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상표 침해에 관한 A to Z (1) – 상표와 상품의 유사성’에서 상표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1차적 요건으로서 ‘상표와 상품의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상표 침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MBC는 2003년 9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드라마 <대장금>을 제작해 방송했고, <대장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 수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국내에서 ‘헬로 키티’ 캐릭터를 상품화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던 A 사는, <대장금>이 큰 인기를 끌게 됨에 따라 2005년경부터 헬로 키티 캐릭터에 다양한 의상을 입히거나 소품을 이용해 변형을 가해 이러한 인형 등을 제조 및 판매했다. 그리고 2007년 8월경부터 홈페이지에서 상품 명칭에 ‘대장금’을 붙여 제품을 판매했다. 이에 MBC는 상품 이름 앞에 ‘대장금’을 표시한 행위가 상표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MBC의 주장은 타당할까?

상표 제도의 목적은 상표의 기능, 즉 자신의 상품임을 표시하는 ‘출처 표시’ 기능 및 타인의 상품과 자신의 상품을 구분하는 ‘자타상품식별’ 기능 등을 보호 및 구현함으로써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수요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상표법 제1조). 따라서 상표가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표 제도의 목적인 ‘출처 표시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면 상표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침해 상표가 ‘상표적으로 사용’될 것이 상표 침해의 요건 중 하나로 요구되는 것이다.

반대로 ‘상표적 사용’이 상표 침해의 성립 요건으로 요구되지 않는다면, 상표로 등록된 ‘애플’, ‘코카콜라’ 등의 제품명을 인터넷이나 책 등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초래된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상표적 사용’이 상표 침해의 요건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표적 사용’으로 볼 수 없어 상표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 상표의 사용 행위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첫째로, 상품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원재료, 용도 등을 표시하는 등 상표가 ‘설명적‧기술적으로 사용(Descriptive Use)’된 경우가 있다. 예컨대 법원은 자동차 부품인 에어클리너에 ‘소나타II’, ‘라노스’ 등을 표시한 경우에 이것이 부품의 용도 설명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 상표적 사용을 부인한 바 있고(대법원 2001. 7. 13. 선고 2001도1335 판결), 방독마스크 제조, 판매 회사가 그 상호의 영문 명칭의 첫 알파벳인 ‘S’와 방독마스크의 부품인 정화통을 의미하는 ‘Canister’의 약어인 ‘Ca’를 합한 ‘sca’라는 표시 옆에 농도별 등급 표시에 해당하는 숫자를 병기하는 형식의 표장을 이용한 경우, 이것이 방독마스크 정화통의 종류나 규격 내지 등급 표시의 사용이라고 보아 상표적 사용을 부인한 바 있으며(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1다79068 판결), ‘windows’를 제품의 사용설명서, 고객등록카드, 참고서 등에 표시한 경우 이것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명칭을 표시한 것으로써, 그 안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안내‧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상표적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3. 10. 10. 선고 2002다63640 판결).

둘째로, 상표가 순전히 ‘디자인적으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법원은 유명 캐릭터 가필드(Garfield)의 머리 모습을 한 봉제완구들이 가필드에 대한 도형상표를 디자인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이유로 상표적 사용을 부인한 바 있고(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도1424 판결), 아가타(Agatha)의 강아지 상표와 유사한 모양을 한 스와로브스키의 펜던트가 이 상표를 디자인으로만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표적 사용을 부인한 바 있다(대법원 2013. 1. 24. 선고 2011다18802 판결).

셋째로, 상표가 일반인이 상표로서 인식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법원은 ‘sony’ 표장이 리모콘의 내부회로기판 위에 표기된 경우, 이것이 공산품인 상품의 내부에 조립되어 기능하는 부품에 표시된 표장으로써 그 상품의 유통이나 통상적인 사용 혹은 유지 행위에 있어서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고, 오로지 그 상품을 분해해야만 거래자나 일반 수요자들이 인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표 침해를 부인한 바 있다(대법원 2005. 6. 10. 선고 2005도1637 판결).

그렇다면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이 사건에서 A 사가 판매한 상품인 ‘헬로 키티’ 캐릭터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 수요자들은 위 상품의 출처가 MBC가 아닌 ‘헬로 키티’ 캐릭터의 상품화 사업을 영위하는 집단의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홈페이지에 ‘대장금’ 등이 표기된 방식 등에 비추어 볼 때, A 사가 표시한 ‘대장금’ 등은 ‘헬로 키티’ 캐릭터가 MBC가 제작‧방영한 드라마인 <대장금> 등을 형상화한 것임을 안내‧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A 사는 ‘대장금’ 등의 상표를 상표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법원 역시 A 사가 MBC의 상표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0다20044 판결).

또한, 위 사건에서 법원은 어떠한 표장이 ‘상표로서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는 상품과의 관계, 당해 표장의 사용‧태양(즉 상품 등에 표시된 위치 및 크기 등), 등록상표의 주지저명성 그리고 사용자의 의도와 사용 경위 등을 종합해 실제 거래계에서 그 표시된 표장이 상품의 식별 표지로서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는 종전 대법원의 입장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 결국, 어떠한 표장이 ‘상표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상표와 상품의 유사성을 판단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표가 실제 거래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