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과전문병원 문성병원 김창형 과장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본다. 어제 아침에 급하게 면도하느라 턱에 상처가 생겼고, 흉터가 꽤 크게 남았다. 표정이 일그러지며 기분이 하루 종일 좋지가 않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남이 볼 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쨌든 약간의 우울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병원에 출근을 하고 오전 회진을 돈다. 좌측 안면마비로 입원한 지 한 달째 되는 50대 아주머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필자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언제 좋아질까요?”, “나을 수는 있나요?”, “식사할 때 한쪽으로 물이 흘러요.”, “세수할 때 눈에 물이 들어가요.” 입원할 때부터 수차례 거듭 설명했던 것이지만, 또 질문을 한다. 필자는 최대한 웃으며 대답했지만 약간의 짜증 섞인 억양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면담을 마치고 뒤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거울 속에 필자의 얼굴이 비쳤다. 턱에 생긴 흉터가 보였고 기분이 또 상했지만, 이내 뭔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기껏해야 3~4일 뒤면 좋아질 면도 흉터만 가지고도 이렇게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을, 왜 그 환자에게 그렇게 시큰둥하게 얘기해야 했을까.

‘난 이 병을 잘 알고 잘 치료하고 있으니, 잔말 말고 기다려보세요’라는 오만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1초라도 그분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필자 말투의 억양은 어땠을까. 개인적으로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죄의식 같은 것이 밀려온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스쳐지나간 숱한 안면마비 환자들에게 대했던 필자의 태도들이 떠오른다.

‘좋아질 병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기다려 보시오’라는 전제 하에 약간은 오만했을 태도들…. 시간이 지나 운 나쁘게 후유 장애가 남은 분들에게 “당신은 운 나쁘게 후유 장애가 남았고, 앞으로 좋아질 여지가 없으니, 그런 줄 알고 사세요”라는 투의 쌀쌀맞음…. 돌이켜보면 ‘안면 마비’라는 병에 대해 필자만 관대했고, 필자만 쿨했다. 환자들은 절박했고, 필자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던가.

편측 안면 마비는 대개 정식 명칭인 ‘벨마비’ 또는 ‘말초 신경성 안면 마비’로 불리며, 어른들은 편하게 ‘와사풍’이라고 하면 통용된다. 그러나 모든 안면 마비가 벨마비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벨마비인 줄 알았으나 급성 뇌교 경색이었던 환자도 있었고, 교뇌 종양이 있었던 환자도 있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신경과 전문의의 진찰 및 영상, 기능 검사 등이 필요하다.

원인은 현재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과로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에 잘 생기며, 대상 포진 바이러스와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 벨마비는 제때 적절히 치료받는다면 3개월 정도 안에 10명 중 7명 정도는 완전 회복을 보이고 3명 정도는 후유 장애가 남는다. 병의 초기 일주일 동안은 안면 신경의 부종으로 인해 증상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완전 회복률이 높으며 생명과 직결되는 병이 아닐 뿐더러, 얼굴 외에 다른 신경학적 손상은 없기에, 신경과를 전공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양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일단 벨마비로 진단이 되고 나면, 환자에게 행해지는 설명은 좀 가벼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는 병인데…’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다음 날 외래로 22세 남자 한 분이 편측 안면 마비로 왔다. 일단 진찰 및 검사상 벨마비로 진단을 했고, 마음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환자와 면담 도중 필자의 등에 식은땀이 흐를 일이 있었다. 환자는 관악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며, 앞으로 관악기 연주를 직업으로 삼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환자는 입을 제대로 오므리지도 못하고 볼에 바람을 불어넣을 수조차 없다.

그런데 미세한 입술의 움직임과 볼의 바람 조절로 관악기를 연주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분이란다. 당황스럽고 위기 상황일수록 원칙대로 행하면 된다고 했던가. 당장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원칙대로 최선을 다해 표준 치료를 행하고, 모든 가능한 보조적인 치료 수단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병의 표준 치료 안에서 필자가 최선을 다하고, 병의 경과에 대해 좀 더 공감하며 상세히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환자는, 필자가 하는 치료 및 말들이 구원의 동아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는 입원 2주일째부터 서서히 회복을 보여, 발병 후 2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육안으로 볼 때는 거의 모를 정도로 안면 마비는 회복되었다. 미세한 입술 주위 움직임은 아직 어둔하다.

환자에게 입원 초기부터 치료 및 자연 경과에 대해 매일매일 상세히 설명하고 처한 입장에 대해 공감을 많이 해온 터라, 환자도 여유를 갖고 기다리다 보니 여느 안면마비 환자들보다 표정도 밝다. 덩달아 환자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완전 회복도 기대가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정말로 남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옷차림, 머리 모양 등으로도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하물며 한쪽에 안면마비가 생겨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좌절감이 클까.

실제로 지방 방송사의 앵커였던 20대 중반의 한 여성은 벨마비 후유증으로 원래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둬야 하기도 했다. 벨마비 환자의 입장에 공감한다고 해서 필자가 하는 치료가 달라지고 환자의 예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이나마 환자가 배려받고 위로받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은 환산할 수 없는 치료적 가치일 것이다. 이런 배려와 위로라는 무형의 치료적 가치는 환자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태도는 환자가 그 병을 극복하는 힘에 분명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