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정이 넘은 시간, 게임 스타트업 대표 A는 갑작스러운 전화에 잠이 확 달아났다. 3달전 런칭한 게임에서 심각한 버그가 발견됐다는 이야기. 부랴부랴 앱스토어에 접속하니 분노한 게이머들의 댓글이 폭주하고 있다. 모골이 송연해진 A는 카카오톡을 열어 수석 개발자 에게 '톡'을 보내려다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한다. "신작 게임때문에 피곤할텐데..."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은 비상상황. A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자네, 자나?"

#2. 스타트업 직원 B는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을 하고 기분좋은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밤낮없이 일한다고 불평하던 아내였지만 삼겹살에 후식으로 커피한잔 마신 저녁이 나쁘지 않았나 보다. B는 깊은잠에 들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독사처럼 울려대는 카톡에 잠을 깬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계를 봤다. 새벽 5시. 카톡을 보낸 사람은 부장이었다. B는 눈을 부비며 카톡을 확인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고 말았다. 카톡의 내용은 이랬다. "외부용 노트북 비밀번호가 뭐였지?" B는 충혈된 눈으로 "1234다 이 부장새..."라는 답장을 보내려다 크게 숨을 몰아쉬고 다시 썼다. "1234입니다 부장님^^;"

 

디지털 피로증, "세상이 너무 좋아졌어"
카카오톡이 대한민국 직장인의 공적으로 부상했습니다. 시시각각 울리는 카톡때문에 24시간 업무 스탠바이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고통이 들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부장님, 전화가 잘.."이라던가 "문자를 보내셨네요? 확인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등의 핑계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전화도 잘 터지고 와이파이도 빵빵합니다.

카카오 알림톡 논란처럼 예민하게 굴면 몰라도, 일단 카톡은 무료인데다 맙소사! 상대방이 글을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단연컨데 카톡의 '숫자 1'은 마성의 넘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동료 의원 12명과 함께 소위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해 눈길을 끕니다.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전화(휴대전화 포함) 및 문자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업무에 관한 지시를 내리는 등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핵심이에요.

▲ 출처=카카오

이제 퇴근 후 업무로 아무생각없이 카톡보내면 불법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법안이 발의되었을까요? 맞습니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카톡 업무지시 등으로 인해 많은 직장인들이 고통을 겪고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재미있는 데이터가 있는데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발표한 '2016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38개 나라 중 28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지점은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지수가 꼴지에서 2번째, 건강지수는 꼴지를 기록한 대목입니다. 이건 삶의 질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듯 합니다.

다만 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일과 삶의 균형'입니다. 터키와 멕시코에 이어 꼴찌에서 3번째인 36위에요. 주 50시간 이상 일한 임금 근로자의 비율이 23.12%에 달해 OECD 평균보다 10% 높았습니다. 이럴거면 OECD 왜 가입했나요...

물론 이러한 현상의 책임을 카톡에게,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에만 지울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세상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기술이 발전해 윤택한 삶을 살아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일에 치여 사는 시대가 왔다는겁니다. 인터넷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용자 경험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악마의 연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최대 3개의 기기를 간편하게 전환하며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배터리 성능도 높아지고 있어요. 당신이 길을 걸어가거나 카페에서 한가함을 느끼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스마트밴드와 스마트워치는 화장실에서 업무메일을 확인하도록 만들고 태블릿과 전자책 단말기는 24시간 워크스페이스를 만들어줍니다.

결국 이러한 디지털 피로증은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사용자 경험이 24시간 지속되며,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부가기기의 등장으로 시작됐다고 봐야 합니다. 좋은 의미에서 이는 인류의 발전이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지금 내 볼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닙니다. 비가오네요.

▲ 출처=픽사베이

근원적인 열망, 기술과 만나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현재 직장인 24시간 업무 스탠바이의 단초는 될 수 있어도, 근원적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살짝 비틀어, 회사로 범위를 좁혀보면 결국 경영자와 직원의 인식차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차이는 언제나 있어왔으며, 기술이 발전하며 삶과 일의 경계를 무너트릴수 있는 기회가 엿보이자 위에서 아래로 권력의 압력이 시작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 스타트업 전성시대가 열리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닌, 말 그대로 소규모 기업들이 다수 생겨나며 각자의 인식차이에 따른 충돌은 점점 심해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식차이는 무엇일까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조직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대표가 보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업무시간에 담배피우고 수다떨고 쉬다가 업무시간 후 급한일이 있어 카톡을 보내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네요. 한 직원은 "열심히 일하고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해야 더욱 일을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영진은 이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정말 중요한 일이면 업무 외 카톡이나 업무지시를 수용할 수 있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지시를 하니 죽을 맛"이라고 토로합니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분명한 인식차이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일의 성취도, 그리고 업무 외 시간의 업무지시 타당성을 두고 경영진과 직원의 의견이 갈리는 셈이에요. 이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할까요? 일의 성취도 문제는 말 그대로 조직내부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응은 어려워보입니다. 알아서 해결하세요. 하지만 후자인 업무 외 시간의 업무지시는 '눈 가리고 아웅'만 아니라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지점부터 출발해 간극을 좁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경민 의원의 법안이 다소 위험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기업의 경우 시스템이 안착되어 업무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따른 리스크를 해결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큰 꿈을 가지고 스타트업에 입사했다면 대기업과 다르다는 점은 알았겠죠? 그리고 업무의 특성으로 보아 스타트업은 미래가 상당히 불분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연결되지 않을 권리만 내세운다면 현실적인 문제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확실한 가이드 라인을 정하고 경영진과 직원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노트북 비밀번호 알려달라는 수준의 지시에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며, 반면 무조건 '단절'만 주장해서도 곤란합니다.

"보람은 됐고 야근수당 주세요"라는 책이 큰 이슈가 된적이 있습니다. 비록 대안없이 비합리적 노동환경만 지적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그 자체로 의미있는 화두로 보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역시 가이드 라인입니다.

▲ 출처=픽사베이

초연결 시대, "연결에 겁먹는 시대를 파괴하자"
지난해 한 지역 방송사에서 사물인터넷과 관련된 짧은 강의에 나선적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초연결의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사용자 경험이 무한으로 확장되어 모든 사람이 언제나 스탠바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어떻게 그런 세상이 오나"부터 "싫다. 그럴리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세요.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초연결은 데이터를 창출하고 이는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카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신저는 미래 소통의 플랫폼으로 구축되고 있으며 그 주변부에는 다양한 콘텐츠와 플랫폼이 넘실거리는 시대입니다. 그 거대한 대세를 거부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러한 초연결을 공포로만 채우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 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정말 알맹이 없는 말이지만 서로 반성하고 합의를 위한 대승적인 판단에 나서는 것이 핵심이에요.

인간의 욕구가 기술의 발전을 끌어냅니다. 우리는 윤택한 삶을 위해 기술의 발전을 원했지, 일의 노예가 되고자 기술의 발전을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절대적인 키워드를 기술 외 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