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어요.” 유석환 로킷 대표가 말을 이어갔다. “한국 의료 시장은 대단히 까다로워요. 사실 우리 제품이 뭐 잘 팔릴까 걱정했죠. 그런데 출시 한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웬만한 병원이나 연구소에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구매 확정만 30건이 넘어요. 의사들 반응이 괜찮아서 깜짝 놀랐어요.”

로킷은 국내 대표 3D 프린터 제조사다. 최근 조직공학 연구용 바이오 3D 프린터 ‘인비보(INVIVO)’를 출시했다. 바이오잉크로 인공장기나 피부 같은 세포 구조체를 만들 수 있는 장비다. 로킷은 인비보를 앞세워 바이오 3D 프린팅 시장 글로벌 1위로 올라서는 꿈을 꾸고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로킷의 중심엔 유석환 대표가 자리한다. 그는 제법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우자동차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다국적 보안 솔루션 회사 타이코에서 아시아 지역 총괄을 역임했다. 그 다음엔 셀트리온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7년 동안 셀트리온헬스케어 CEO로 일하며 120개국을 돌아다니며 성공 신화를 썼다.

바삐 살다 보니 몸이 상했다. 이젠 정말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나긴 회사생활을 마감했다. 건강이 조금 회복됐을 무렵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저보다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취직은 절반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청년들 잘못이 아니구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구나.” 지난 2013년 로킷 창업에 이른 배경이다. 일자리가 없으니 회사를 차린 것이다.

대량생산·소비 사회에서 맞춤생산·소비 사회로

다른 계기도 있다. 시작은 다소 소소했다. “지인이 그랬죠. ‘너 재수 없으면 90살까지 산다’고. 그러니 남은 인생 40년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창업 아이템이 굳이 3D 프린터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 3D 프린터 제조사가 한국에 없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그렇게 시작했다. 너무 진지하지 않게.

초반엔 제품을 팔 데가 없었다. 직원들이 어디든 나가서 게릴라 마케팅을 진행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런데 기회는 먼 땅에서 찾아왔다. “3D 프린터는 매직 툴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국회에서 15분 넘게 3D 프린팅 산업의 잠재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비로소 국내에서도 3D 프린팅, 그리고 로킷에 관심을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세일즈맨 역할을 해준 셈이죠(웃음).”

이제 유석환 대표는 그 누구보다도 3D 프린팅 산업을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는 3D 프린팅에 4차 산업혁명을 부를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담겨있다고 여긴다. “지난 100년은 같은 물건을 대량 생산해서 싸게 파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행했어요. 이런 대량 생산·대량 소비·저부가가치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가 왔습니다. 앞으로는 맞춤생산·맞춤소비·고부가가치 사회로 가야 합니다. 3D 프린터는 이를 위한 가장 적절한 툴입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폭리에 저항하고 바이오 메가트렌드를 읽다

“미국 3D 프린터 회사들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로킷이 존재할 필요가 없죠. 이미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숟가락 얹을 이유는 없잖아요. 시장을 들여다보니 그들은 굉장한 폭리를 취하고 있더라고요.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꺼내든 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 카드다. 로킷은 지난 3~4년 동안 가성비가 뛰어난 3D 프린터를 만들었다. 성능이 동급인 제품을 가격 거품을 빼서 시장에 내놨다. “어떻게 보면 팔로워였죠. 올해부터는 패스트 무버(Fast Mover)가 되려고 합니다.”

그 중심에는 인비보가 있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의 데스크탑 형태 바이오 3D 프린터다. 인비보는 기본적으로 3차원의 정밀한 세포 구조체를 출력할 수 있는 장비다. 출력물은 간이나 신장 같은 인공 장기뿐 아니라 두개골, 피부 등을 이식하는 연구에도 활용 가능하다.

탁월한 가성비는 기본으로 갖췄다. 기존에 나와 있는 바이오 3D 프린터 가격은 최소 2억원이다. 그러니 생체재료나 생물학 연구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도구로 여겨진다. 실험이 제일 중요한 분야인데 너무 비싸서 실험 도구로 잘 쓰이지 않는 것이다.

로킷은 바이오 3D 프린터 가격 혁명을 도모하고 있다. “인비보는 옵션이 가격에 따라 2000만~4000만원 수준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능은 오히려 기존 제품보다 낫죠. 메디컬 디바이스 가격이 1000만원대이면 굉장히 싼 것입니다. 비쌌는데 갑자기 가격 혁명이 일어나니 의사들 반응이 굉장히 좋죠.”

바이오 3D 프린터는 어떤 미래를 불러올까. “사람은 오래 살고, 세금은 줄어든다는 게 가장 문제입니다. 사람이 죽지 않으니 사회적 비용 부담은 늘어나죠.” 유석환 대표는 바이오 3D 프린터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신장 이식을 받은 사람은 면역 거부 반응이 생겨요. 평생 면역 거부제를 먹어야 하죠. 누군가 3D 프린터로 개인별 맞춤 인공 장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사회적 비용은 내려가게 됩니다.

로킷은 이미 3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했다. 올해 가을 정도에 유석환 대표는 인비보를 가지고 해외로 나갈 생각이다. 메디컬 디바이스 주요 시장인 북미와 유럽은 물론 일본과 싱가포르 등지에 진출할 계획이다. “어떤 분야든 한국 시장 비중은 2%를 넘지 않아요. 그럼 98% 시장에 가서 5%를 먹는 노력하고, 2% 시장에서 30%를 먹으려는 노력하고 어떤 게 더 쉬울까요? 제품만 글로벌 스탠다드이면 98% 시장에서 5%를 차지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러니 우린 당연히 바깥으로 나가야죠.”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탤런트 캐피털리즘으로부터의 혁신

유석환 대표는 현재 60여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아직은 스타트업인 만큼 직원들 동기부여도 중요하다. “30년을 직장생활하며 먹고는 살았죠. 그런데 금수저가 될 순 없더라고요. 금수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주주가 되는 겁니다.”

말이 이어갔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벌려면 투자를 해야 하죠. 그런데 청년들이 무슨 투자금이 있겠어요? 그래서 도입한 것이 ‘탤런트 캐피털리즘(Talent Capitalism)’입니다.” 유석환 대표는 직원들이 열정과 능력을 투자하는 만큼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나눠준다. “열정을 가지고 몰입하게 만들려면 너나 나나 같은 주주가 되게 만들어야죠. ‘능력을 투자하면 주식을 준다’ 제가 생각하는 탤런트 캐피털리즘의 기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본질로 돌아가 ‘혁신’을 말했다. “혁신을 이루는 데 가장 큰 방해 요소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게 제일 중요하죠. 창조적인 프로세스에서 무지는 축복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통행 금지된 길로 겁먹지 않고 나아가 새로운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혁신입니다.” 유석환 대표에게 3D 프린터는 혁신의 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