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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河-옥정호 붕어섬 10폭 병풍’, 385×140cm 화선지에 수묵채색, 2011.

안개의 습윤한 표현 화풍은 독자적 채묵(彩墨) 특성과 부드럽고도 섬세한 운필 힘이 더해져 실경산수화가로서 그의 대표적 회화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중요한 요소다.

밤하늘 묘성(昴星)이 놀다간 새벽 물안개는 온후했다. 섬진강 500리 긴 여정(旅程), 강물은 옥정호(玉井湖)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첩첩산중 자리한 호수엔 삐거덕 삐거덕 나룻배 젖는 농부가 지날 때마다 옹알이하는 아기의 보송보송한 손 마냥 몽글몽글 안개가 작은 회오리처럼 ‘붕어섬’을 맴돌았다.

어디선가 잘그랑잘그랑 소리가 들려왔다. 느린 걸음의 소가 주인과 익숙한 안개 길을 헤쳐 갈 때마다 언뜻언뜻 눈물 나게 깨끗한 초록물결이 잠잠히 깨어났다. 풀숲에서 나온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산줄기를 타고 지나간다. 굽이굽이 산길이 조금씩 드러나면 아침 햇살은 뻐끔거리며 고개 내민 붕어 같은 섬의 검푸른 속살 풍경을 비추었다.

 

 

‘山河-산소리’, 53×45cm 화선지에 수묵채색, 201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중략)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김용택 詩, 섬진강1>

수면(水面) 위 끝없이 피어오르는 보석보다 영롱한 물빛…. 누군가 일생 전부를 던질 소망에 맹서했나, 목 메인 응어리 강물에 막막히 띄워 훠이훠이 날려 보냈을까. 물은 세월에 닳아 말이 없나, 굽이굽이 길 떠날 채비를 했다.

 

 

 

 

‘山河-긴 이야기’, 72×53cm 화선지에 수묵채색, 2011.

몇 집 강마을 지나 무심히 산길을 돌았다. 티 없이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드높은 하늘. 양지바른 곳 다정한 두 무덤의 속삭임. ‘그대의 산하(山河) 아름답지요!’ 하니 ‘그대가 곁에 있어서’란다. 물안개 걷힌 산기슭. 진한 듯 그윽한 한줄기 향(香)이 멈칫하게 한다. 아홉 번 꺾이는 풀, 가녀리게 피어난 순백의 구절초였다.

‘이놈이 발길을 잡았구나.’ 살그머니 웅크리고 앉아 꽃을 보다말고 아예 풀썩 주저앉아 호수를 내려다본다. ‘그러고 봉께 가을이 벌써 풍덩 빠져 있어야!’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