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블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임 카말. 출처=몽블랑

지난 6월초, 서울 소공동 스테이트 타워에서 몽블랑의 2016년 신제품을 소개하는 블랙 앤 화이트 위크가 열렸다. 이를 기념해 방한한 몽블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임 카말(Zaim Kamal)을 만나 몽블랑과 시계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한 방한이다. 아시아 내 한국 시장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귀한 손님이 오신 걸 보니 사실인 것 같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궁금하다.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 도착한 지 아직 7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길에 한옥과 함께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경계 없이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유럽에서 살고 있는데, 알다시피 유럽에서 산다는 것은 마치 박물관에서 사는 것과 같다. 건축물도 옛 것 그대로이고, 변화를 거부한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나아가려는 것 같다. 이런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항상 지나간 것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다. 일단 끝나고 나면 다시 새로운 것에 집중하라는 그 말이 지금 아시아 국가들과 딱 어울리는 듯하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 바로 이것이 내가 아시아를 좋아하는 이유다. 물론 아시아에서 전통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새로운 발전과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참 멋지다.

▲ 몽블랑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블랙 앤 화이트 위크’에 마련된 시계 부스. 출처=몽블랑

사실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많은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이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강조한다. 몽블랑도 예외가 아니다.
워치 메이킹은 굉장히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조립 과정과 워치메이커들의 협력 방식은 전통적이지만, 동시에 혁신적이고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다. 워치 메이킹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종종 F1이 떠오른다. 워치 메이킹과 F1 모두 소재에 대해 고민하고 다음 단계의 개발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 실제로 나는 F1 엔지니어로 일하는 친구에게 이따금씩 신소재에 관해 묻곤 한다. 기능성, 정확도, 경량화, 내구성이 중요한 워치 메이킹 과정에서 신소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빌르레에 위치한 몽블랑 워치 매뉴팩처에 가보면 나무 도구를 사용해 손으로 부품을 하나하나 깎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방에서는 세라믹 등 신소재를 사용한 실험을 하고 있다. 워치 메이킹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 그 자체다. 만약 전통적인 시계 제작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신소재를 적용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워치 메이킹은 아시아 국가들과 닮았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합쳐져 끊임없이 발전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나오니까 말이다.

신소재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신소재가 시계 디자인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하다. 어떻게 적용하는가?
소재 각각은 고유의 특성이 있어 그 자체가 어떻게 디자인할지를 말해준다. 예를 들어 섬유나 가죽을 보면 그 속에 디자인 진행 방향과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방법을 품고 있다. 신소재도 마찬가지다. 세라믹, 카본 심지어 그 흔한 스테인리스 스틸까지도 원료를 보면 어떻게 디자인되길 원하는지 소재가 말하고 있다. 소재가 말하는 것과 반대로 작업하면 디자인은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다. 마치 동그란 구멍에 사각형을 맞춰 넣는 것과 같다. 소재와 디자인, 제작 방식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

몽블랑은 올해로 창립 110주년을 맞았다. 의미 있는 해를 맞이하는 각오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번이 내가 몽블랑에서 맞는 두 번째 기념 해다. 첫 번째는 마이스터스튁 90주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몽블랑 메종에게도 110주년이 특별한 이유는 메종이 시작하게 된 출발점인 개척 정신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몽블랑 메종이 탄생했던 때는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예술이 넘쳐났던 시대다. 메종 창립자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시대에 깃들었던 개척 정신을 바탕으로 몽블랑 메종이 시작되었고, 이를 기념하고자 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가진 개척 정신에도 주목하고자 하는데, 우린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도전해야 한다. 그러한 개인들의 개척 정신과 메종의 개척 정신을 함께 기리고 싶다.

▲ SIHH 2016에서 선보인 몽블랑 '몽블랑 4810 엑소 투르비용 슬림 110주년 에디션'. 출처=몽블랑

몽블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지난 1월, SIHH에서 선보인 시계들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지?
기본적으로 대서양 횡단 스토리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대서양 횡단을 통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소재, 새로운 생각들로 새 시대를 맞이했다. 몽블랑은 올해 SIHH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그 움직임을 기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럭셔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당시 선박 안엔 보드 룸, 다이닝 룸 등 각 방이 고급스럽게 장식되어있었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SIHH에서 선보인 시계들에 약간은 관능적이면서 풍부한 럭셔리 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주로 언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나는 여행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영감의 원천은 사실 주위에 널렸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길을 걷고 있다. 그럼 나는 그가 어떤 식으로 가방 손잡이를 잡고, 어떤 시계를 어떻게 차고 있는지 등을 유심히 본다. 그런 작은 디테일들을 기억하고 다시 생각해내고 또 다른 기억들과 융합한다. 열린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면 이런 작은 조각들을 놓칠 것이다. 나에겐 삶 자체가 예술이고, 영감이다. 실제로 종종 딸과 함께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한다.

시계뿐만 아니라 펜, 가죽 제품, 액세서리까지 맡고 있다. 다양한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굵직한 테마를 정하고 스튜디오 한쪽 벽에 원하는 색상과 형태 등을 모아둔 무드 보드를 만든다. 각 디자인 팀은 이를 통해 큰 그림을 이해한다. 모든 카테고리별 팀은 같은 테마 하에서 작업을 한다. 물론 어느 제품에선 테마가 강하게 드러나고 다른 제품에선 희미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공통으로 통하는 주제가 있다. 하나의 테마를 공유하지만 모든 카테고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올해는 서펀트 모티브가 큰 테마인데, 시계의 경우 장인이 직접 손으로 인그레이빙한 서펀트가 돋보이는 다이얼, 필기구에서는 펜을 감싸며 내려오는 구조로 제작한 서펀트 클립, 레더에서는 핸드 페인팅한 서펀트를 선보였다. 각 카테고리는 각자의 표현 방식을 따른 셈이다.

올 블랙 스타일링을 선호하는 것 같다. 시계도 그런가? 본인만의 워치 스타일링 팁이 있다면?
블랙은 쉽다. 내가 왜 블랙을 고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블랙 스타일링을 선호한지 아주 오래됐다. 패션 공부를 시작할 당시 요지 야마모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는 블랙 컬러 의상을 자주 입었고, 그에게 있어 블랙은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다. 모든 색을 섞으면 블랙이 된다. 그 깊이와 미스터리함, 관능미. 바로 이게 내가 블랙을 좋아하는 이유다. 시계에 있어선 단순한 스타일링 팁 보다 어떤 것이 자신의 개성과 맞는가가 중요하다. 직접 매장에 가서 당신과 가장 어울리는 것을 체험해보고 선택해야 다. 난 항상 39mm 시계만 착용했다. 그런데 올해 SIHH에서 새로운 시계를 차보기로 결심하고 44mm 시계를 차봤다. 그제야 내가 44mm 시계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시도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이처럼 직접 차보고 시계를 골라야 한다. 몽블랑은 어떤 시계를 어떻게 차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인 워치 메이킹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선택 가능한 옵션을 제시할 뿐이다.

지금 차고 있는 시계는 어떤 몽블랑인가?
몽블랑 1858 매뉴얼 스몰 세컨드이다. 매뉴얼 와인딩 시계를 좋아하는데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그는 필기구 콜렉터이자 시계 콜렉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할아버지 옆에서 시계를 와인딩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할아버지는 태엽을 얼마만큼 감는 게 적당한지 시계가 말해준다고 했다. 지나치게 감아도 반대로 너무 루즈해도 안 된다. 시계를 와인딩하면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을 찾는 것이다. 그 순간의 느낌이 좋아 지금 이 시계가 마음에 든다. 또한 이 시계는 몽블랑 빌르레 매뉴팩처의 헤리티지를 담고 있어 더욱 좋다.

몽블랑 다음으로 좋아하는 시계 브랜드가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시계 콜렉터였던 할아버지 덕에 나는 운 좋게도 다양한 브랜드의 시계를 볼 수 있었고 차 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계 디자인 요소들을 모아 몽블랑시계에 적용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브랜드가 좋다고 단순하게 답변하기 어렵다. 시계는 브랜드 자체보다 각자의 개성의 맞는 걸 고르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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