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이 첨단정보통신그룹으로 진화 중이다. 김준기 회장이 변화의 주역이다. 14년에 걸친 뚝심경영은 급변하는 시대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냈다. 현재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동부그룹의 이유 있는 변신. 이제부터가 진짜다.

동부그룹 변화의 중심엔 반도체 사업이 자리잡고 있다. 동부하이텍을 필두로 14년의 세월의 투자가 주요했다. 오랫동안 적자를 거듭했던 것이 올 상빈기 들어 흑자로 돌아선 것.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473억원, 영업이익 67억원. 2001년 시스템반도체를 상업 생산한 이후 최초다.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미국·유럽·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분야. 첨단기술력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힘들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반도체업체들도 쉽게 시장 진입을 하지 못했던 곳이 시스템반도체 시장이라는 것이다.
국내 반도체업체는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부하이텍의 흑자는 의미가 크다.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국내 기업 진입과 더불어 반도체산업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
동부그룹 변화의 선봉장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다. 경영 최전방에서 반도체사업을 위한 경영전략을 직접 진두지휘했다. 회사의 미래, 더 나아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선 반도체사업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급변하는 환경에 발맞춰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전이었던 셈. 그것도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아무도 가지 않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성공까지 우여곡절은 많았다. 시스템 반도체사업의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주변의 부정적 시각과 평가가 잇따랐다. 불운도 겪었다. 2001년 4월 상업생산을 시작하자마자 미국 9.11 테러가 발생하며 세계 IT 거품이 빠지면서 반도체 30년 역사상 최대의 불황이 닥쳤다. 불황은 갓 출범한 반도체회사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동부는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지능형 애완로봇 제니보를 지켜보고 있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2007년에는 안정적 수익기반을 갖춘 동부한농과의 합병을 통해 동부하이텍을 출범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정상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갑작스럽게 몰아 닥치면서 동부의 반도체사업은 또다시 고비를 맞았다. 매출액 4000억원의 회사가 연간 적자를 4000억원을 기록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반도체사업 투자 초기 신디케이티드론 형식으로 1조3000억원을 투자했던 채권단은 동부하이텍에 대해 강력한 자구노력을 통해 회사의 차입금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여신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반도체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무렵. 김준기 회장은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국가를 위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다. 어떠한 위험이 따르더라도 그것에 도전할 것이고, 만의 하나 실패하더라도 누군가가 이어받아 성공시킬 수 있다면 파이오니어로서의 나의 역할에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며 반도체 사업을 밀어부쳤다.

우선 이를 위해 동부하이텍이 보유하고 있던 유가증권과 부동산을 잇따라 매각했다. 합금철부문과 농업부문을 분사하고 지분을 매각했다. 울산 석유화학공장도 매각했다. 임직원들도 자신들의 급여 일부를 반납했다. 동부하이텍 재무구조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한 김준기 회장은 사재 3500억원을 출연하여 동부하이텍의 자회사인 동부메탈의 지분 50%을 인수했다. 사재출연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일대 위기상황에서 대주주가 책임을 지고 구조조정에 앞장선 사례로 손꼽힌다.

자구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사업초기 2조4000억원이던 차입금은 2010년말 7000억원대로 줄었다. 연간 2000억원에 달하던 이자비용이 500억원대로 감소했다. 차입금 축소와 함께, 사업 경쟁력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반도체 등 특화파운드리 분야로 제품 구조를 전환하면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로직(Logic) 제품에 비해 판매가가 높은 아날로그반도체의 매출비중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회사의 수익구조가 점차 좋아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신규 거래선을 잇따라 확보하면서 가동률이 높아졌고, 2010년 아날로그와 믹스드시그널 제품 위주의 세계 특화 파운드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적자투성이 회사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회사가 된 것이다.

로봇·LED·태양광사업에도 자신감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의 턴어라운드를 발판으로 로봇, LED, 태양광 사업 등 첨단 정보통신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동부하이텍은 LED사업과 태양광사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했다.

적자투성이 회사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로봇사업. 지난해 7월 다사로봇(현재 동부로봇)을 인수해 로봇사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1월 일본 로봇전문업체인 에이텍을 인수하더니 4월엔 충남 천안에 로봇공장을 준공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생산 전략을 전개해 산업용 로봇과 지능형 서비스로봇을 아우르는 국내 최고의 로봇기업으로 발전시킬 준비를 마쳤다.

LED분야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지난 4월 국내 최대의 LED조명 회사인 화우테크(현재 동부라이텍㈜) 인수에 성공했다. 조명사업을 중심으로 LED칩, 모듈 등 관련 산업영역까지 사업분야를 확대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지난 7월 11일 LED 패키지와 응용제품을 생산하는 알티반도체(동부LED)를 인수, LED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게 있다. LED사업은 반도체 사업 형태와 제조공정 기술면에서 흡사하다는 점이다. 반도체사업과 LED사업의 경우 소재가 실리콘이냐 사파이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부는 1980년대 초에 미국 몬산토와 합작해 코실(현 실트론)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했으며, 1993년에는 세계 두 번째로 실리콘웨이퍼의 소재인 고순도 다결정실리콘 제조공정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LED사업의 기본이 되는 핵심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작은 노력으로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태양광용 웨이퍼에서 셀과 모듈을 만드는 공정 역시 반도체 칩 생산공정과 매우 비슷해 태양광 사업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세계적인 반도체기업인 대만의 TSMC가 역시 2009년부터 태양광과 LED사업에 적극 뛰어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동부그룹은 1997년부터 반도체 사업에 진출, 공정기술 분야에서 풍부한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향후 동부의 신성장동력은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위시하여 로봇, LED, 태양광 사업이 될 전망이다.

계열사별 사업은 어떻게 되나
그렇다고 동부그룹의 기존 핵심사업을 축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래신성장동력을 위해 무게중심만 옮길 뿐이다. 기존 사업분야의 투자 확대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해나갈 방침이다.

동부그룹에 따르면 ▲철강ㆍ금속ㆍ화학 ▲농업ㆍ건강ㆍ유통 ▲건설ㆍ에너지ㆍ부동산▲물류ㆍ여객ㆍ콘텐츠 ▲보험ㆍ증권ㆍ은행 등 5개 사업분야에도 아낌없는 투자에 나서고 있다. 설비투자 확대와 인수합병(M&A)를 통해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준비작업은 대부분 끝마친 상태다.

철강분야는 동부제철을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할 예정이다. 조강 생산량을 총 1000만톤 이상으로 순차적으로 확대,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것.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합금철 국내 1위, 정련 합금철 분야 세계 2위인 동부메탈은 2010년 총 2000억원을 투자,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인 50만톤으로 생산규모를 증설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했다. 앞선 기술력을 토대로 미래 시장을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인 ULPC(극저인탄소) 훼로망간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합금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동부그룹은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춘 농업ㆍ건강ㆍ유통분야 육성도 중점적인 투자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대형 농산물 유통회사인 동화청과를 인수, 올해 4월 천적곤충분야 세계 3대 회사인 세실을 인수해 친환경 생물학적 방제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선점하게 됐다. 생물학적 방제 사업은 동부가 최근 새롭게 전개하고 있는 친환경 농자재와 플랜테이션, 바이오 분야 신사업과의 연관성이 높고 친환경 농산물 유통사업과도 연계해 시너지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건설분야는 동부건설을 주축으로 엔지니어링 기술과 플랜트 사업 확대, 에너지는 동부발전, 물류는 동부익스프레스를 중심으로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동부하이텍, 저전력 반도체 기술 도전장

동부하이텍이 ‘3대 기술분야’를 선정,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고전압·저전력 중심의 아날로그반도체, 의료기기·자동차에 사용되는 산업용 센서, 통신용 고주파반도체(RF) 등의 복합신호소자(Mixed Signal) 반도체가 주인공. 성능·저전력 반도체 제품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의 모바일 컴퓨팅 기기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스마트시대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터치(촉각), 3D(시각), 음향(청각) 등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아날로그 신호를 첨단 IT 기기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주는 아날로그 반도체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가전분야에 편중된 제품 구조를 가전, 통신, 컴퓨팅, 산업용 제품으로 적절히 배분해 급변하는 반도체 경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과감한 M&A로 첨단기업 체질 개선

동부그룹이 기존 사업과 신사업간 시너지 확대를 위해 인수합병(M&A)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이뤄진 M&A 수는 무려 8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자세를 낮추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과감한 행보다. 김준기 회장의 진두지휘로 첨단기업으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대형회사와 M&A가 아닌 중소기업의 M&A가 특징. 투자비용 대비 업종별 사업시너지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듯하다. 동부는 지난해 7월 다사로봇(현재 동부로봇), 지난 1월 일본 로봇엡체 에이펙과 M&A를 성사시켰다. 3월엔 LED업체인 화우테크(현재 동부라이텍), 7월엔 알티반도체 M&A를 통해 LED사업의 수직계열화도 완성했다.

이밖에도 지난해 12월 농수산업체 동화청과, 지난 4월 생물방제업체 세실(현재 동부세레스)과 M&A에 이어 6월 가정용 살충제업체 동호제약의 자산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지난 7월 태양광업체인 네오세미테크(현재 동부솔라)를 인수해 태양광 사업 진출 의지도 밝혔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