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하이디자인 대표는 독특한 사람이다. 디자인 특화 패키지 박스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어엿한 대표지만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말 그대로 바닥부터 올라와 올해 매출 20억원을 바라보며 국내 최고 수준의 디자인 회사들과 일하고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악바리 스타일도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거부하며 스스로 최고의 길을 찾아가는 강렬한 후각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보았다.

▲ 노연주 기자

사업형 인간, 현장을 깨우치다

김승현 대표의 사업 경력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적인 이유로 집에서 나와 살며 고구마 장사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짐작하는 규모가 아니다. 김 대표는 “당시 은평구와 일산에 고구마통 11개를 깔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기업처럼 운영했다”며 “당시 한 달 순수익만 3000만원을 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는 단기적 사업이었고, 이후 쇼핑몰과 초기 형태의 P2P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다. 김 대표는 “쇼핑몰을 운영하며 스몰 사이즈 옷을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사세가 커지자 제조공장에 돈을 납부하고 부족한 돈을 대출하려고 하니 고등학생 신분이라 대출이 되지 않더라”며 “너무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랐고,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인쇄공장이 어려워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톰슨과 임가공(수작업)을 주로 하던 아버지 공장이 어려워지자 당장 가세가 기울었고, 김 대표는 모든 사업을 접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채 인쇄소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장 가세가 기우니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인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아버지의 일이었기에 알고 싶었다”고 전했다.

인쇄소 일은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공장에서 제일 막내였던 김 대표는 40대와 50대가 대부분인 직원들에게 무시도 많이 받았다고. 게다가 일도 위험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옆 공장에서 작업하던 직원의 손가락이 잘려 병원으로 후송되자, 김 대표는 잘려진 손가락을 얼음에 담근 뒤 허겁지겁 따라간 적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인쇄소에서 일하며 인쇄사업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인쇄는 하향산업이라 생각했지만, 패키지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일반적인 기술기업의 경우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금방 대세가 변하지만, 최소한 패키지 영역은 성장세가 둔화해도 없어지지 않는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관찰이 가능했던 것은 김 대표가 디자인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대표는 톰슨과 관련된 일을 시작해서 패키지까지 영역을 확장한 후 ‘내 인생을 걸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홀로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관련 행사를 비롯해 기술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공장에서 일하며 점심시간을 쪼개 신촌 디자인 학원에 다녔고, 하청업체로 일하며 안면을 튼 타 회사 직원들을 찾아가 박카스를 돌리며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고 말했다.

자료조사도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온라인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했지만 손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답은 현장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당시의 일은 김 대표의 사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 노연주 기자

현장을 아는 기업, 그리고 디자이너

2012년 8월 김 대표는 독립해 하이디자인을 설립했다. 그 사이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이 폐업하자 기계를 전부 인수했고, 외부에서 더 구입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창기 사업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밑바닥부터 배운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야심만만하게 나섰지만 세상은 냉정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 김 대표는 ‘현장’에 집중한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받아 제작을 하는 기획사로 시작했는데, 차라리 우리가 디자인까지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컴퓨터에서 만들어진 디자인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실제 현장에서 구현되면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패키지와 디자인 역량을 합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김 대표는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에 김 대표는 자신이 고안한 디자인을 블로그에 올리는 한편, 이를 현장 패키지에 응용해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페이퍼토이(Paper Toy)를 비롯해 다양한 인쇄물을 제작할 수 있는 라인 및 패킹라인까지 구축했다. 기획부터 디자인, 심지어 마케팅 전략도 수립한다. 김 대표는 “단순히 하청받은 패키지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기획부터 제작과 이를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더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통할 수 있는 총체적 솔루션을 고안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하이디자인의 디자이너들은 컴퓨터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장 일을 배우고 마케팅 전략까지 습득한다. 제작에 대한 모든 과정을 이해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김 대표의 지론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하이디자인은 2012년 창업 이래 매년 20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 수준의 기업들과 협업한다. 김 대표는 “계약 문제로 상호를 밝힐 수 없지만 국내 최고 수준의 디자인 회사는 물론 유명 화장품 브랜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대형기획사와 공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하이디자인은 스타트업 상품을 무료로 패키지로 제작하는 재능기부를 시작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 대표는 “스타트업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는 일을 ‘잘 몰라서’ 높은 가격에 처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건 아니다 싶었고, 스타트업 업계에 도움이 되고자 재능기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이 너무 밀려 공식적인 재능기부는 올해까지만 진행하지만, 추후에도 지속적으로 스타트업을 돕겠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바닥에서 올라와 최고 수준의 디자인 특화 패키지 박스 전문기업을 키워낸 김승현 대표. 그의 꿈은 디자인에 있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디자인이 세계 최고가 되는 날을 꿈꾼다”며 “모두의 힘이 더해지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며, 이는 일생의 소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