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는 건실한 사업이 되지 못했다. ‘꿈의 공장’은 설립 6년 만에 문 닫을 처지에 놓였다. 퀄키(Quirky) 이야기다. 벤 커프먼은 2009년 이 공장의 문을 열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기획을 제안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소셜제품 개발 플랫폼이다.

당시 화두로 떠오른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 사업 모델에 기반을 뒀다. 퀄키는 회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면서 수익을 배분해 돈을 벌었다.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업모델이었던 탓에 관심은 전 지구적이었다.

▲ 출처=퀄키

누구든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꿈의 공장’

퀄키는 누구에게든 열린 플랫폼이다. 무료로 회원가입을 하고 10달러의 제안비만 내면 아이디어를 제출할 수 있다. 아이디어 선정 과정을 거쳐 퀄키는 제품화 작업에 착수한다. 제품 개발·디자인·생산과 유통망 확보·마케팅 등을 대신해준다.

아이디어 제품이 판매되면 제안자에게는 수익이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평가하고 제품화하는 각 과정에서 의견을 낸 이들도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제품의 씨앗이 되는 첫 아이디어 외에도 디자인·제품명·카피라이트·가격 등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도 돈이 된다는 얘기다.

회원은 퀄키 홈페이지에 손쉽게 아이디어를 등록할 수 있다. 제안한 아이디어는 30일 동안 다른 회원들에게 공개된다. 이들은 상품화될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 투표한다. 일단은 회원으로부터 200표 이상을 받아야 제품화 검토가 가능하다. 아니면 퀄키 직원에 의해 선택받는 경우도 있다.

1차 관문을 통과한 아이디어는 매주 목요일 뉴욕 본사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행사 ‘의식’(Ritual)에서 검증을 받는다. 이 행사엔 전문가·커뮤니티 멤버 등이 참가하며 행사는 퀄키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된다. 참가자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아이디어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논쟁을 한다. 이 과정을 거쳐 다음에 생산할 제품을 결정하게 된다.

회원들은 아이디어 대한 호감도와 가격·채택 의견 등을 홈페이지에 남길 수 있다. 이 결과는 현장에 실시간으로 보내진다. 집계를 통해 아이디어 채택 논의에 활용된다. 이 자리에서 3개의 아이디어가 최종 선정된다. 마지막으로 퀄키의 시제품을 제작하고 최종 작업을 한 다음 시장조사와 제품 제작을 거쳐 판매를 하고 기여도에 따라 수익을 분배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제품이 판매되면 매출액 10%를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게 된다. 아이디어 제공자는 40%의 기여도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제품 매출액의 4%가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제공되는 셈이다.

기여도는 아이디어 제공자는 물론 투표에 참여한 회원, 디자인에 참여한 회원, 제품을 작명한 회원 등 모두에게 분배된다. 퀄키는 회원들에게 매우 체계적이며 공평하고 구체적인 매출액 분배를 통해 회원 참여를 도모하는 셈이다.

퀄키 최고의 인기상품은 ‘피봇파워’다. 자유롭게 휘어지는 형태의 멀티콘센트 제품이다. 덩치가 큰 플러그가 콘센트 구멍을 막는 일이 없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입소문을 타며 전 세계에서 70만개가 팔렸다. 처음 퀄키에 아이디어를 제안한 디자이너 제이크 지엔은 6억원가량을 벌어들인 걸로 알려졌다.

피봇파워와 같은 날 출시된 ‘스페이스바’ 역시 대표 히트상품이다. 책상 위 정리를 도와주는 데스크 액세서리다. 모니터 받침대로 아래에 키보드를 넣을 수 있어 공간의 활용도를 높여준다. 6개의 USB 포트가 있어 휴대폰 등의 충전이 가능하다.

무려 727명이 제품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마이클 카바다는 2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두 제품은 2011년 같은 날 출시된 제품이다. 이는 이른바 ‘대박’이 몹시 드물게 터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또 세상을 바꿀 엄청난 아이디어라기엔 소소한 수준이다.

▲ 출처=퀄키

아이디어는,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 퀄키가 잘나갔던 것은 사실이다. 2014년 설립 4년 만에 50배 증가한 5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회원 수는 100만명을 넘어섰고 매주 아이디어 제안만 3000개가 넘는 시절도 있었다. 이 프로세스로 출시된 제품만 수백 개가 넘는다.

투자금도 몰렸다. 2010년 650만달러, 2011년 1600만달러, 2012년 6800만달러, 2013년 79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퀄키의 독특한 운영방식은 보드오브이노베이션이 발표한 2010년을 뒤흔든 비즈니스 모델 10가지 중 3위에 올랐다.

그러던 퀄키가 지난해 9월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경영 관리 미숙과 매출 부진이 이어지자 사업체가 견디지 못한 셈이다. 경영난이 지속되면서 창업주 벤 커프먼은 CEO직에서 물러났다. 직원도 150명 이상 정리해고됐다. 한때 200명이 넘던 직원 수는 두 자릿수로 떨어졌다.

퀄키는 과도한 운영 비용을 매출로 커버할 수 없었다. 파산보호 신청은 수순이었다. 앞서 언급한 피봇파워나 스페이스바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오히려 실패하는 제품이 더 많은 것이 문제였다. 냉장고 속에 계란이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해주는 ‘디지털 계란판’ 등이 그런 실패 사례다.

실패가 이어지면서 퀄키의 수익성은 악화됐다. 지지받은 아이디어가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아이디어를 위한 아이디어였던 퀄키는 ‘아이디어는 돈이 된다’는 창조경제적 믿음이 언제든 통하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퀄키는 수익모델이 악화되자 대책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초 GE나 하만 같은 대형 제조사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제품 생산을 일부 맡기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다. 위기를 뛰어넘는 묘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꿈의 공장’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