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 공장장이 최근 필자에게 이런 당부를 해왔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을 벗고, 우리나라와 우리 기업에 적합한 한국식 혁신활동 모델을 같이 만들어 봅시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다양한 혁신 기법을 섭렵하며 회사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던 임원이었다. 이론과 실전으로 무장하고 수없이 많은 성공과 시행착오를 경험한 백전노장도 이제는 ‘우리만의 혁신’에 미래를 위한 해답이 있음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의 혁신 활동은 모방적이고 성과중심적이었다. 선진기업의 성공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그들과 같은 방식의 혁신을 추진했다. 해외 일류기업이라는 뚜렷한 목표 아래 혁신의 속도와 양에서 분명한 차이를 만들며 선진기업들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 컨설팅 산업은 기업의 성장세와 달리 많이 뒤쳐져 있다.

컨설팅은 기업의 전략과 그 실행 과정에서 기업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다양한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원해주는 산업이다. 기업 경영수준이 높아질수록 경영관리 및 파생문제의 수준이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어 컨설팅 기법도 이와 함께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족 자본을 토대로 한 경제 발전의 시대적 사명 아래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불가피했고, 소수의 천재적 기업가의 직관적 경영관과 의사결정이 기업성장의 핵심이었기에 컨설팅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우리나라 산업사에 컨설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산업화 초기, 단기간에 품질과 생산성 수준을 높여야 하는 산업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본으로부터 품질관리(QC, Quality Control)와 분임조 활동을 도입한 ‘공장새마을운동’이 시초다. 실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품질과 생산관리 수준을 높이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던 공장새마을운동은 정부 주도 하에 정형화된 10단계 문제 해결 기법으로 산업계에 전파되기도 했다. 이후 80년대 전사적 설비관리운동(TPM, Total Product Management)을 비롯해 산업공학(IE, Industrial Engineering), 가치공학(VE, Value Engineering), 품질혁신활동인 6시그마 등이 도입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해외의 선진기법은 우리나라 컨설팅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법 중심의 컨설팅은 이제 선두 따라잡기가 아닌 선두 유지를 목표로 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그 이상의 경쟁력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혁신의 성과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우리 기업들이 ‘혁신개발력’, ‘혁신기획력’에 취약하며 진정한 혁신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은 그동안 정형화된 기법의 도입과 확산에만 치중해온 컨설팅업계에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함을 반증한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세계적 수준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혁신모델은 더 이상 성공적이라 평가받는 외부의 기법에서 탄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컨설턴트들의 사명이자 역할이 있다면 우리 기업의 혁신개발력을 이끌어 내는 일일 것이다. 기업의 고유한 상황과 문제를 직시하고, 문제의 본질과 기업문화, 업의 특성, 구성원의 역량과 정서에 적합한 우리만의 혁신모델을 찾아내야 할 시점이다. 모방, 흉내내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 구성원들의 잠재력이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우리 기업만을 위한 경영방식이 필요하다. 이제는 혁신을 혁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