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상 지연에 따른 달러화 약세 및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 침체 우려 완화로 원유와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5월 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4월 29일(현지시각) 기준 원유와 구리 등 세계 주요 19개 원자재 가격을 기반으로 한 톰슨 로이터 핵심원자재 CRB지수가 올해 최고치인 184.61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해 11월 13일(184.7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최저치였던 올해 2월 11일의 155.01에 비해 19.09% 오른 수치다.

반면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93.05를 기록하며 종가기준으로 2015년 1월 21일 이후 1년 3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에 미국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짐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른 이유는 금속·곡물·에너지 등 원자재의 가장 큰 소비국인 중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완화되는 분위기인 가운데 달러화까지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달러화 약세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이유는 원자재 가격이 달러화로 표시되고 거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자재 가격은 달러가치와 반비례 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달러가치가 하락할 경우, 같은 양을 구매할 때 평소보다 더 많은 달러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달러표시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반대로 달러가치가 높은 경우에는 평소보다 적은 달러로 같은 양을 구매할 수 있다.

한편 미국 에너지 생산 감소와 남미 지역의 기후 악화로 곡물 공급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원자재 가격 상승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원유 가격 상승은 일시적, 아직 공급과잉 해결 안 돼 하락 전망

▲ 출처=네이버금융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4월 28일 배럴당 46.03달러까지 올라 올해 들어 최고치로 올라섰으며 브렌트유 가격도 4월 29일 배럴당 48.13달러로 전일 기록한 올해 최고점인 48.14달러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했다.

NH투자증권 강유진 연구원은 2일 원유 가격 상승은 “미국의 원유 생산 감소세와 금리 인상 지연 기대로 인한 달러화 약세 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며 “OPEC국가들의 산유량 증가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및 달러화 강세,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 그리스 디폴트 등의 우려로 조정이 예상된다”며 앞으로 3개월간 배럴당 34~50달러의 변동폭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에서도 여전히 공급 과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상승세가 작년 1~5월 배럴당 20달러가량 오른 뒤 하반기 폭락세를 보인 모습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코메르츠방크의 오이겐 바인바그 리서치 부장은 “이번 상승세가 조만간 끝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모두 미국의 석유 생산이 줄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늘어나는 석유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씨티그룹 추정에 따르면 이란은 4월 하루 약 200만 배럴가량의 석유를 수출해 제재 이전 수준인 200만~250만 배럴에 근접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란의 시장 재진입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계절적 증산으로 늘어난 석유량이 미국의 감산을 상쇄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 모호한 전망

▲ 출처=네이버금융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6월 물 금 가격은 4월 29일 온스당 1290.50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는 연중 최고치이며 2015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금값은 이달에만 4.4% 올랐고, 올해 들어서도 22%가량 상승했다.

은 가격도 7월 물 기준 온스당 17.819 달러에 거래를 마쳐 2015년 1월 이후 최고치로 올라섰다. 은 가격은 이달에만 15%가량 올랐고 올해 들어서는 29% 뛰었다.

NH투자증권은 금값에 대해 “지난달에 15개월 만에 최고치로 상승한 금값은 미국 금리 인상 등의 요인으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약세를 보일 것”이라며 3개월간 온스당 1150~1350달러의 변동폭을 제시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시모나 감바리니 애널리스트는 “귀금속 가격은 미국의 1분기 GDP 부진과 일본은행(BOJ)의 정책 동결로 달러 약세가 가속화되면서 강하게 반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만약 달러화가 다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귀금속 가격이 조정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금에 대해서는 긍정적 전망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천연가스, 구리 등은 상승세 지속 전망

▲ 출처=네이버금융

뉴욕상업거래소의 천연가스 가격은 29일 4.8% 올라 100만 BTU당 2.178달러로 1월 29일(2.298달러)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달 들어서는 11% 올랐고, 3월 초 기록한 저점 대비 32%가량 상승했으며 앞으로도 상승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EBW 애널리틱스 그룹의 앤디 베스만 최고경영자(CEO)는 “6월과 7월 날씨가 예년보다 따뜻할 것으로 예보되어 가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온도가 오르면 에어컨을 일찍 가동해야 해 가스를 연료로 하는 전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출처=네이버금융

구리 가격도 중국 경제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자 반등하고 있다. 29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3개월 물 구리 가격은 t당 5050달러까지 올라섰다. 이는 1월 15일 저점 대비 17%가량 오른 수치다. 

철광석 가격 또한 중국 당국의 투기 규제 움직임에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다롄 원자재 거래소의 9월 물 철광석 가격은 29일 t당 462위안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가격 상승률은 일일 가격 제한폭인 6%에 달했다. 이달 들어 철광석 가격은 20%가량 올랐으며 이는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상하이 소재 오리엔트 선물의 왕 빙 원자재 브로커는 “실물 시장에 상승 모멘텀이 여전히 있다. 철강 수요는 견조한 반면 철광석 공급량은 이전에 예상한 수준보다 많지 않아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상승은 가공무역이 많은 우리나라 사정상 물가상승과 소비위축을 가져와 국내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