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경제클럽이 6월 초에 개최한 포럼에 알파벳의 집행회장인 에릭 슈밋(Eric Schmidt)을 연사로 초대했다. 이 포럼은 미국과 세계의 생각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를 초청하여 미국 사회가 직면한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로 100년 이상 이어져온 전통이 있다. 슈밋은 세계 최고의 정보수집기업인 알파벳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란 점에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그가 던진 첫 마디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기술에 집중해야 할 때에 중요하지도 않는 정치적 이슈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미국 대선 주자들의 수준 낮은 말싸움을 질책하는 듯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럴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한지 스스로 되물어 보지 않고, 우리를 변혁시킬 일들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미국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한때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방법들에 대해서 논의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문제점들이 특정 이익단체의 불만으로만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래도 그는 낙관적 시각으로 미국이 나갈 방향을 제안했다. “미국은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미국식 모델은 지난 30~40년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지금 미국은 가장 먼저 어떤 문제에 집중해서 해결해야 할지 의견을 모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기술들에 도전해야

그는 “인류는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기술들에 도전해야 한다”며 몇 가지 미래 주요 기술들을 열거했다. 예를 들면 3D 프린팅을 건설에 적용하면 주택건설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합성생물 식품은 빈곤을 해결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가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점은 생물 의학기술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줄기세포기술을 이용하여 필요한 경우에 인체 장기를 성장시키는 기술에 도전한다든지, 유전자나 질병의 작용을 디지털화해서 해석하는 기술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거의 무한대의 반복학습과 계산을 통해서 기계가 직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하여 설명했다.

건설에 3D 프린팅 방식으로 도입한 건 중국의 윈선(WinSun)건설이다. 콘크리트에 특수경화제를 첨가하여 바로 굳도록 설계하여 건물 벽체를 인쇄하듯이 콘크리트를 쌓는 기술을 개발해서 확산시키는 중이다. 최근엔 두바이의 미래청 건물을 완전 3D 프린팅 방식으로 건설해서 주목을 받았으며 두바이 미래박물관도 3D 프린팅 방식으로 건설한다고 공표한 상태다. 재해발생 지역에서 신속하게 주거용 건물을 건설할 수 있다는 개념이지만 아직은 조악해 보인다. 이미 일반화된 컨테이너형 모듈화 건축 시스템과 대비하여 경제성이나 실용성 부분에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중국식의 조악한 방식이 아니고 첨단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정밀공법이 등장한다면 미래건축기술로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자조작(GMO)은 하나의 유기체에서 일부 필요한 유전자를 잘라내서 다른 유기체에 붙여 넣는 방식으로 식물의 형질을 바꾸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 추위, 병충해, 제초제 등에 강한 성질을 갖도록 유전자를 변형시켜준다. 하지만 유전자가 바뀌면서 생태환경에 미치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GMO 식품을 회피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 변형 대신 RNA 간섭기술을 활용하는 시도가 있다. 이는 어떤 유전자의 작동을 후성적으로 멈춰주기 위해서 특정 RNA를 분사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토마토 맛이 좋아지는 스프레이나 가뭄에 잘 견디도록 만드는 스프레이를 만들어 줄 수 있다. RNA 스프레이 방법은 새로운 바이러스나 해충에 견딜 수 있게 바로 맞춤설계가 가능한 방법이다. 새로운 유전자 식물을 만들지 않아도 RNA 간섭방식으로 1~2일 또는 일주일 동안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차단해서 가뭄에 저항력을 키운다거나 병충해에 견디는 힘을 강화시켜주는 방법이다. 이 바이오기술은 거의 모든 식물재배에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다.

 

다음 세대는 생물학 시대

한편 합성생물학은 유전자를 컴퓨터 코드처럼 취급해서 DNA 서열을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식품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식품뿐만 아니라 의약품, 바이오연료, 기타 많은 것들을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다. 과학자들이 DNA를 인쇄하고 그 DNA를 박테리아나 이스트에 심어 넣을 수 있다. 유전자 서열분석은 DNA를 읽어내는 일이고 유전공학은 DNA를 복제하고 자르고 붙이는 일이라면 합성생물학은 새로운 DNA를 작성하고 프로그래밍하여 유전기계를 만들어서 생명을 작동시키는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물을 적게 주고 살충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합성생물 식물을 개발하려고 한다. 합성생물학은 차세대 유전공학으로 인정되며 앞으로 폴리머나 천연식물을 대체하는 신물질 제조법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손상된 장기를 회복시킨 임상결과도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은 사례는 녹내장 환자의 시력을 영구히 회복시키는 경우다. 눈은 쉽게 수술할 수 있고 작기 때문에 필요한 줄기세포 수가 적은 장점이 있다. 줄기세포는 골수나 치아 펄프, 각막 윤부 등에서 발견된 미분화 세포를 이용한다. 또한 뇌졸중으로 마비된 환자를 고치는 데도 줄기세포 치료가 효험이 있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뇌졸중은 뇌로 피를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뇌세포가 죽어 발생하는 마비증상이다. 얼굴이 처지거나 팔다리가 마비되고 말을 못하거나 심지어 식사도 하지 못하게 된다. 심하면 약물로 치료할 수 없게 된다. 통상 뇌졸중 후 6개월 이내에 회복되지 못하면 더 이상은 기대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치료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줄기세포를 환자의 두뇌세포에 주사하면 뇌혈관이 재생되고 세포활동이 회복되어 마비증상을 경감시킬 수 있다. 영국 임피리얼 대학교의 배너지(Banerjee) 박사가 2014년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5명의 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의 골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두뇌에 투입한 결과 마비증상이 없어지는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미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줄기세포연구센터에서도 2014년에 18명의 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줄기세포 주입 수술을 한 결과 환자들의 마비증상이 경감되는 성과가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최근엔 스탠포드 대학교의 게리 슈타인버그 교수팀이 다른 사람이 기증한 골수 중간엽 줄기세포를 마비환자의 뇌혈관 부위에 주사한 결과 환자들의 마비가 상당히 회복되었다는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차바이오텍에서는 탯줄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뇌졸중 마비증상을 치료하는 임상 1, 2상 실험을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마칠 계획이다. 줄기세포 주입치료법은 혈관이 막혀 손상된 장기나 노화되어 기능이 약화된 장기를 재생시키는 목적으로 다양한 임상실험이 가능한 상태이다.

다음 세대는 누가 뭐래도 생물학 시대다. 생물 정보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질병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디지털 플레임에서 해석할 수 있다면 많은 사례를 모아 컴퓨터 기계학습이 가능해진다. 건강한 사람은 어떤 유전자 상태이고 건강한 장기에선 어떤 단백질이 필요하고 어떤 조직이 만들어지는지도 디지털 해석으로 알아낼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의 이로운 작용이나 해로운 간섭에 대해서도 복잡한 관계를 파헤칠 수 있다. 인체의 건강 상태도 디지털 정보로 표준화 해주면 건강 상태의 변화를 미리 시뮬레이션해보는 기술도 등장할 수 있다. 매일 측정된 디지털 건강 상태를 기준으로 전체 수명을 예측해 보는 날이 온다고 해도 헛소리라고 비난하기 힘든 세상이다.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은 인간은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횟수의 바둑을 체험하면서 터득한 경험 데이터와, 주어진 시간 안에 처리해낼 수 있는 무한반복계산력으로 직관력과 같은 능력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구글 인공지능은 당뇨합병증으로 실명까지 일으키는 당뇨망막병증을 안과전문의보다 더 빠르게 진찰해낼 수 있다고 한다. 구글 인공지능은 수백만의 사례를 관찰할 수 있지만 안과전문의는 평생을 진찰할 수 있는 환자의 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모든 영역에서도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횟수로 관찰과 학습을 해볼 수 있으며 인공지능끼리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 인간보다 더 우수한 직관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주관적인 감성능력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런 걱정은 인공지능 기술개발자들의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결과다. 공상과학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많이 보면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걱정하는 후유증이 생긴다.

에릭 슈밋이 제시한 기술들은 인류가 21세기 문명을 송두리째 바꿔줄 미래기술들을 지목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 밑바닥엔 인류의 삶이 건강해지고 편리해지고 일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인본사상이 깔려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미래를 폭넓게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분석 자료들을 보면 기술혁신의 목적이 기계자동화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술혁명이 결코 기계기술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기술혁명의 종착지는 인류의 삶을 건강하고 편리하게 바꿔주고 행복하게 즐기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