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復讐)

해(害)를 받은 본인이나 그의 친족, 또는 친구 등이 가해자에 대해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

<화풀이 본능>이라는 책을 보면, 복수는 정당 방위적 보복과 다르다. 즉각적인 반격과 달리 복수는 어두운 준비 기간을 거치기 마련이다. 마피아를 배출한 고장답게 시칠리아 속담은 복수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준다. “복수는 식은 뒤 더 맛있는 음식이다.” 복수는 엉뚱한 사람을 향한 화풀이와도 구분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행동에는 눈곱만큼의 정당성도 없다. 반면 가해자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기에, 복수는 정의를 반영한다. 적어도 눈곱보다는 많이.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무렵 제정된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다. 여기에는 ‘탈리오 법칙’이라 불리는 정의 원칙이 적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주 오래 전부터 복수는 정의의 한 방편이었다. 복수는 분노를 잠재우고 울화를 방지할 뿐 아니라, 사회적 위신과 명예를 지켜 또 다른 가해를 예방하기도 한다. ‘약자’로 찍혀서 좋을 건 없으니까. 가령 <쇼미더머니>에 출현한 래퍼가 ‘디스’당하고도 복수하지 못한다면? 딱해라. 동네북이 될 게 틀림없다.

하지만 ‘피는 피를 부른다’는 격언처럼 복수는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한다. 모든 ‘문명’이 사적 복수를 방지하는 논리와 제도를 발전시킨 이유다. 기원전 10세기경 창작된 <일리아스>에는 영웅들의 복수 행위를 통제할 사회적 제도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그리스 민주주의 시대로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원전 458년에 창작된 비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보자. 여기서는 대를 이어 반복되는 끔찍한 친족살해의 복수극이 최종적으로 아테나 여신의 중재 아래 법적 판결을 통해 종식된다. 사적 복수가 공동체의 법질서 안으로 순치된 것이다.

중세에 이르면 사적 복수는 더욱 엄격하게 금지된다. 복수는 공동체의 관리 대상이 아니라 아예 ‘신의 것’이 된다. <신약성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말한다.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복수는 인간의 몫이 아니라는 인정, 언젠가 신적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 조건 없는 용서와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정신 뒤편에는 이와 같은 신학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근대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인 홉스에게도 사적 복수는 중요한 문제였다. <리바이어던>에서 그는 야만을 ‘만인의 만인을 향한 전쟁 상태’로 규정하고, 가없는 피의 복수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권력을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을 보면, 실제로 유럽에서 14세기 이후 사회적 폭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때는 여지없이 국가권력이 강화된 시기와 일치한다. 강력한 주권 권력과 사법 질서 아래 복수는 이제 ‘국가의 것’이 된다.

그런데도 사적 복수가 여전히 문학과 영화의 단골 주제인 것은 왜일까? 공적 정의를 마냥 신뢰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정의의 사각이 감지되거나, 법이 공정하지 않아 보일 때, 혹은 국가 권력이 오히려 부패와 불의의 온상인 것만 같을 때, 거기다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될 때, 누구의 것도 아니라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외치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끊이지 않는 테러와 보복성 전쟁 등 국제 사회를 휘감은 ‘복수의 정치’부터 자연의 ‘복수’를 예고하는 생태학적 경고까지, 또 다른 차원의 ‘복수’를 관리하는 데도 국가 권력은 대체로 무능하다.

‘훌륭한’ 복수극은 정의의 공백을 드러낸다. 영화 <비밀은 없다>가 그렇다. 알 수 없는 분노로 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도, 까닭 없이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악마적인 힘도, 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오늘 이곳의 삶을 ‘헬’로 만드는 주범을 이해 불가능한 타자에서 찾지 않는다. 전라도 혐오, 치사한 정치, 불성실한 공권력, 불륜, 왕따 등 병리적 구조 위를 내달리는, 추하지만 설명 가능한 등장인물들은 보여 준다. 비극의 이유는 내부에, 그리고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있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그래서 훌륭하다. 관객이 30만명도 들지 않았다니, 아쉽게도 ‘불편함’이 더 컸던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