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늙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령화라고 하면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하지만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고령화가 있다. 다른 점이라면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바꿀 수 없지만 상품은 중간에 바꿔서 새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번 주제는 바로 ‘두 번째 소비(the Second Consumption)’인데 낡거나 헤져서 다시 구매해야 하는 내구재 소비시장과 그 시점에 서비스가 필요한 시장을 말한다. 물론 이런 말은 경제 용어사전에는 없지만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 본 용어다.

두 번째 소비시장의 대표적인 제품은 내구재를 들 수 있다. 내구재는 오랜 기간 사용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거액을 들여 사지만, 인간수명이 길어진 만큼 한 번쯤 바꿔줘야 할 시점이 오게 되는데 보통 은퇴시점과 맞물리는 시기다.

우리나라 평균 은퇴연령은 53세인 반면 평균수명은 80세를 넘고 있기 때문에 퇴직 이후 30년을 더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서다. 이때쯤 되면 내구재도 삐걱거리고 웬만한 살림은 헤질 만큼 헤지고, 게다가 분위기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듯 내구재를 포함하여 대체로 오래 쓰는 제품으로는 가구, 가전, 창호나 벽지, 보일러, 침대나 커튼, 주방용품 등이 우선 떠오른다. 물론 이러한 시장이 꼭 ‘두 번째 소비자’만 구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시장임에는 틀림없다.

빅데이터 전문기관인 (주)나이스지니데이터의 마이크로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해 본 결과, 실제로 서울, 경기, 광주, 대구 등 4대 권역의 가구점 숫자와 매출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우선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강남구가 42개 점포에서 월평균 1억2300만원을 벌었고, 다음이 서초구인데 58개 점포에서 평균 7000만원, 송파구는 45개 가게에서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서울의 다른 구(區) 매출도 은평구는 7500만원(42개), 중구 5100만원(66개) 등으로 강남권과 대동소이한데 차이점은 단가였다. 가구점 숫자로만 보면 강남구와 은평구가 똑같이 42개인데 매출은 절반 가까이 차이가 나서 구매고객 수를 별도로 분석해 본 결과, 단가에서 차이를 보였다. 강남구에서는 은평구 고객보다 약 30~40% 더 비싼 가구를 구매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제로 중고시장에서는 “중고가구점을 하려면 강남구에 가서 하라”고들 한다. 아파트 앞에 버린 가구들이 비교적 새것이어서 이를 가져다 팔아도 장사가 된다는 것이다.

경기도로 내려가면 용인시가 월평균 8000만원으로 가장 높고, 가구점 숫자로는 고양시가 154개(6300만원)로 가장 많다. 호남의 광주에서는 북구에 57개가 있는데 월평균 매출은 5000만원, 점포수로는 서구가 74개로 가장 많고 월평균 매출액은 4300만원이다. 영남의 대표도시 대구에는 수성구(30개)가 월평균 5000만원이었고, 가게 수로 보면 대구 북구에 114개(3,800만원)가 몰려 있지만 수도권에 비해 매출 규모는 상당히 낮았다.

시계열로 분석해 보지는 못했지만 최근의 내수경기를 감안할 때 그리 낮은 매출은 아니라는 점에서 향후 주목되는 시장임은 분명하다. 관련업종 몇 가지를 더 들여다보면 욕실리폼업, 다방, 당구장, 성인장난감, 보청기, 건강기능식품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건강기능식품 전문점을 시계열로 집중 분석해 봤다. 먼저 건강기능식품을 어느 계층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지에 대해서는 20대는 3.3%에 불과하지만 40대로 가면 25.3%에서 50대에는 35%, 60대로 넘어가면 22%로 다소 줄긴 하지만 50~60대를 합하면 57%로 역시 ‘두 번째 소비군(群)’에서 높게 나타났다.

작년 말 현재, 건강기능식품점 상위 25%의 평균 매출액은 6400만원으로 커피 전문점(6300만원), 부대찌개(6400만원), 한식(6600만원) 등과 맞먹는 매출을 올렸다. 업종생애 생존율도 6.5년으로 커피(1.9년), 부대찌개(3.4년), 한식(3.9년)에 비해 크게 높아서 안정성도 확보된 업종이다.

지역을 서울로 한정해서 다시 분석해 봤다. 그 결과 강남구는 66개 점포에서 월평균 6000만원을 올렸고, 동대문(65개)은 5500만원, 구로구(29개) 5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일반업종의 경우, 보통은 소득수준이 높은 강남 3구가 매출상위에 오르는 데 반해서 건강기능식품점은 일반적인 매출패턴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눈에 띠는데, 이 점이 바로 두 번째 소비시장의 맥이다. 객단가 때문에 매출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객 수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 내수가 살아나려면 중‧노년 소비가 늘어나야 한다. 장난감이나 유아복 구매자를 분석해 보니 4~5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계층의 구매비율이 전체구매자의 3% 수준에 그쳤지만 작년에는 9% 수준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앞으로 중‧노년층의 소비가 기대되고 있는 업종이다. 고령화가 우리보다 더 빠른 일본에서도 중‧노년층이 소비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이번에는 서비스상품 시장을 보자. 몇 가지 관련 업종을 보면 이혼이나 재혼시장, 폐업시장, 중년 일자리 시장, 추억여행서비스 등 딱히 업종으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서비스들이 다양하게 출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 번째 소비시장에서는 제품을 파는 입지업종보다 이들을 심리적으로 돕는 서비스시장에서 더 다양한 업종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혼시장도 그중 하나다. 대법원의 사법연감을 보면 우리나라는 한 해 동안 결혼한 커플이 약 33만쌍 정도 되는데 이혼은 그 1/3인 11만명 수준이다. 재혼중매, 경력회복 지원사업, 시간제 일자리 매칭사업, ‘사회적 가족’ 매칭사업, 강사육성사업 등 다양한 업종이 성장하거나 새로 출생할 가능성이 많은 분야다.

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 가운데 강사육성사업은 교육 분야별로 급성장이 예상되는데 이 사업은 두 번째 소비자에서 두 번째 생산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일례로 ‘진로교육법’과 ‘인성교육진흥법’에 의한 청소년 교육을 목표로 두 번째 소비군인 중‧장년을 육성하면 사업성장은 물론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도 유익한 사업이 될 것이다. 특히 그간의 경력을 기반으로 직업체험교육이나 평생교육 등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다.

두 번째 소비시장으로 가장 큰 분야는 연간 10만건 정도 되는 ‘폐업시장’이 꼽힌다. 이와 관련해서는 폐업컨설턴트, 리스타트(Re-start) 지원사업, 집기비품 중고사업, 정서안정을 위한 교육사업, 판로개척 지원사업 등을 들 수 있겠다.

당구장이나 다방도 제2의 도약이 가능한 업종이 아닐까 싶다. 당구장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아서 매출통계로 잡기는 어렵지만 2000년대 들어 많이 줄어들었다가 최근 들어 다시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다방도 전국적으로 약 3만개로 추정되는데 주로 중소 시군구에 포진되어 있지만 최근 도시에서 중년 시장을 노리는 음악다방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음악다방용 오디오를 한 벤처기업이 개발해서 급성장을 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또 한 가지 기대되는 점은 전후세대들의 재산정도로 볼 때 청‧장년 세대보다 비교적 소비여력이 높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저성장기를 맞아 자영업이 다들 어렵다 보니 신규 창업자들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경기가 좋지 않다고 언제까지나 창업을 주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창업할 때 “어떤 업종이 요즘 잘 나가냐?”고 묻거나, “돈은 어디서 빌리냐?”는 등의 아주 초보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공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트렌드, 즉 소비시장 흐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요즘 일본에서는 은퇴 후 옛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다시 가는 프로그램이 인기인데 이렇듯 중년의 감성을 파고들면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런 틈새 서비스사업은 돈이 별로 안 들기 때문에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즐기면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소비시장’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