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판이나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잘못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처음에는 머리를 조아리다가 어느 순간 버젓이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 큰 이슈로 떠오른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보면서 몇 개월 혹은 길게는 몇 년 뒤에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지금은 몇몇 유통채널에서 옥시 제품을 자진 회수하고 있고, 옥시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최소한 회사 측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척은 했다. 아울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점차 확산되어, 이제는 개인 소비자들도 직접 나서 자발적인 옥시 제품 구입 중단은 물론 SNS를 통해 불매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옥시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건 아닐지,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 않게 이 제품을 구입하는 것 아닌지 앞선 걱정이 든다.

과거 소비자를 기만한 ‘나쁜’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은 해당 기업들의 매출 하락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소 모순적인 면이 있다.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기업들이 몇몇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고객들이 찾는 브랜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발생한 남양유업의 ‘갑질’ 사건의 경우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 점주에게 폭언을 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실제로 이 회사의 그해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서 2년 연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영업이익은 171억원으로 다시 플러스 성장세를 타며, 현재는 남양유업 불매운동이라는 키워드가 당시보다 많이 사라진 상태다.

작년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의 ‘채용 갑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불매운동은 물론 회원 탈퇴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양한 이벤트 딜을 통해 다시 고객 유입이 늘고 있다. 홈플러스는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유가로 팔아넘겼고,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은 경비원을 폭행하는 갑질을 행해 질타를 받았다.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가 알려지면 소비자의 반감을 사고, 이는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관련 일이 잊혀지고 다시 매출 회복세를 유지하는 게 대부분의 경우였다.

기억해야 할 숫자가 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사망 94명·상해 127명)는 총 221명이다. 다시는 기업이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도록 소비자의 지속적이고 정당한 ‘갑질’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221명 중에서 옥시 제품을 사용한 사람은 177명(사망 70명·상해 107명)이다. 옥시가 가장 큰 피해를 끼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나머지 기업들은 옥시를 앞세워 쉬쉬하는 분위기다. 추가로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으로 지목받은 롯데마트, 홈플러스뿐만 아니라 애경, 이마트, GS리테일 등은 가해기업으로서 어떤 보상책과 진심 어린 사과를 준비하고 있는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옥시를 방패 삼아 숨어있지 못하도록 철저한 수사가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