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전문 문성병원 서순천 병원장

심각한 표정의 64세 남자 환자의 걱정스러운 물음이 진료실 앞 간호사실에 다급하게 들렸다.

“선생님, 7일 전부터 오른쪽 목 뒤가 뻐근하고 당기는 느낌이 심하다가, 그냥 감기몸살이려니 하고 약국에서 감기몸살 약 사먹고 지냈는데 급기야 어제부터 입이 돌아가고, 혀가 꼬이고 음식이 잘 씹히지 않아요. 게다가 눈도 감기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거 뇌졸증 맞죠? 어떻게 해야 돼요? 이제 곧 수족마비가 오고, 말이 안 나오고 걷지 못하겠죠?”

그분의 재촉하는 물음은 필자가 흰색 가운을 입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끝났다.

고혈압, 혹은 당뇨 등의 특별한 병력은 없는 것으로 보였고, 최근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며칠간 폭음을 했다고 한다. 시간을 다퉈서 간단한 신경학적 검사를 마친 소견으로는 우측 안면신경마비가 보이고, 그 외 우측 반신 마비나 감각 이상 등의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소견은 뇌에서 발생한 뇌졸증과 같은 중추성 마비일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발생하는 중추성 마비의 경우, 뇌경색증, 뇌출혈, 뇌내종양 등에서는 안면마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언어장애, 한쪽의 운동이상, 감각이상, 보행장애 등의 증상이 동반된다. 필자는 환자에게 설명을 했다. “우선 진정하고, 급성기 뇌졸증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뇌에서 안면신경을 압박하거나, 자극을 주는 다른 이상소견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MRI(자기 공명 영상 장치)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뒤 우선적으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해놓았다.

언제나 월요일 오전 진료실 앞은 명절을 앞둔 복잡한 재래시장 광경과 다를 바 없다. 전부 살아가는 모습이고, 살기 위한 움직임들이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고된 몸부림이 선명한 흑백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 속에 있는 필자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쁜 시간이 30여분 지났을까, 그 환자가 초조한 걸음걸이로 침울한 눈빛의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진료실을 향해 오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결과가 괜찮아야 할 텐데….” 필자 혼자의 중얼거림으로 영상검사 결과를 확인해 보니, 예측한 대로 뇌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그 환자를 불러서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한 후, 대부분의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중추성 안면마비와 달리 수족마비가 오지 않고, 언어장애나 뇌기능 이상 등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일단 안심을 시켰다. 그런 뒤 환자와 세밀한 면담을 진행했다.

대부분의 말초성 안면마비는 안면신경의 염증성 변화로 발생하는데, 흔히 와사풍 혹은 벨마비라고 부르며 안면마비라고 하기도 한다. 안면신경에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는 바이러스성 염증이 대부분이다. 이는 인체의 면역기능이 약해진 상황, 예를 들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거나, 피로가 계속 누적되거나, 심리적 스트레스 및 감기나 장염 등에 오래 노출되어 있거나, 면역성 약물을 오랫동안 복용하거나, 과음 혹은 폭음을 자주 하는 경우 발생 빈도가 높다.

그분의 경우 최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부족, 과로, 지나친 폭음 등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옛말에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본연의 속뜻과 달리 문장 그대로를 의학적으로 본다면 다르다.

입은 (마비로 인해) 삐뚤어졌지만 언어구사에 문제는 없고, 안면부에 마비는 왔지만 언어를 구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 뇌에는 이상이 없는 말초성 안면마비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쉬면서 치료받으면 대부분 2개월 이내에 후유증 없이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