각 지음
-서해문집 펴냄

조선 시대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에서부터 무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중인 신분의 역관(譯官)이다. <조선역관열전>은 양반 사회에서 신분 차별의 설움을 견디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주목할 만한 역관들에 얽힌 이야기다.

서울 도심, 장미꽃 정원이 있는 곳에서 만난 이상각 저자는 역관을 “외교관으로서 다양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뉴프런티어, 상업적으로 성공을 일군 무역상, 천재 문장가, 일급 기밀이나 우수한 기술을 입수한 일급 스파이, 19세기 말 개화를 충동한 선각자”라고 말했다.

구성은 ‘차이나드림을 꿈꾸다’와 최상집, 이석린 등의 ‘일본과 통하다’로 이뤄졌고 외교와 중개무역에서 활동한 역관들의 활약상을 살핀다. ‘우리는 조선인이다’에선 조선의 이름을 드높인 인물들을, ‘신세계에서 길을 잃다’는 개화기까지 활약한 역관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책은 일본의 인삼 국산화 정책에 조선의 역관이나 의사들이 직·간접으로 이용됐다는 매우 충격적 내용도 싣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의 영웅,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는 1721∼1751년까지 무려 30여 년 동안 조선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목적으로 한반도 동·식물 조사 프로그램을 가동시킨 인물.

숙종 집권기, 조선의 역관 최상집이 인삼 밀무역을 하다 일본에 적발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역관 65명 모두가 연루된 사상 초유의 범행으로 드러났던 것. 하지만 “일본은 정치적 거래를 하기로 결정했다. 밀무역 자체를 조선 조정에 통보하지 않고 그들을 귀국시키기로 한 것이다. (중략) 한반도 약재 조사와 인삼 생초 확보에 협력하라고 강요했다.

물론 거부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본문 137∼138쪽) 이후 일본은 이를 아주 체계적으로 빼갔고 얼마 후 일본은 인삼 국산화에 성공한다. 그 여파로 조선의 인삼이 일본에서 경제적 이권이 사라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책은 후반부 ‘더 읽을거리’에서 사역원 생도들의 입학과 수업 등 교육 시스템과 인동 장씨, 밀양 변씨, 우봉 김씨, 천령 현씨 등 역관 명가들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갔던 역관들을 탐색하는 작업은 오늘의 최고경영자(CEO), 세계인을 꿈꾸는 청년들, 평범한 사람들에게 나름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상각 저자는 “역관들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서까지 득한 대화와 공감이 주효했는데 이는 오늘날 글로벌 경제 비즈니스에도 참고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