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런 장군님께서 거북선을 만들 때 보고 듣는 사람들은 새 수사의 계획에 대해 의혹이 일어 물에 익숙하다는 사람들이 뒤에서 새 수사의 어리석고 미욱한 계획을 비웃습니다. 오랜 세월 대대로 저러한 병선은 처음 본다. 병선으로 말하면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 등이지 저러한 괴이한 형상이고, 불편하게 제조하여 무엇에 쓰느냐?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수사의 부관이라고 할 우후 김운규까지도 경험 없는 새수사의 철없는 장난질이라고 비평합니다. 만일 새로 짓는 거북선이 성공하지 못하면 비밀히 자기와 친분이 있는 병조판서에게 보고라도 하여 새 수사의 떨어지는 모양이라도 보려고 생각했던 놈입니다.”

“세상 일이란 어이없고 조그만 곳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군은 성실하고 근면함으로 모두를 이겨내며, 공사가 끝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 만드는 감독을 몸소 한다. 만약 이때 장군이 배를 건조하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에서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하다. 오랜 세월 평화가 지속되어 온 조선에 변란이 생기리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참으로 위대한 승리 이전에 장군의 전쟁에 대한 예감을 하고 그 준비하는 과정은 세계 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이고, 유비무환의 글자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분은 이순신 장군이며,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창조하였다. 당시에 배를 만드는 대목수 한대선은 장군의 지시 하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 장군의 마음에 맞는 친구이며, 동지자라 할 것이오, 그 밖에 수사의 병선 대 혁신의 정신을 아는 사람은 군관 송희립과 녹도만호 정운이었다.”

“군관 송희립은 순천부 사람으로 활쏘기와 말 타기에 익숙하고 담략과용력이 있고, 용기 있는 장부였다고 하며, 새 수사가 선발하여 대솔군관으로 삼았고, 1553년 癸丑생입니다. 장군보다 8살 아래입니다. 녹도만호 정운은 1543년생이며, 장군보다 2살 위였는데, 병사 수사 이상의 자격이었고, 일찍이 수령으로 두어 고을이나 돌아 다녔으며, 전 만호 이대원이 전사한 뒤로 조정에서 정운을 장군감이라 하여 녹도만호에 임명한것입니다. 충성스럽게 용맹하고, 곧으며 깨끗한 장사였다고 합니다.”
“장군의 참모로서 대단히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움이 도쿠가와 가신들보다 더 훌륭하다고 본다. 장군이 관하 각 진을 순회할때에 녹도진의 병선, 병사, 병기가 모두 다 정돈되어 가지런한 것을 보고 눈에 띄게 된 정운 장군이다. 당시에 위로는 정승, 판서로부터 밑으로 지방의 낮고 변변치않은 벼슬아치에 이르기까지 거의 부패하였다. 전 조선 4만8800여명의 수군과 5960여명의 조졸(漕卒=조선시대 조운선漕運船)이며, 850여척의 병선이 있다 하더라도 각 읍중에 정운 같은 장수를 만난 것은 이순신 장군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던 것이다.”

“네, 辛卯년 壬辰월 모일에 조선의 철갑선인 거북선이 처음으로 전라도 좌수영 앞바다에 진수될 때에 예로부터 듣도 보도 못한 거북선이라는 것이 물에 뜨는 것을 보고자 좌수영 백성들은 물론이고, 인근 각 읍, 각포에서도 구경하려고 모여든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뿐이겠는가? 새로 진수한 산덩이 같은 거북선에는 이물(선수), 고물(선미)이며, 노 뒤(좌현), 노 앞(우현)할 것 없이 오색기치(五色旗幟=군중에서 쓰던 깃발)를 달아 운치를 한층 더 해주었고, 조선소 위에 있는 복파정에는 수사, 우후, 조방장, 각 읍 수령, 첨사, 만호, 군관, 권관, 별장들이 각기 군복, 전립에 환도와 전통과 화살을 갖추고 벌려 있었으니 웅장함은 실로 대단하였고, 정자 밑에는 500여명의 수군이며, 백여명의 조졸이 행렬을 지어 벌려 서고, 군항 안에는 판옥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과 각 읍, 각 진의 수령 변장들이 타고 온 병선이 합하여 30여척이 무더기로 떼를 지어 정박하였고, 좌수영에 속한 5읍 6진의 병선들도새 수사의 엄명으로 정돈되었다. 그 중에서도 녹도의 병선들은 날래고 용맹스러운 모양이 본 좌수영병선에 비교한다면 손색이 없었고, 때마침 조수가 밀려오는때에 북소리 크게 울리자 아단단지(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다는 소이탄燒夷彈종류의 폭탄)가 터지고, 그 속으로 무수한 불화살이 쏘아져 별똥별이 흐르듯이 보였다. 이런 불화살도 새 수사가 강렬하게 개량한 것으로써 적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적선에 불을 놓는 강력한 화력의 명칭은 ‘대발화’라고 했고, 즉 지금의 폭발탄과 같은 것이다. 이 아단단지의 소리를 군호로 500명 수군이 줄을 끌어서 산덩이 같은 거북선이 바다 위로 나갔다. 배가 바다에 나간 뒤에 군악이 울리고 우후 김운규가 거북선으로 오르고 수사와 제장이다 배에 오르니160명이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