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세계 곳곳에서 내연해온 신고립주의가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선 것 같다.

유럽연합(EU)은 원래 공동체주의와 통합정신을 의미한다. 1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그에 따른 파시즘이 2차 세계대전을 야기하자 그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핵심국가이던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신고립주의의 후폭풍은 이제 어떤 형태로든 전 세계를 타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브렉시트 이후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은 물론 스웨덴과 네덜란드, 프랑스에서도 EU 탈퇴파들이 한층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프랑스와 EU에서 영국과 똑같은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이 말은 신고립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트럼프는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치겠다고 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기존 자유무역질서도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테러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무슬림은 미국 땅을 밟지 못하게 하겠다며 무슬림 입국금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안보측면에서는 세계경찰국가로서의 개입을 포기하고,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한 세계 평화질서)를 유지하기보다는 아메리카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선택하겠다고 외친다.

신고립주의의 확산으로 각국은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힘든 상황에서 불신과 불협화,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상호 투쟁의 정글로 접어들게 생겼다.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기치로 공동체주의와 통합에 앞장서온 영국 미국 등 강국에서부터 반공동체주의·반세계화의 퇴보가 시작됐으니 신고립주의의 영향은 예상보다 빠르고 크게 나타날 것 같다.

물론 신고립주의는 비현실적이다. 경제적으로든, 역사적 측면으로든 결코 진보가 아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문제점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자신의 입신영달에나 관심있는 요즘 정치인들에게는 좋은 선동꺼리가 되겠지만, 국민들이 이기심을 접어두고 잠시만 정신차리고 따져본다면 신고립주의의 허구를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내에서 재투표의 주장이 거세지는 것도 정치인들에 속은 영국민들의 뒤늦은 각성 때문이다.

지난 6월말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브렉시트 이후 신고립주의에 대한 우려로 무거운 분위기였다. ‘세 친구(Three Amigos) 회담’으로도 불리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생계를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은 세계화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그렇다고 무역협정에서 빠져나와 국내 시장에만 집중하자는 처방은 잘못된 것이다.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니에코 멕시코 대통령도 “고립주의는 인류의 진보로 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트뤼도 캐나다 대통령도 “함께 하는 것은 언제나 혼자보다 낫다”고 역설했다.

신고립주의는 한국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로서는 보호무역 강화추세가 독약일 수밖에 없다. 그간 경제영토를 넓히기 위해 미국 중국 EU 등 세계 52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FTA 시장비중을 70% 이상 끌어올린 노고가 퇴색될 위험도 있다. 신고립주의를 강 건너 불처럼 볼 수 없는 이유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보다가 1961년 1월 혹한 속에서 진행된 존 F. 케네디의 취임연설이 떠올랐다. 1364개 단어의 가장 짧은 연설문이지만 가장 위대한 연설문이다. 그 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제 나팔소리가 다시 우리들을 부릅니다. 무기가 필요하지만 무기를 들라는 부름이 아니며,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싸우라는 부름이 아닙니다. 독재 빈곤 질병 전쟁 등 인류 공동의 적에 맞선, 해가 지나도 이어질 긴 투쟁의 짐을 지라는 부름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적들에 맞서 남과 북, 동과 서를 아우르는 웅대하고 전 지구적인 동맹을 조직하여, 인류에게 좀 더 유익한 삶을 보장해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역사적인 노력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요즘 브렉시트 사태를 보면 세상이 시간을 거슬러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