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조선의 무장으로 대포의 이로움과 제조 방식을 아는 이는 이순신 장군과 진주목사 김시민과 경상좌수사 이각의 무리 몇몇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장군이 이러한 종류의 무기를 많이 제조하여 거북선 외에 다른 판옥선에도 비치하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대장군전은 장군의 좌선(座船=지휘관의 배)인 기함(旗艦=함대의 사령관이 타고 있는 군함, 지휘관의 계급에 따라 규정된 기旗를 달게 했다)에 비치하여 후일의 전과를 기대했다.”

“네, 이런 상황에서 낙안군수 심극성이 거북선의 성적이 이러함을 본 뒤에 ‘참! 사또는 신과 같은 사람이요’‘그런데 정말 왜적이 오겠어요? 김성일의 말을 들으면 풍신수길은 대사를 당행할 만한 인재가 안 된다고 하던데요?’라고 물으니 장군은 ‘거북선 20척만 지어 놓으면 뒤에 일본군이 오더라도 걱정이 없겠지만…’ 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수 같으면 기고만장하여 자랑을했을 텐데 장군은 지나가는 혼잣말처럼 한 것을 보면, 장군의 점잖은 성품으로 드러내 자랑하는 성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사신 황윤길은 풍신수길은 눈에 광채가 있고, 비범한 인물이니, 필연코 큰 뜻을 품어 조선을 범할 우려가 있다고 하고, 부사 김성일의 말은 그와 반대로 수길은 눈이 쥐 눈 같고, 외모와 말솜씨로 본다면 하잘 것 없는 위인이니,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조정에 보고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구나! 김성일이라는 자는 외교관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던 것 같구나! 더욱 어이없는 일은 나라의 수장이란 자가 부하의 보고를 받고, 판단을 못했다는 것은 조선의 국치다. 역사적으로 이 일은 길이 남아 교훈이 되어야 하는데, 역사를 왜곡하려는 것들이 있어 큰일이 아닐 수 없구나! 만약 이순신 장군이 살아 계신다면 뭐라고 하겠나!”

“네,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황윤길은 서인이고, 김성일은 동인이어서, 동인들은 김성일의 말이 옳으니 전쟁 준비를 필요시하지 아니하고, 서인들은 황윤길의 말이 옳으니, 전쟁 준비를 하자고 하였고, 우매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선조는 결국 김성일의 의견을 쫓아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일본 놈들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조선 왕의 무능으로 인하여 조선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였고, 기근과 역병이 산천을 휩쓸었고, 전답이 5분의 1로 줄어드는 대란을 겪고도 선조는 정신 차리지 못하는 부분이 계속 일어납니다.”

“임금이란 자가 그렇게 무지하고 대세를 보지 못하는 안목을 가졌다는 것은 비극 중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낙안군수 심극성은 서인이기 때문에 동인의 영수인 유성룡이 추천하여 새 수사가 된 이순신 장군의 하는 일을 좋게 볼 리가 없었고, 그 뒤에 심극성은 대장 신립에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의 기묘한 성적과 거북선 20척을 건조할 계획을 가졌다는 것을 심술궂게 보고하였다. 신립은 서인이매, 북방에 있을 때부터 이순신 장군이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인걸임을 잘 알고, 심극성의 보고에 서인 선배들의 생각을 들어본 뒤에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큰 공을 세우게 함은 유성룡 일파의 세력을 증진함이라 하여 단연코 장군의 수군 대확장, 특히 성공이 미지수인 거북선 건조를 금지할 것을 임금에게 진언하였지만, 같은 서인 중에도 이덕형, 이항복, 김명원 같은 이들은 장군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억제할 것까지는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였고, 신립이 진언한 계본에는 ‘청컨대, 수군을 파하고 육군에만 전력을 쓰게 하소서’ 하였다. 그때 마침 우매한 선조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받아 거북선의 도형과 아울러 거북선을 시험해본 성적을 보고, 선조는 혼자 대단히 기뻐하던 때에 신립의 계본을 보고, 이렇게 좋은 거북선을 왜 폐하라는 것인가? 적이 바다로 오거늘 어찌하여 수군을 없애라고 하는가? 이에 대하여 모처럼 제대로 된 판단을 선조가 했나보다.”

“네, 신립과 당파인 서인들이 수군을 폐하자는 논리는 지금 김성일 일파의 동인들은 전쟁 준비를 아니하기로 하여 조정의 의견이 결정되었거늘 쓸데없이 수군을 확장해서 일본뿐 아니라 명나라에까지 의심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하나요, 또 설사 일본이 침범한다 하더라도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기에 그 백성들이 모두 물에 익숙하니, 도저히 수군으로 일본군을 막기가 어려워 차라리 육지에 끌어들여서 대번에 철기로 쳐부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로 수군을 확장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있던 것도 폐해버리고 오직 육전에만 전력을 다하자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