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이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을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다. 예상과는 달리 투표에 참여한 영국 국민의 약 52%가 EU 탈퇴를 결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중됐다. '퇴짜'를 맞은 유럽연합은 영국의 빠른 탈퇴를 종용하고 있고 영국의 수뇌부는 불편한 입장에서 구체적인 탈퇴 절차에 대해 논의 중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추경 예산을 편성하는 등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고,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브렉시트에 대한 특집 보도를 편성하고 있다. 이렇게 유럽의 '집안 다툼'으로 유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 속에서 필자도 유럽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바로 유럽 특허출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럽특허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유럽에 특허를 많이 출원하는 나라이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과 엘지는 2015년 기준 유럽에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한 기업 2위와 3위로 이름을 올렸다. 더욱이 셀트리온이나 한미약품 같은 국내 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바이오 의약품을 유럽 시장에 진출시키면서, 유럽 특허시장에 대한 관심은 점차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에 특허를 출원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유럽 개별국 특허청에 직접 진입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유럽 사람이 한국 특허청에 출원하듯이 외국인 자격으로 독일 특허청, 영국 특허청 등 개별국 특허청에 직접 출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개별국이 규정하고 있는 특허법 규정에 따라 방식 심사와 실체 심사를 거치게 되고, 적정 요건을 충족하면 해당 국가에서 특허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각국의 특허법 규정에 따라 매우 상이하게 출원 진행이 이루어지고 절차도 까다롭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되는 유럽에 특허를 출원하는 두 번째 방법,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유럽 특허청은 유럽 연합과 관련이 없는 기관으로서 유럽 연합 28개국을 포함 총 38개의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러한 유럽 특허청에 출원하면 하나의 출원으로 회원국 전체에 특허를 출원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발명자가 유럽 특허청에 자신의 특허를 출원했다고 치자. 그 이후에 유럽 특허청이 해당 특허가 등록요건 전부를 충족한다고 판단하여 등록 결정을 내린다면, 한국 발명자는 회원국에 별도의 특허를 출원하지 않아도 특허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단 발명자가 지정한 회원국에서만 지정료를 지불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통합 멤버십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회원사 전체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는 제도는 대표적인 국제출원 제도인 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과 조금 다르다. 하나의 출원을 통해 여러 나라에 진입한다는 절차적 방식은 유사하나, PCT를 이용하는 경우 개별국에서 별도의 실체 심사를 받아야 한다면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는 경우 개별국에서 실체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면 유럽 특허청을 경유하는 것이 무조건 좋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비용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여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 세 개의 개별국에 직접 진입하는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즉 세 개 이상의 유럽 국가에 특허를 출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되 그 이하라면 개별국에 직접 진입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는 것은 시간 면에서도 불리하다. 유럽 특허청에 특허 출원하는 경우 조사국에서 한 번 실질 심사를 받고 심사국에서 다시 실질 심사를 받는다(조사국에서의 실질 심사는 참고사항으로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이렇게 두 번 실질 심사를 받기 때문에 유럽 특허청을 경유하는 출원 절차는 개별국에 직접 진입하는 것보다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한편 유럽 특허청을 이용하는 경우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 번째로는 심사청구 기한(실체 심사의 시작을 요청하는 기한)인데, 한국에서는 특허 출원일로부터 5년 이내에 심사청구를 할 수 있지만 유럽 특허청에서는 출원공개 이후 6개월 이내에 심사청구를 할 수 있다. 심사청구를 하지 않는다면 특허 출원은 자동 취하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시기에 반드시 심사청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는 무효심판이나 침해소송 같은 절차는 유럽 특허청이 아닌 개별국에서 직접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해소송이야 그렇다 쳐도 무효심판을 특허 등록결정을 내린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진행해야 한다니, 다소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으로 인해 유럽연합이 추진하던 유럽단일특허 제도(유럽연합 28개 회원국들의 특허법을 하나로 통일하여 지정 여부와 무관하게 하나의 유럽단일특허가 회원국 전체에 효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제도)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특허 획득을 위해 유럽 특허청을 경유하는 방법이 앞으로도 대세를 이룰 것이라 생각되며, 앞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발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