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낙지볶음은 매워야 제맛이다. 몇 안 되는 재료로 버무린 양념이지만 이미 공인된 ‘원조’다. 3대에 걸쳐 장사 중인 이 가게는 무교동 낙지 거리의 시초라 ‘낙지’하면 절로 무교동을 생각나게 한다. 지금은 북창동으로 터를 옮겼지만 그 옛날 ‘할머니 손맛’은 여전하다.

박무순(91) 할머니의 손끝에서 나온 낙지볶음은 한 때 무교동 거리를 장악했다. 일대에 낙지볶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음식점들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했을 뿐 아니라 시간만 되면 가게 밖까지 인파가 줄을 짓게 했다. 1966년 종로구 무교동 한 편에 조그만 가게를 낸 박씨의 낙지볶음은 시작부터 뜨거운 반응을 모았다.

당시 국내에서 ‘낙지볶음’이라는 요리는 유래가 없었다. 평소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음식 솜씨가 좋다고 정평이 난 박씨는 직접 많은 사람들에게 만들어 권해본 후 좋은 반응을 얻자 이 음식을 내놨다.

박씨의 낙지볶음은 특별하지 않다는 점에 진짜 비결이 있다. 낙지에 고추장으로 만든 매운 양념과 마늘을 버무려 시작한 게 전부였다는 것. 박씨는 “이것저것 많이 넣으면 낙지 본연의 맛만 망쳐~”라며 단순한 레시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처음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매콤 달콤한 낙지볶음에 신선하다는 반응이었지, 그 이후에는 단골이 돼서 계속 찾았다니까.” 매운 맛에 이끌려 가게를 방문하는 고객이 점차 늘었다는 대답이다.

지금도 가게 카운터 옆 한 편에서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상태로 손님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하는 박씨. 자신이 국내에 낙지볶음 요리를 전파시켰다는 생각에 여전히 많은 고객들의 관심이 반갑기만 하다.

90년대 초 박씨는 30년 가까이 운영해 온 식당 일이 힘에 부쳐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박씨의 가게와 낙지 요리법을 그대로 전수받아 운영해 명성을 떨치게 된 곳이 현재의 이강순 실비집이다. 박씨가 낙지볶음 전문점을 열지 않았더라면 이강순 실비집도 탄생할 수 없었을 터다.

2000년, 박씨는 원조 낙지볶음 전문점을 다시 오픈했다. 종로구 청진동에 새로 가게를 열고 둘째 아들 이승택(65)씨에게 운영을 맡겼다. 원조 낙지볶음 전문점이 2대째에 내려오게 된 것. 지난해 다시 종로구 북창동으로 가게 터를 옮긴 ‘원조할머니 낙지센타’는 다시 박씨의 손자인 이준호(39)씨가 대표로 운영 중이다.

실질적인 운영자는 이준호씨 부부지만 박씨를 비롯해 가족이 공동으로 가게 일을 돌본다. 박씨 가족에게는 유서 깊은 음식점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자리를 옮긴 까닭에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맞이한다고 사장 이준호씨는 말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낙지볶음 주문하면 공기밥은 공짜

“빨판이 쫙 벌어질수록 싱싱한 낙지죠.” 그래서인지 테이블에 오른 낙지마다 빨판이 유난히 크다. 아들 이승택씨는 가게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양념도 양념이지만 해산물은 신선도가 으뜸이라는 것.

국내 낙지요리 전문점에서 취급하는 낙지는 대부분 중국산이라지만 박씨 가게는 중국산 낙지도 믿을 만하단다. 박씨의 첫째 아들이 직접 중국 칭타오에서 공수해 낙지를 조달하고 있는 까닭이다.

유통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으니 가격 거품을 줄이고 소비자 판매 가격도 낮출 수 있었다. “단 돈 1000원이라도 저렴하게 팔면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겠냐”는 지론이다. 근처 상권에 회사가 많아 손님도 대부분 직장인이다. 박씨 가게는 낙지볶음을 주문하면 공기밥은 인원 수대로 공짜로 제공한다.

점심시간에 손님으로 꽉 찬 가게 테이블마다 대표 메뉴인 낙지볶음이 올려져 있었다. 손님들은 새빨간 양념의 낙지볶음을 각자 앞에 주어진 대접에 넣고 밥, 콩나물, 기타 야채와 함께 쓱쓱 비빈다. 참기름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직접 짠 참기름을 써 구수한 향을 더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비빔밥을 한 큰술 가득 퍼올린 후에는 더 먹음직스럽다.

매운 맛이 부담스러운 고객은 ‘덜 맵게’ 요리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래도 맵다면 속을 달랠 시원한 국물의 조개탕도 함께 주문해 곁들여 먹는다.

굵고 탱글탱글한 낙지 다리를 쫄깃하게 씹는 맛이 그만이다. 맵다는 소문에 지레 겁먹은 고객들은 은근히 “끝 맛이 개운하다”고 표현했다. 매운맛이 입 안에 확 퍼졌다가 금세 가라앉는다는 것. 감질맛이 나 계속 손이 간다는 손님도 있었다.

동료들과 가게를 방문한 한 직장인 여성은 “원조집이라 그런지 특히 맛있다”며 “동료들과 함께 자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함께 앉은 동료들은 땀까지 흘리며 낙지볶음 비빔밥을 먹는데 열중했다.

왁자지껄 붐비는 손님 틈바구니에 눈에 띄는 고객도 있었다. 바로 일본인 관광객. 사장 이승택씨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에 일본인 고객의 주문을 받는 일도 수월하다. 일본인 모녀는 특별히 맵지 않게 요리한 주방장의 배려 덕에 낙지볶음 비빔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지나가다 손님이 많아 들어왔는데 기대 이상이다”라고 음식평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미 일본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까닭에 이곳이 낙지요리의 ‘원조집’이라는 사실을 알고 찾는 이들도 더러 있다. 중국, 대만 관광객들도 자주 방문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왠지 이곳 낙지요리, 낯이 익다. 2005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등장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박씨 할머니의 낙지 요리도 덩달아 한류를 타고 손님을 끌어오는 이유다.

3대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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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