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격변하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에 있어 인텔의 독주가 거세지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나름의 선방을 펼치고 있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 및 글로벌 기업의 기타 메모리 반도체 업계 진입 등으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치열한 공방전..'경계가 무너진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인텔과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인텔은 1분기 매출 131억 달러를 올려 지난해 동기 대비 9% 증가해 1위를 굳건하게 지켰으나 삼성전자는 9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 양사의 격차가 3.2%까지 줄었으나 다시 인텔이 치고 나간 셈이다.

물론 인텔의 급비상은 지난해 5월 인수한 알텔라의 매출이 합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반드시 필요한 기술력만 인수한 삼성전자가 전반적인 업계의 불황을 딛고 '평타를 쳤다'는 점은 일견 고무적이다.

사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격변에 격변을 거듭하고 있다. 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들어선 가운데 국가 단위의 파워게임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철강과 반도체 부분에서 중국 견제에 나선 지점이 눈길을 끈다. 미국은 올해 초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중국 반도체 펀드가 WTO에서 금하고 있는 국가 보조금인지 여부를 따지고 나섰다. 오는 10월 독일에서 열리는 반도체생산국 민관합동회의(GAMS)에서는 중국의 반도체 펀드의 시장질서 파괴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 엄청난 타격이다. 현재 중국은 칭화유니그룹으로 대표되는 반도체 블랙홀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빨아들이는 한편, 이를 통한 반도체 독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는 이미 중국 수입품 품목에서 원유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안정적인 반도체 수급을 위해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공격적인 외연확장에 나서는 상황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 일단 호재다. 디스플레이에 이어 반도체 영역에서 중국의 입김이 거세지는 것은 국내 기업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할 경우 '미중' 슈퍼파워 복마전에서 유탄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예민한 상황판단이 필요한 이유다.

시스템과 메모리 반도체 전반에서 영역파괴가 벌어지는 대목도 중요하다. 인텔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브룩스톤(Broxton) 플랫폼을 비롯해 소피아(SoFIA) 3GX, 소피아 LTE, 소피아LTE2 상업용 플랫폼 및 체리트레일(Cherry Trail) 출시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암(ARM) 진영이 주도하는 스마트폰 SoC 시장에서 발을 빼는 대신 5G를 중심으로 사물인터넷, 메모리 반도체, 클라우드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다.

모뎀칩 개발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0년 애플 아이폰 오리지널부터 아이폰4까지 모뎀칩을 제공했던 독일의 인피니온을 인수한 인텔은 최근 7360 LTE모뎀을 애플에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IBM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포브스는 25일 "IBM이 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며 "D램 시장에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하드디스크가 낸드플래시도 빠르게 대체된 사례가 D램 시장에서 벌어질 개연성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D램을 대체할 수 있는 아이템이 경기의 판세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 "저력을 보여줘라"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경쟁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일단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에서 D램의 불황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며 전반적인 가격인하 현상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은 24일 "올해 D램 공급과잉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수요가 회복되지 않아 하반기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PC와 스마트폰이 모두 지난 1분기 출하량 기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각각 11%, 1%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에서 기인한다.

현재 D램의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달 29일 1.31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D램익스체인지는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D램 매출은 39억7200만 달러에 그쳐 전 분기 대비 16.6% 떨어졌다고 전했다.

▲ 출처=삼성전자

일단 삼성전자는 D램에 있어 미세공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20나노미터 미세공정 생산비율을 높이는 한편 올해 18나노미터 공정까지 도달한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D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삼파전으로 굳어가는 상황에서 장기불황의 터널이 의외로 길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분위기도 감지된다.

낸드플래시는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영업이익률은 2등보다 10%p 앞선 1위다. 40%에 달하는 수치며 이미 경쟁자를 앞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V낸드플래시의 경우 삼성전자는 경쟁사와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기술격차는 최대 2년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이유로 NH투자증권은 25일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라인이 구축되고 64단 3D 낸드플래시 경쟁력이 살아나면 올해 반도체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내년 초 완공되는 평택 라인은 기흥과 화성 사업장을 합친 규모에 육박하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바탕으로 수요처인 스마트폰 시장에서 플더블 등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낸드플래시 경쟁력이 더해지면 상당한 수준의 성과가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결론적으로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 있어 D램은 물론, 낸드플래시로의 체질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다. D램은 미세공정, 낸드플래시는 스토리지 강자인 EMC와 협업하는 한편 3D 낸드플래시 경쟁력에 승부를 걸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서 10나노 공정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퀄컴과 협력하는 분위기도 눈길을 끈다. 애플의 AX를 대만의 TSMC가 가져가지만 삼성전자는 퀄컴과 협력해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시스템 LSI는 이런 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다. TSMC가 16나노의 문턱을 넘어 애플을 비롯해 다양한 협력사를 찾은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하반기 퀄컴의 스냅드래곤 830 외 뚜렷한 호재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삼성전자 시스템 LSI는 애플과의 협력이 틀어지면 휘청이고는 했다. 다양한 협력사를 보유한 TSMC와의 경쟁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