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면서 해외 M&A(인수합병)가 부각되고 있다. 저성장 국면을 탈피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해외 M&A가 선진국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과 같은 개도국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M&A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외 M&A는 극히 저조한 수준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도 해외 M&A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격적으로 글로벌 M&A 진행하는 일본과 중국

일본이 저금리와 고령화로 인해 자국 수요가 침체되자 일본 기업들은 해외로 진출하려는 시도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당분간 일본 기업의 해외(아웃바운드) M&A가 이어질 전망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의 해외 M&A는 401건으로 사상 처음 10조엔을 돌파했다. 이는 엔달러 환율 119엔 기준으로 약 840억달러 수준이다. 2014년 5조7892억엔 규모에 비하면 약 1.7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과거 최고 기록은 2006년 8조6090억엔이다.

지난 2011~2015년간 한국의 해외 M&A 규모와 비교하면 일본이 한국보다 7.8배 더 큰 규모로 이뤄졌다. 또한 올해 역시 해외 M&A는 이어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M&A 규모는 약 1조9000억엔 수준으로 최근 5년 중 동기 대비 가장 컸다. 올해 1분기 M&A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91.2% 증가했고 전 세계 M&A 규모의 2.9%를 차지했다.

올해 인수 기업 비율은 의료·바이오 기업이 37.4%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화학·제조업이 23.4%, 소비재가 23%를 차지했다. 의료·바이오의 M&A는 전년 동기 대비 건수로는 줄었지만 규모로는 더 컸다.

지난해 M&A 규모가 가장 큰 상위 10개사 중에는 생명·손해보험사 등의 기업이 상위를 차지했다. 도쿄해상홀딩스가 미국 보험회사인 HCC인슈어런스홀딩스를 9413억엔 규모로 인수해 1위를 차지했다. 미쓰이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은 영국의 보험회사 아무린을 인수했고 메이지야스다 생명보험은 미국의 보험회사 스덴코프파이낸셜그룹을 인수했다. 스미토모생명보험은 미국 시메토라파이낸셜을, 일본생명보험은 호주 내셔날 호주 은행보험 사업을 인수했다. 상위 10위 M&A의 절반이 보험 그룹 인수다.

이 외에도 일본우편이 호주 물류회사 톨 홀딩스를, 일본담배산업이 미국 담배회사 레이놀즈 아메리카를, 캐논이 스웨덴 감시카메라 메이커 악시스를, 일본경제신문이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즈 그룹을, 브라더공업이 영국 산업용인쇄기 제작회사 도미노 프린팅 사이언시즈를 인수했다.

▲ 출처=자본시장연구원

M&A는 일본만 활발하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역시 해외 M&A를 대규모로 진행해왔다. 중국이 2011~2015년간 진행한 M&A 건수는 1276건으로 한국보다 7.1배 많았다. 지난해 중국의 M&A 규모는 908억2000만달러로 일본보다도 크다. 지난해 중국의 해외 M&A는 전년 대비 58%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만 보더라도 한국은 지난 2월 중순까지 7건을 진행, 규모는 3억8000만달러 수준이었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56건으로 704억달러를 달성, 금액만으로는 지난해 전체 M&A 규모의 78%에 이르렀다. 중국 국유기업 켐차이나는 스위스 종자기업인 신젠타를 인수했고, 칭다오 하이얼은 미국 제네럴일렉트릭(GE) 가전부문을 인수했으며 완다그룹은 <쥬라기 월드> 등을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사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한국, 해외 M&A 주도하려면?

한국은 해외 M&A에는 보수적인 편이며 국내 기업끼리의 M&A가 주로 이뤄진다. 최근 5년간 한국 기업의 국내 M&A는 1824건으로 1931억1000만달러(약 222조9000억원)를 기록, 해외 M&A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국내 기업의 해외 M&A 규모는 2000억원으로 전체 M&A 거래 금액인 11조2000억원의 1.8%에 불과했다. 2014년 해외 M&A 규모는 4000억원인데 이는 약 3억4600만달러 수준으로 2015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해외 M&A가 이뤄졌다.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면서 해외 M&A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해외 M&A는 물론 리스크가 크지만 해외 기업의 기술과 판매망을 확보할 수 있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단기에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시장 지배력을 높이거나 산업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에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해외 투자 활성화로 인해 국내 투자가 감소하고 일자리 감소 등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M&A를 통한 해외직접투자는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국외 특허보유기업에 대한 M&A를 확대하고 해외의 기술·인력·판매망을 국내 산업 기반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FDI(외국인직접투자) 순유출 전환 시점인 2008년에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만9000달러로 선진국들의 전환시점 평균 GDP인 2만7000달러보다 꽤 낮은 상태였다. FDI 순유출 전환이 다소 이른 시점이었다는 지적이다.

해외 M&A 활성화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에 의한 신용경색이나 통화가치 하락과 같은 문제도 일부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우리나라가 외국인을 상대로 보유한 대외자산 규모는 GDP의 67.8%인데 이는 우리나라가 외국인으로부터 차입한 대외부채가 GDP의 81.3%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나 중국은 대외자산 규모가 대외부채 규모를 크게 상회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김수연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경영 마인드가 국내 경쟁에만 치우쳐 왔으며, 현지시장 및 산업에 대한 정보수집능력 제약 등 소극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책적으로 과거에 비해 해외 M&A 관련 규제들이 상당 부분 개선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해외 M&A는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M&A가 아닌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그린필드(Greenfield)형 해외 진출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해외 M&A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 출처=한국경제연구원

김 연구원은 삼성을 예를 들며 만약 삼성이 샤오미를 초기에 인수했다면 같은 산업 군에 선제 방어가 이루어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성장 사업인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산업의 경우 활성화가 되려면 개별 기술 개발보다 ICT 산업과 의료 분야 등 기술·산업 간 융합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M&A 활성화를 위해 네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대기업이 해외 M&A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고 둘째, 지원 시스템의 효율화가 필요하며 셋째, 기업가 정신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고 넷째, 해외 M&A는 금융시장 발전이 전제돼야 하므로 국내 IB(투자은행)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정부가 해외 M&A 활성화를 위해 기존 외평기금 외화대출의 상환 자금을 활용, 50억달러 한도로 금융기관의 해외 M&A 인수 금융을 지원하려는 정책을 제시했지만 당시 이 제도가 대기업에 집중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해외 M&A는 미미하기 때문에 은행이 고려하는 신용도·시장금리·M&A 타당성 등에서 대기업이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이것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우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M&A를 활발하게 추진해 성과 창출을 하고 해외 M&A에 대한 기존의 (해외 M&A 실패 사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경우도 2011년에 ‘엔고 종합 대책’의 일환으로 마련됐던 국제협력은행 융자를 통한 해외 M&A 지원에 대해 도시바, 소니 등 다수 대기업이 지원 받은 바 있다.

김 연구원은 그러면서도 “정부의 지원 혜택이 기업 규모와는 상관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대기업이 해외 M&A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이후 관련 경험과 기술이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M&A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출처=한국경제연구원

정부 및 유관기관에 있는 해외 M&A 관련 지원 요소를 통합해 효율적인 해외 M&A 지원 시스템을 운영할 필요도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이를 목적으로 코트라(KOTRA) 산하 글로벌 M&A 지원센터가 설립됐다. 김 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해외 M&A 관련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체계를 만들고 무역 지원과는 지원이 중복되지 않도록 해외 M&A 지원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글로벌 M&A 센터 입지를 확고히 다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해외 M&A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코트라, 수출입은행, 무역협회, 한국투자공사(KIC), 국민연금, 산업은행, 중소기업청 등 다양한 곳에서 운용하고 있어 체계적인 지원 및 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기업가 정신을 독려하기 위한 ‘경영판단의 원칙’을 회사법상 명시할 필요도 있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진이 상당히 주의를 하면서 선의로 일을 진행시켰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 경우 사업 실패에 대해 면책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해외 M&A는 국내 M&A보다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안정 경영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기업가 정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다. 과감한 투자와 위험부담이 필수적으로 따라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가 해외 M&A에 실패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면책할 수 있는 법을 상법상 명시해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야 기업가들이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해외 M&A를 적극 추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M&A 자문에 취약한 국내 투자은행(IB)의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 해외 M&A는 금융시장 발전이 전제된다. 국내 기업이 해외 M&A를 할 경우 대부분 골드만삭스, JP모건, 크레딧스위스 등 외국계 IB들이 이를 함께 진행해왔다. 이는 국내 IB가 해외 M&A 자문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역량이 해외 IB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도 해외에서 M&A를 할 경우 계열 증권사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 현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매번 해외 IB에게 자문을 모두 맡길 경우 국내 IB는 해외 M&A에 대해 경험을 쌓거나 네트워크를 마련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국내 IB에게도 해외 M&A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고, IB 역시 적극적으로 외국계 IB와 업무제휴 등을 통해 공동자문을 추진하는 등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해외 네트워크나 정보력, 기술 등을 단기간에 확보하려면 글로벌 IB 인수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수연 연구원은 “해외 M&A의 경우 관련 시장 발전이 요구되기 때문에 주로 선진국들이 활용해 왔다”며 “점진적으로 M&A형 해외투자를 늘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M&A는 생산 기반을 이전하는 등 국내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해외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며 “해외 M&A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