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LG그룹은 국내 재벌 그룹들 중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를 성공적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많은 국내 그룹사들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 모범 모델로 꼽히고 있다.

또 이듬해인 2004년은 (주)LG와 (주)GS홀딩스에 대한 상호 지분정리가 완료됨으로써 LG그룹의 현재 주력사업인 전자·화학·통신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한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당시 시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뒤돌아보면 2003년 (주)LG의 주가는 역사적 바닥 수준이었으며 2004년부터 본격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 최근 (주)LG의 주가 수준을 2003년 시점과 비교하면 약 10배 넘는 오름세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LG그룹에 대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실상 LG그룹의 대표계열사인 LG전자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IT시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그러나 이는 아주 좁은 시각에서 LG그룹을 바라보는 ‘착각’일 뿐이다. LG그룹은 이미 2003년 지주사 체제를 성공적으로 전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주사의 가치를 높이는, 즉 계열사의 고른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주사는 단순히 여러 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해 브랜드 로열티를 주 수익원으로 하는 순수지주사와 지주사 자체가 사업을 영위하며 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한 사업지주사 형태로 나뉜다. 이중 LG그룹은 순수지주사 형태를 띠고 있어 계열사들의 실적에 따라 지주사의 가치가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 자체 사업이 없기 때문에 그룹사의 주력사업을 영위하는 LG전자·LG화학·LG생활건강·LG유플러스 등 계열사들의 고른 성장이 결국 지주사의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LG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LG그룹는 ‘Annual Report 2004’를 통해 당시 세계 IT산업의 화두가 유비쿼터스(Ubiquitous)와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점을 언급하며 현 시대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전망을 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전자·화학·정보통신 분야의 시너지효과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로벌 리딩기업으로 새롭게 도약할 것을 선포했다.

물론 LG그룹이 이러한 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를 ‘실패’란 단어로 함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지주사 전환을 계기로 LG그룹의 소유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여부다.

 

‘LG그룹 지주사 전환과정과 소유구조 변화 사례연구’(저자 이호영, 강지혜, 권예슬) 제목의 논문은 LG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인 2000년, 지주회사 출범 직후인 2003년과 지난 2013년의 LG그룹의 소유·지배 괴리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그 수치는 2000년에는 30.61%, 2003년 39.39%, 2013년 43.08%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사 체제를 선택한 대기업집단에서 재지배주주의 영향력이 상승한 것이다.

소유·지배 괴리도는 여러 연구에 의해 소유구조의 왜곡을 나타내는 대용치(Proxy)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를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보면 투자자들에게는 (주)LG에 투자하는 것이 지배주주와 비교적 같은 위치에서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주)LG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요인을 찾기 위해서는 ‘각 계열사의 성장’이라는 좁은 시각보다 계열사 전체를 ‘하나의 큰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의 부진은 LG그룹의 입장에서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간과하고 치부하기엔 이 시장의 변화와 그 파급력이 너무나 커 사람들의 인식에 ‘실패’로 작용하게 된 셈이다.

 

LG그룹, ‘성공적’ 지주사 전환의 파괴력

그렇다면 스마트폰 산업의 국내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주가는 (주)LG의 주가 대비 선전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 2003년 LG그룹의 지주사 출범 이후 최근까지 (주)LG의 주가상승률은 10배를 넘어선 반면,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주가는 약 3배 정도의 상승률을 보여 오히려 (주)LG의 주가가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이를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LG그룹의 ‘실패’를 섣불리 논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스마트폰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LG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대응이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배주주와 지난 2003년 이후 (주)LG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LG전자를 향한 세간의 질타를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또 ‘스마트폰 판매 부진’이라는 소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LG의 주가가 큰 폭의 상승을 했다는 점에서, LG그룹은 지주사 전환 이후 분명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LG그룹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LG전자의 실적 개선에 쏠려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은 최근 LG전자의 주가가 지난 2003년 수준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만약 LG그룹의 지주사 출범 이후 현재까지 LG전자의 주가상승률이 삼성전자 주가상승률 수준을 기록했다거나 혹은 그의 절반이라도 달성했다면 분명 (주)LG의 시장가치는 현 수준보다 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만큼 LG전자의 실적 실망감에 이은 주가 부진은 역으로 LG전자의 실적개선 시 (주)LG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향후 LG전자의 실적을 개선시킬 수 있는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연 VC(Vehicle Components)사업부를 빼놓을 수 없다. 비록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은 선점하지 못했지만 자동차 전장부품에 집중하고 이곳에서 실적 개선이 가시화된다면 LG전자 주가의 상승에 힘입어 LG그룹은 그토록 염원하는 ‘일등 기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다시 LG그룹의 전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주사 전환 이후 ‘유비쿼터스’와 ‘컨버전스’를 언급한 LG그룹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시장에 ‘연연’하기보단 기술력에 충실하고 공든 탑을 쌓아 올리듯 그렇게 내재가치 육성에 힘썼다.

즉,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보다 비교적 느리거나 세간의 질타가 있어도 궁극적으로 (주)LG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체 계열사를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하고 외형적 발전보다는 내실을 기했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하면 (주)LG의 가치가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승했다는 것은 설령 성장 기대감이 높은 VC사업부가 향후 실적이 부진하더라도 이를 LG그룹 전체의 ‘실패’로 전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LG그룹의 이런 특징은 ‘최초의 지주사 전환’이라는 타이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주사 전환이 여타 그룹 대비 빨랐던 만큼 안정적인 경영과 이를 통한 계열사 간 시너지가 장기간 (주)LG에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LG그룹의 지주사 전환의 ‘숨은’ 파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