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한국에 왔을 때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지난 6월 9일 내한행사 기사는 불과 20여 건 검색됐다. 그것도 행사 소식을 전하는 단신들이다. 훑어보니, 행사장에 있던 그녀와 직접 대화한 듯한 언론사는 한 곳뿐이고, 해당 기사에도 그녀의 발언은 두세 줄에 그쳤다.

‘철의 여인’ 둥밍주(董明珠, 62)는 중국 거리전기(格力電器, Gree)그룹 회장이다. 기업가로서 그녀의 위상은 샤오미의 레이쥔을 능가하고, 텐센트의 마화텅이나 알리바바 마윈에 비견할 만하다(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이 알고 있는 중국 기업인은 대부분 IT 업계 사람들이다). <포춘>이 발표한 ‘2015년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 톱 25’에서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기업 측면에서도 거리전기는 에어컨 분야 세계 1위다. 연간 가정용 에어컨 6000만대, 상업용 에어컨은 550만대를 생산한다. 2005년 이후 10년 연속 에어컨 생산 및 판매 부문 세계 정상이다. 매년 세계 에어컨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생산기지가 중국을 비롯 파키스탄, 브라질 등 10개국에 있고 직원 수가 총 7만여명에 이른다. 7개 연구소에 연구원이 8000명이고, 보유특허가 1만5000여개다. 최근엔 스마트폰과 전기차 시장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 재계의 거물이 내한했는데도 한국 언론이 몰라본 것은 IT 기업들에만 관심을 쏟는 편향된 취재문화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인터넷이나 언론이 아닌 책을 통해서야 둥밍주를 알게 됐다.

우선 둥밍주는 개인성공담으로도 유명하다. 경희대 법무대학원 강효백 교수의 <중국의 슈퍼리치>(한길사)는 그녀를 이렇게 소개한다. ‘중국의 여자 부호와 여성 기업가 대다수는 기실 누구누구의 아내이거나 딸이다. (하지만 그녀는) 돈도 배경도 없고, 인맥도 관시(관계.인맥)도 없고, 젊음도 미모도 없으며 심지어 남편도 애인도 없다.’

책에는 둥밍주의 믿기 힘든 성공기가 담겨 있다. 36세 과부이던 그녀는 마카오에 인접한 주하이市 중소 국영 에어컨부품조립회사 ‘하이리’에 말단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불과 11년 만에 회사를 세계 최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 사이 그녀가 기록한 영업실적과 각종 성공담은 가히 전설적이다.

둥밍주는 제조업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남다르다. 그래서 그녀의 발언은 종종 논란을 일으킨다. 샤오미 레이쥔과의 공개적인 갈등과 경쟁은 언제나 뜨거운 화제꺼리다.

최근 논쟁의 불을 지핀 발언은 이런 것이다. “제조업 기반 없이 IT 산업의 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재 IT 공룡들 중 상당수는 얼마 못 가 명맥을 다할 것이다.” 둥밍주의 논거는 IT 관련 제조업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의미하는 스마일링 커브(Smiling Curve)다. 거리전기의 제조업이 전통적 산업이며 스마일링 커브의 기초 부분에 해당하고 샤오미 등 인터넷산업은 신흥산업으로 스마일링 커브 상부에 있다고들 하지만 제조업 없이 인터넷 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최근 <신화망(新華網)>에 소개된 연설문은 둥밍주의 철두철미한 경영관을 보여준다.

“중국의 가전기업 가운데 거리전기는 유일하게 부동산 분야에 진출하지 않았다. 부동산 투자로는 빨리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는 실물경제를 추구하고 있고 실물제조업의 발전을 지향한다.”

“솔직하게 말을 하지 않으면 중국 제조업의 미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공인이니까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내 생각은 다르다. 공인이기 때문에 할 말을 해야 하고 진심을 말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진실된 말을 하기를 꺼린다면 우리는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품질검사기구에 우리의 에어컨 품질을 검사할 때는 최대한 엄격히 하고 계란에서 뼈를 찾아내려는 자세로 품질을 검측하며 기준에 미달할 경우 가차 없이 돌려보내라고 부탁한다.”

“나의 확실한 신조는 반드시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네 글자가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왜 직접 제품 광고에 출연하는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대부분 기업들은 스타를 이용한다. 나는 반대 입장이다. 왜냐하면 내가 소비자에게 한 약속이기에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오면 된다. 나를 찾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스타를 찾아갈 수 있는가? 설령 찾아갔다 하더라도 그가 제품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가?”

“지금의 나는 이미 이익을 쫓아서가 아니라 중국의 강대함을 위해 기업을 운영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치이고 결국은 거리전기의 꿈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제조업 분야 스타경영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언론도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제조업 분야 '한국의 둥밍주'들을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