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바다》

- 주경철 지음

- 산처럼 펴냄

- 1만8500원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수십 년 동안의
짧은 기간에 전 세계 모든 지역이
바다를 통해 연결됨으로써
진정한 세계사 혹은 지구사의 흐름이 형성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근대 세계는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해 전에 한 해운회사의 CEO를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지도를 거꾸로 걸어놓고 있었는데, 지도를 그렇게 놓고 보니 이전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답답하게 느껴졌던 한반도가 바다를 매개로 세계로 향해 활짝 열려 있는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근 나온 《문명과 바다》는 그 해운회사 CEO의 생각이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상당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음을 알려준다. 즉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세계를 형성한 바탕에는 바로 바다를 통한 문명의 교류 혹은 교역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15세기 이전의 세계는 육로로만 소통해 오면서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교류가 이뤄지고 각 나라와 민족들은 서로 고립되어 발전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은 아시아나 유럽과는 소통이 끊어진 채 거의 별개의 세계로서 존재하였고, 아프리카는 외지인이 도착한 일부 해안 지역을 제외한 내륙 지역은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으며,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실제적인 정보보다는 환상과 유언비어에 의해 막연하게 채색된 아득히 먼 곳이었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서 살아가던 각 대륙 문명은 15세기 유럽에서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부터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각 지역의 개별 역사는 하나의 세계사의 흐름 속에 녹아들어갔다.

저자는 15세기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게 된 대표적인 사례로 아마존의 화전을 꼽는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은 아마존 지역의 화전 경작을 두고 근대 이전의 원시적 생활 방식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화전은 오히려 유럽인들과 만나고 난 다음에 발전해 나온 ‘근대적인’ 농경 방식이다. 화전 경작을 하기 위해서는 숲에 불을 질러서 나무들을 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숲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나무에 불을 붙이려면 우선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적어도 한 철 동안 방치해서 바짝 마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돌도끼로 나무를 쓰러뜨리고자 하면 실로 엄청난 노력이 소요된다.

실제로 실험 결과 아마존 지역 주민들에게 전통적인 돌도끼를 주고 지름 1.2m의 나무를 넘어뜨리는 실험을 해본 결과 115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매일 8시간씩 3주의 노동에 해당하는 작업량이다.

그러므로 돌도끼로 1800평의 화전을 일구려면 하루 8시간씩 153일 동안 일해야 한다. 반면 쇠도끼를 사용하면 나무 한 그루를 쓰러뜨리는 데 3시간이면 되고, 1800평 화전을 일구는 데 8일이면 충분하다.

새로운 도구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는가. 유럽인들이 들여온 철제 도구를 접한 인디언들이 그것을 그토록 탐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유럽인들이 금을 찾은 만큼 아마존 주민들은 쇠를 찾았던 것이다. 아마존 주민들은 17세기에 유럽산 철제 도끼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화경을 하게 되었고 또 정착 생활을 했다.

그 이전에는 농경보다는 사냥과 채집을 위해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화전 경작이 오래된 생활양식이라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며, 이는 오히려 15세기 이후 형성된 근·현대 문명의 산물이다.

저자는 이처럼 대항해 시대 이후 서구에 의해 전개된 근대화와 세계화의 과정과 풍경을 유럽인이 아닌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꼼꼼히 관찰한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이후 ‘통치의 대상이 아닌 누구나 왕래할 수 있는 공로(公路)’였던 바다는 어느 순간부터 지배의 대상이 되어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영을 위한 공로(恐路)가 되었고, 바다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된다.

따라서 해상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 세계화와 근대화는 너무나 잔인했던 ‘폭력의 세계화’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항해 시대 이후 전개된 근대의 세계화라는 것이 꼭 부정적으로만 볼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유럽에 의한 근대화와 세계화에 ‘폭력’이라는 어둠이 있었다면 세계화를 통해 전파된 각종 ‘신문명’들은 지역적 특성에 맞게 각 나라에 정착돼 문명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따라서 “대항해 시대는 전 지구적 폭력의 시대였고, 가공할 파괴를 초래했지만 동시에 창조적인 대응을 낳았”던 시대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처럼 균형 잡힌 시각을 바탕으로 바닷길을 개척한 바닷사람들의 생활과 바다를 통한 각 문명권의 교류와 소통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일례로 대항해 시대의 선원에 대해 ‘분업화, 표준화 된 일을 하는 가운데 감시와 억압이 일상화된 생활을 하여 장차 출현하게 될 공장 노동자의 선구’로 파악한 점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노예제의 발전으로 대항해 시대 이후 경작지의 발견으로 인해 대량생산이 이뤄지기 시작한 설탕이 ‘서민과 노동자들의 값싼 열량 공급원 역할’을 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들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 밖에도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이전의 세계 바다의 모습, 대항해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각종 항해기술과 선박의 발달, 선원의 현실을 비롯해서 대항해 시대의 선원들이 교류했던 물건과 사용한 화폐, 이들이 참여했던 해전과 이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해적까지 바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원의 모습과 그들의 활동상을 저자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고 바다를 지배한 유럽인들의 세계사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500년이고 짧게 보면 300여년이 채 안 된다. 전체 인류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인 셈이다. 저자 역시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이전 세계의 중심은 아시아에 있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지금도 가장 넓은 땅에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아시아가 바다의 네트워크에 눈을 뜬다면 세계의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서두에 언급한 CEO의 거꾸로 걸린 세계지도가 더욱 실감나게 와닿을 것 같다.

이형구 기자 lhg054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