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2.6~2.7%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실상 2%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출, 고용 등 전반적인 경제지표가 호전되기 어려울 정도로 암울한 전망이다. 그렇다고 내수회복에 기대를 걸 수도 없다. 부채상환과 금리상승, 고령화, 부동산경기 불안 등으로 민간소비 증가율은 성장률보다 낮은 2% 초반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 ‘위기를 기회’로 보고 공격적으로 R&D 투자를 늘리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이 3조65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4.1%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5620억원으로 64.6%나 급감했다. 반면 올해 1분기 연구개발비는 4425억원으로 전년 동기 4265억원에 비해 3.7% 증가했다.

SK하이닉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14년 8.1%, 2015년 8.3%, 지난해 9.3%를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는 12.1%를 기록하며 10%대를 넘겼다.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났지만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연구개발비율이 늘어날수록 매출액도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2000년대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보다 10배나 많은 연구개발비를 들이고도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애플의 연구개발비는 3.5%로 구글의 15%나 페이스북의 21%보다는 몇 배 이상 비율이 낮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애플이 구매하는 부품 물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공급업체들이 애플로부터 수주를 따내기 위해 신기술의 연구와 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감행하게 되고, 애플은 자신이 연구개발에 거액의 비용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공급업체들로부터 그들의 연구개발 성과를 계속 상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의 체감법칙’이 있다. 허만 고센(Hermann Heinrich Gossen)이 주장한 이 법칙은 어떤 사람이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에 따라 느끼는 주관적 만족도 또는 필요도가 점차 감소한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갈증이 있는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첫 모금에서 느끼는 만족과 효용은 가장 크게 느껴지고, 마시면 마실수록 그 가치는 점차 감소하게 된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큰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면 새로운 설비와 더불어 한번 혁신해보자는 마인드도 형성되어 효용과 성과가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 성과는 어느 정도가 되면 정점에 다다르면서 더 나은 혁신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즉, 한계효용의 체감법칙처럼 혁신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어 더 이상의 혁신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 걸까? 세계 최초·최대의 인터넷서점이자 종합 쇼핑몰을 설립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직원들에게 이런 실험을 했다. 연구개발비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가능한 많은 실험을 하게 했다. 실험 횟수를 100번에서 1000번으로 늘리면 혁신의 숫자도 극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며 많은 실험을 장려했다.

흔히들 거대한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비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성과는 나타나지만 더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연구개발비가 늘면 늘수록 ‘눈먼 돈’이 생기고, 관리되지 않은 비용이 불필요하게 지출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혁신은 고사하고 ‘어떻게 비용을 지출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진정한 혁신은 풍족한 비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환경에서 비롯된다. 어느 정도 비용이 투입되었다면 이제는 혁신의 횟수를 늘려보라. 연구개발비와 혁신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