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기자의 아버지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싸울 땐 싸우고 지지만 마라.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사실 이 말은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의 요지는 ‘싸워라’가 아니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지켜주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싸움이 발생해 누군가가 다쳤을 경우, 아버지들은 어떻게 할까. 싸움의 인과관계를 따지고 민·형사상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분명 책임을 진다. 또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돈’ 여부를 떠나 ‘책임’이라는 것은 모든 문제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안는다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발설할 수 없는 단어다.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식들에 대한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말하는 ‘책임’의 의미가 이 단어의 바로미터는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면 ‘책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인지에 암묵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지난 8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에 대한 언론 브리핑에서 대우조선해양 자금지원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 “내가 할 일을 했다”며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는 경향신문의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인터뷰 내용이 나온 뒤에 한 발언이다. 임 위원장은 피하지 않고 이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한 셈이다. 특히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보통 정부기관 혹은 관련 기관의 고위직들의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의 결과는 해당 지위를 내려놓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옷을 벗는 것’이 대수인가. 이는 오히려 ‘책임 회피’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아버지들의 ‘책임’과 임 위원장의 ‘책임’은 얼마나 같을까. 과연 ‘끝까지 지킨다’는 의미의 책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아버지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옷을 벗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책임’이란 단어를 내뱉은 만큼 그 무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버지들의 ‘책임지겠다’는 말이 ‘아버지라는 지위를 내려놓는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산업 구조조정에 대해 시급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국내 구조조정 시장이 정부주도 시장에서 민간주도의 시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구조조정 시장에서 ‘관치금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또 구조조정 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민간주도 시장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이 옳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여태껏 옳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임 위원장의 ‘책임론’이 단순히 시장의 노이즈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온 발언이 아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