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문명이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경제활동은 새로운 질환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결핵과 나병은 3500~4500년 전 인구 3000명의 도시가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경 여기저기에 나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질환들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시작되어 상인들에 의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새로운 문화‧문명은 새로운 질환‧질병과 함께 전파된다.

탄광의 분진은 탄광부 진폐증(Black Lung Disease)을 유발하고 섬유공장에서 발생하는 분진은 면분증(Brown Lung Disease)을 유발한다.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손목터널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이 나타나고 요통이 생긴다. 현악기 연주자 가운데 54%가 근골격계 질환이 생기고, 특히 바이올린 연주자 가운데 근막통증증후군 유병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각기 다른 경제 활동은 각기 다른 질환의 원인이 된다.

불과 1세대 전만 하더라도 남아메리카의 질환이, 아프리카의 질환이, 중동 감기가 우리와 무슨 관계냐고 했겠지만,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될 2016 올림픽도 선수들과 관람객들을 매개로 지카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 있다. 고열과 내출혈을 일으키는 가장 치명적인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가 2014년 전 세계를 전율하게 했다.

우리도 안전지역이 아니다. 2015년 186명이 확진되고 38명이 사망하면서 한국을 마비시킨 중동호흡기질환(MERS)은 중동 방문 중 낙타에게서 감염된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질환이 어떻게 세계를 공포에 빠트리고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을지 아무도 모른다. 무슨 질병이 되었든 어디서 발생했든, 어제 아프리카 또는 남아메리카 오지에서 발생했다 해도 내일이면 우리 문 앞에 그 질병이 나타나는 문명의 세계, 질환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문명과 질병·질환은 여객기를 타고 다닌다.

의약의 발전은 사회를 변혁시키면서 고령사회라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낸다. 불과 2~3세대 전만 해도 ‘인생 70은 예부터 희귀하다’고 하면서 50~60이면 노인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70~80대도 청춘과 같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밝은 면 뒤에는 고령화와 더불어 만연하는 다양한 질환이라는 어두운 면이 나타난다. 심혈관 질환, 각종 암, 정신 질환, 신경성 질환, 치매, 근육계 질환 등 우리가 아는 병, 모르는 병들로 우리는 둘러싸여 있다.

새로운 질병의 도전에 인간 사회는 응전한다. 인간을 무력화시키고 대량 살상하던 많은 질병들이 극복되었고, 역대 왕들도 피해가지 못하던 마마(천연두)도 이제는 주사만 맞으면 예방이 된다. 후두개 염증으로 67세에 사망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항생제만 있었더라면 100세까지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감염질환이 극복되고 예방된다. 사형선고로 받아들여졌던 암의 치료도 가능해졌다. 천형이라던 나병도 치료되고, 1980~90년대의 공포의 질환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도 관리 가능해지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예방도 가능하다고 한다. 에볼라, 지카, 메르스 역시 앞으로 몇 년이면 극복될 것이다. 선진국에서 예방과 치료 연구에 착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메르스(MERS) 전염의 중심에 있던 삼성병원은 메르스 백신 연구를 위해 410억원을 우리나라에 소재하는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에 투자하기로 했다. 백신이 개발되면 동물시험 등 각종시험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사전 검증하고 사람에게 투여해 메르스 예방효과를 임상시험하게 될 것이다. 임상시험은 메르스가 만연한 중동에서 주로 시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동인들의 면역반응과 우리의 면역반응이 동등하면 중동에서 유효한 메르스 백신이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과학적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모든 질환이 정복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가 가능한 일반 질환‧질병은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더욱이 6000개 이상의 희귀질환 가운데 미국 정부가 승인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불과 200여개 정도라고 한다. 새로운 경제활동,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기후조건은 새로운 질환들을 계속 만들어낸다. 문명이 지속되는 한 질병은 우리의 운명이다.

임상시험이란 질병과 질환을 치료하는 의약품과 의술의 개발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다. 신약후보물질이 발견되었다고 바로 의약품이 되어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이 발견된 신약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 도달할 수 있는 확률은 1/1000에 불과하고, 임상시험이 시작되는 10개의 신약후보물질가운데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어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의약품으로 승인을 받는 신약후보물질은 평균 1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약으로 인정되기만 하면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신약과 바이오산업은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다. 정부는 막대한 투자를 하고 이미 한미약품과 같은 성공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한미’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 과학자들의 세계제약 시장을 향한 도전 또한 과감해지고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임상시험시대의 초기라고 할 수 있는 1977년부터 임상시험 업무를 담당해왔다. 1999년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부임해 2000년 3월부터 우리 제약 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이라는 꿈을 갖고 임상시험수탁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을 시작, 운영하고 있다. 지난 40년간의 임상시험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이코노믹리뷰>에 칼럼을 쓸 것이다. 많은 후원과 성원이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