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금리가 몇 년 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저금리 정책, 인플레이션 기대하락, 안전자산 선호 등이 영향을 준 탓이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지속되고 인구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도 당분간은 저금리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지난 2013년 4월부터 인하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5월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기준금리 1.5%보다 낮은 1.47%까지 하락했다. 5년만기 국고채 역시 기준금리와 비슷한 수준인 1.57%까지 낮아졌다.

국고채 금리가 내려가자 신용등급이 AA-인 회사채 수익률(만기 3년)은 2% 이하로 떨어졌다. 다만 BBB-등급의 경우는 7.94%라는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건설·조선·운송 등의 업계가 몇년 째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 이자율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가중평균 대출금리는 지난 2013년 1월 5% 수준에서 올해 3월 3.5%로 하락해 3년 동안 1.5%p 하락했다.

▲ 출처=LG경제연구원

기준금리보다 낮은 장기금리

LG경제연구원 정성태 책임연구원은 "시중금리 하락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하가 효과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도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효과라고만 보기에는 최근 금리하락 폭이 다소 크다"고 설명했다. 만기 3년 이상의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는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통화긴축정책으로 단기 금리가 급등하거나, 미래 경기불황이 예상되면 장기 금리가 낮아져 장단기 금리차이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장단리 금리차이는 축소라기 보다 장기금리가 단기금리에 비해 낮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또 금융시장에서 형성된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 수치가 1% 미만에 그치고 있는 것이 금리에 영향을 준 것일 수 있다. 물가 연동 국채와 일반국채의 금리 차이로 측정한 추후 10년간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수치는 0.6% 수준이다. 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은 일본에 비해 불과 0.2%p 높고 재정위기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큰 유럽국가보다도 낮다.

정 연구원은 "시장에서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낮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을 목표한 수치만큼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금융시장에서 국고채 수요가 몰리는 바람에 국내 경제 펀더멘탈에 비해 국고채 금리가 더 낮아진 영향이 더 ㅋ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장기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높은 것은 현재 금리 수준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크게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기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보습을 보이고 있다. 정 연구원은 "시장 기대와 반대로 소극적인 중앙은행의 모습 때문에 장단기 금리가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며 "향후 수 개월 내로 한국은행 정책 금리는 동결 혹은 한 차례 정도 인하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장기금리는 왜 낮아졌을까?

최근 장기금리가 낮아진 것은 금융기관의 자금 공급 측면으로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금융시장은 미국 금리인상과 외국인 투자에 관심이 몰리고 있었다. 최근 외국인 투자는 상당히 줄었지만 국내 시중금리는 하향세를 보였다.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영향과 함께 국내 기관투자자의 채권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정 연구원은 저금리의 구조적 요인으로 '연금 적립금 증가'를 예로 들었다. 2005년부터 도입돼 기존 퇴직금 제도를 대체하고 있는 퇴직연금이 금리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출처=LG경제연구원

퇴직연금제도는 매년 발생하는 퇴직금 부담을 외부에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일정 수준의 퇴직연금적립금이 발생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09년 14조원 수준에서 2012년 67조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126조원으로 늘어 매년 15조원가량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적립금의 90%가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시중 금리 하향세가 가속화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매년 수입 보험료가 20조원씩 늘어나고 있는 국민연금도 금리 하락의 원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가입자로부터 36조원을 연금 보험료로 거둬들이고 15조원을 연금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운용 중인 국민연금은 국내 채권에 268조원, 국내 주식에 94조원, 해외주식에 69조원 등을 투자하고 있는데 국내 채권에 투자한 금액은 전체 기금 중 52.4%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2011년 국내 채권 비중이 64%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낮아진 수치이지만 매년 적립금이 늘어나면 채권 투자 규모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정 연구원은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채권투작모는 국고채 보험 및 연기금 보유 잔액을 기준으로 지난해 225조원을 달성해 불과 3년사이 85조원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중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증가도 국채 금리를 떨어트린 요인으로 꼽힌다. 저금리가 지속되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 실제 200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자 부동산이나 고수익채권 투자가 크게 늘었고 이것이 곧 2008년 금융위기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저금리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이어지는 고수익자산 투자 증가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결제은행은 지난 수 년간 저금리에 따른 위험선호 확대에 대해 "금융시장 불안의 뇌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출처=LG경제연구원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위험선호 확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중위험 자산인 주가연계증권(ELS), 파생연계증권(DLS)에 대한 투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2010년 순발행 기준으로 22조원이던 ELS 발행금액은 2014년에는 42조원으로 늘었다. 불과 5년사이 ELS 시장 규모가 두 배로 커진 것이다. 파생연계증권의 순발행 규모는 2010년 4조원에서 지난해 14조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ELS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발행기준일 이후 일정 시점에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사전에 정해진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주가지수가 발행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에 95% 이상이거나 12개월이 지난 시점에 90% 이상이 된다면 정해진 수익을 돌려주는 구조다. DLS는 기초자산 대신 파생상품을 기준으로 역시 ELS와 같은 구조로 운용된다.

결국 약정된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발행자인 증권회사는 원금의 90% 정도를 채권으로 운용하고 나머지 10%를 옵션 등 파생상품으로 운용한다. 기초자산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은 자체적으로 혹은 위탁을 통해 관리한다. ELS를 통해 유입된 자금은 약정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국채보다 신용도는 낮미나 금리는 높은 채권에 주로 투자된다. 이로 인한 해당 채권의 금리하락은 결국 국채 이자율에도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다.

앞서 설명한 ELS와 DLS 발행 증가 및 연금 적립금 확대로 최근 수 년 간 채권 수요는 크게 늘어났지만 채권 공급은 늘지 않아다. 국채와 회사채를 포함한 전체 채권발행 규모는 2012년 분기당 평균 148조원이었고 지난해에도 168조원 정도로 증가하는데 그쳤다. 순발행 규모는 2012년에 40조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오히려 38조원으로 줄어들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국채를 제외하고는 채권발행 물량이 크게 늘지는 않은 상황이다.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소수 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채권발행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가계 대출을 제외하고는 대출 수요가 크게 늘지 않았고 지난 금융위기 이후 은행채 발행에 대한 규제가 생겨 굳이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할 필요가 줄어든 탓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데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 중국 경제 부진, 신흥경제 불안 등으로 국내외 위험 기피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저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중 금리 상승 요인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라며 "올해 미 연방준비위원회는 한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이는데 금리가 인상 된다면 각국 간 이자율 동조화 현상으로 시중금리가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